브런치 작가 한 번에 통과! 예얍 ㅋㅋㅋㅋ 나의 언시 인생이 이랬다면ㅋㅋㅋ 네이버에 검색을 좀 해보니 재수, 오수까지 하시는 분들도 꽤나 있으시다 하여 급 겸손모드에 돌입하기로 하였다.
인생에서 겸손은 필수 덕목이다.
딴 얘기로 새는데, 어제에 이어(첫 서두 발행일은 오늘이더라) 나는 본격적인 언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 첫 시작은 바로 내 첫 기자 인생이었던 조선일보 인턴기자 이야기다. 정확한 명칭은 조선일보 겨울 대학생 인턴기자.
때는 2009년 11월. 조선일보 겨울 인턴기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아랑(언론사 준비생 카페)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때 요구사항은 두 가지였다. 두 가지 신문을 보고 공통된 주제를 다룬 기사를 찾아 차이점을 논하시오. 그리고 '동전의 양면'이라는 주제로 작문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후덜덜 그 두 편을 내야 했다. 글이라곤 초등학교 때 글짓기와 고등학교 때 책 읽고 독후감 제출한 것이 전부였던 나에게는 꽤나 어려운 도전이었을 법 한데, 나는 생각보다 쉽게, 술술 글을 썼던 것 같다. 물론 잘 썼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쉽게 썼다는 뜻이다.
공통된 주제에서 차이점을 논하라 하였으니, 당연히 다른 시각을 가진 신문을 고르는 것이 정답이었다. 나는 경향과 내가 지원할 조선일보의 기사를 골랐다.
2009년 여름 나는 20일 간 국토대장정을 갔다 왔었다. 그 해 내 인생 최고의 사건이나 다름없었던 바, 경험한 바를 가장 충실히 작문 주제에 녹여낼 수 있었다. 물론!! 잘 썼다는 말은 아니다.
학력, 나이, 주소, 자격증(토익조차 없었다 0점) 란을 채우는 듯 마는 듯, 그렇게 과제와 함께 서류를 제출했다. 그리고 1차 합격.
*참고로 요즘 조선일보 인턴기자 전형은 많이 바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대로 말하자면 자기소개서등의 서류평가가 1차, 2차에서는 논술과 작문시험 그리고 면접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전환제도라는 게 생겨서 인턴하면서 잘 하면 정식으로 임용되기도 한다. 물론 소수지만. 인턴은 서류평가부터 빡세서 나처럼 토익0점으로는 아마 붙기가 힘들 것이다. 정말 탄탄하게 준비해야 할 듯.
2차는 면접.
위 사진은 내가 신나서 2009년 겨울에 찍은 사진인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여기가 조선일보라 생각하는데 그리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여기는 조선호텔이고 진짜 편집동이 있는 곳은 호텔과 할리스커피 사이 골목길을 올라가야 나온다.
어찌 됐든 그 겨울, 제대로 된 정장 한 벌조차 없던 나는 멋 부리려고 샀던 블랙 세미 정장 재킷과 동대문 시장에서 급 구매한 블랙 바지 정장을 짝도 맞지 않는 두 개를 맞춰 입고 면접을 보러 간다. 오후 1시 20분 타임에 면접을 봤고 면접관은 총 5명, 면접자 총 5명이었다. 가운데 부국장 그리고 사이드로 차장, 부장들이 있었고 여자는 딱 한 명이었다. 지금은 부장을 맡고 있는 강모 여기자님.
첫 질문은 여전히 생생하다. 내 인생 첫 면접이었기에.
"왜 조선일보인가?"
한 명씩 면접관 기준으로 오른쪽 순서대로 발언 기회를 주었다. 나는 총 남자 네 명과 함께 들어갔고 내 자리는 딱 가운데였다. 즉 양 사이드로 남자 두 명을 끼고 여자는 나 혼자였단 뜻. 이것이 나중에 꽤 큰 메리트로 작용하는데...!(편견은 없지만 생각보다 남자분들이 대답을 못했다. 여자들이 조리있게 말을 잘 하는 '편'이라고 믿는데는 이때의 경험이 크게 작용한다)
이때 나의 대답은 "조선일보 구독자로서 매일 지면을 가득 채우는 내용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서 조선일보에 지원했습니다. 이제는 구독자가 아닌 신문 지면을 채우는 기자로서 조선일보를 알아가고 싶습니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어졌던 질문들은, 당시 세종시 수도 이전 관련한 생각, 특기가 주제 파악인데 이게 무슨 뜻인가?, 상업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어떤 계기로?, 우리 뭐뭐 부장도 상고 나왔다고 자기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뭐 이런 대화들이 오고 갔다.
첫 면접이었지만 문을 열고 나오던 순간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될 거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면접이 끝나고 나는 면접비 2만 원을 받고 광화문 거리로 나섰다. 조선계열이 면접비는 참 잘 챙겨준다.
그리고 며칠 뒤.
왼쪽이 최종, 오른쪽이 1차 합격자 명단이다. 나는 문자로 합격 통보를 받는다. 꽤나 쉽게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별 어려움 없이.
그래서일까? 이때 내 언시 인생은 그 운을 다했나 싶다.
또르르르르르....
2편은 내일
* 최종 합격, 학벌에 관하여
나는 S여대 출신이다. 1위 아니고 2위 아니다. 중하위권에 속한다. 우리학교 출신은 나 하나였다. 그리고 또 다른 S여대가 있었고 E여대가 두 세명정도 있었고 상당부분 S대, Y대, K대가 인턴 최종합격자를 구성하고 있었다. 나머지 중상위권 인서울 대학과 기타 지방대도 있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상위권 학벌이 아니라면 노릴 수 있는 자리는 한 자리뿐이라는 것이다. 실제 모 부국장? 국장이 2위인 S여대 출신에게 학벌이 낮아서 많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바 있다. 조선은 학벌을 많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