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XSW. 이 단어를 처음 봤을 때 수학 기호인줄 알았습니다. S X SW=? 읽을 줄을 몰라서 구글 검색 + 위키피디아 검색을 했고, 축제 이름이 왜 남남서쪽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모르는 것 투성이니 이름 찾는 데서 정보 찾기를 멈추었습니다.
SXSW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매셔블의 유튜브 영상을 봤을 때입니다. 햇살이 내리쬐는, 허름한 골목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와중에 짙은 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고 기타를 맨 여성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었습니다. 링크 찾기는 포기합니다. IT 행사로 생각했는데 그런 분위기가 나다니 신기했습니다. 그때 SXSW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됐습니다. 모든 게 평화로운 그런 분위기요. 음악을 즐기고 얘기를 나누고. 이제 와 보니 히피 문화를 상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상을 품과 SXSW에 왔는데 당황,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누군가 'SXSW는 난장판'이라고 했을 때 전 멋진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종 문화가 뒤섞여 융합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분위기를 '난.장.판'이라는 세 글자로 축약해 말하는 걸로 '오해'했지요. 맞긴 한데요. 개인 아니 팀을 꾸려서 와도 이 행사의 규모를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영화 상영, 연설, 대담, 발표, 공연, 홍보활동을 하니까요.
오기 전 저는 스타트업 전시회를 보고 관심 가는 세션을 듣고 밤에는 공연을 보러 다닐 생각이었습니다. 짬이 나면 영화 한 편도 보고요. 막상 축제가 시작하니 계획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게 더 재미있어 보이거든요. 그래서 제 선택에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내가 재미없는 세션만 골라서 온 건 아닐까' '내가 둘러본 곳이 실은 관심 못받는 곳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왜 줄을 안 섰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그만큼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SXSW에서 IT 부문의 중심지인 오스틴 컨벤션 센터의 행사장을 떠돌다 복도에 나오면요. 밖은 날씨가 참 좋습니다. 그렇게 창밖을 볼 때면 '날씨 좋은 테갓스 오스틴까지 와서 왜 실내에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 참 집중 못하게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SXSW에서 모든 게 즐길거리입니다. 운영위가 꾸린 세션은 물론이거니와 IT 기업 부스가 많은 '트레이드쇼', 가보지 못한 '잡 마켓', 삼성전자와 IBM, 델, 맥도날드, 소니, 마즈다, 버드라이트, 왕좌의게임, 몬스터 등 내로라하는 기업과 브랜드가 차린 홍보용 부스와 인테리어를 새로 한 건물도요. 이보다 더 재미난 건 여기에 온 사람들입니다.
SXSW에 오면 오스틴 주민도 보이는데요. (뱃지를 잘 보면 어디에서 왔는지가 쓰였어요) 오스틴 주민은 SXSW가 열리는 시내에 살지 않는대요. 한국식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고 있지만, 물가가 비싸지고 있어서 다들 외곽으로 이사 가고 그도 아니면 오스틴 근처 도시로 간다고 합니다. 실리콘밸리 기업이 오스틴에 사무실을 내거나 작은 기업이 옮겨오거나 하면서 오스틴이 점점 테크 도시가 되어가고 있거든요.
이 얘기를 들으며 판교가 떠올랐습니다. (계획도시인 판교와 비교 불가하긴 합니다만) 판교에 테크 기업이 오면서 판교 뿐 아니라 분당 전체, 용인도 부동산이 오르고 있거든요. 계획도시이긴 합니다만 IT 기업이 이전하면서 오르는 정도가 커졌습니다.
SXSW에 와서 놀란 건 오스틴 또는 텍사스에 자리잡은 테크 기업이 있다는 겁니다. 이사온 게 아니라 여기에서 나고자란 기업이요. '텍사스 = 카우보이' 라는 생각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않던 제 사고가 SXSW에 와서 깨졌습니다. SXSW에 오기 전 사람들에게 '텍사스 오스틴 갑니다'라고 말하면 다들 장난처럼 또는 진심으로 '총 조심하라'고 했는데요. 장총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편견입니다.
미국의 스타트업 씬, 하면 다들 실리콘밸리를 떠올릴겁니다. 최근 뉴스를 보아서 아시겠지만, 물가가 살인적인 동네입니다. 이젠 그걸로 유명할 것 같아요. 실리콘밸리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곳인 텍사스 오스틴입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 따뜻하고 텍사스 대학교 캠퍼스가 이곳에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 스탠포드 대학교처럼 스타트업에 합류할 인재가 모였죠.
오스틴에 있는 액셀러레이터 '인터내셔날 액셀러레이터'는 4가지 이유를 듭니다. 미국 시장을 노린 스타트업이 SXSW가 열리는 이곳, 오스틴으로 와야 하는 까닭으로요.
유럽 대륙에서 팀을 꾸린 스타트업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런던으로 옮깁니다. 런던으로 옮기면 투자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그런 다음에 실리콘밸리로 갑니다. 한국의 스타트업도 본사 주소를 미국에 두는 곳이 있는데요. 투자 유치가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한국보다 투자 규모가 큰 건 물론이고요.
오스틴에 있는 벤처 투자 규모는 10억 달러가 넘습니다. 20년 동안 오스틴에서 스타트업이 투자 받은 금액은 12억 달러를 넘고요. 인큐베이터와 액셀러레이터, 코워킹 스페이스를 모두 더하면 35개가 있습니다.
오스틴의 집값은 샌프란시스코의 절반에 못미칩니다. 얘기 다한 것 아닌가요. 살 수 있는 동네여야 인재가 있을테니까요. 오스틴은 식료품, 교통비, 의료비도 낮습니다.
주거비가 낮으니 물가가 싸니 임금도 낮겠죠. 회사 운영비도 낮을 테고요.
Source: Bureau of Labour Statistics, RS Means, San Francisco Water Power Sewer, Austin Water
오스틴의 인구는 젊습니다. 학사 학위가 있는 25-44세 인구가 절반에 달합니다. 아, 오스틴 시의 인구는 90만 명입니다. 근교의 인구까지 더하면 200만 명이 넘습니다. 오스틴 사람 나이의 중간값은 28세. +_+. 이중 테크 산업 종사자는 10명 중 3명. 생동하는 도시네요.
이건 제가 꼽은 이유입니다. 미국의 메트로폴리스는 서울보다 자연과 가까이 있습니다. 서울과 근교의 도시, 그리고 논두렁 옆의 하천조차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발렸는데요. 오스틴은 아닙니다.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있지만, 시내의 건물 대부분은 낮습니다. 오스틴 시청 앞에는 콜로라도 강이 흐르고요. 콘크리트 바른 한강을 떠올리지 마세요. 다운타운의 공터에서 청솔모를 볼 수 있습니다. +_+
오스틴의 인기는 날로 높아갑니다. 처음에 이곳 주민들에게 '우린 음악 도시고, 테크 도시고'라며 자랑을 들을 땐 그러려니하고 여겼습니다. 인구가 빠지는 지방의 소도시도 주민들의 자부심은 크니까요. 슬레이트의 이 글을 보니 오스틴의 인기는 지표로도 드러납니다. 미국 인구조사국은 2015년 5월 오스틴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로 꼽았습니다. (1년 사이에 2.9%가 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