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쇼 Apr 21. 2016

밀라노에서 만난 프랑스 SW기업 ‘다쏘시스템’

생애 처음으로 이탈리아, 그 가운데서도 밀라노에 다녀왔습니다. 출장 다녀왔다고 하면 다들 "?????"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IT 기자가 이탈리아 밀라노에 갈 일이 있긴 하냐는 거지요. 있더라고요. 저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4월 중순, 이탈리아 밀라노에선 '밀라노 디자인 위크'라는 행사가 열립니다. 배낭여행자라면 이 때를 피해야 합니다. 방값이 평소의 곱절로 비싸기 때문입니다. 배 이상입니다. 일반 호텔은 값싼 방은 이미 빠져나간 뒤라서 하루에 30,40만원짜리 방부터 있거나 80,90만원으로 훌쩍 뜁니다. 에어비앤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체크인과 체크아웃 날짜를 선택하지 않고 검색했을 때와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일정에 넣어 검색하면 방값이 세 배 차이가 나더군요. 그만큼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어마한 행사입니다.


다쏘시스템이 행사를 연 미코 콩그레스에 걸린 밀라노 간판


2016년,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4월 12일부터 17일 사이에 열렸습니다. 왜 이때냐하면요. 올해로 55회를 맞이한 밀라노 가구 박람회가 이 시기에 열리기 때문입니다. 가구 박람회는 회를 거듭하며 공간 디자인과 인테리어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지금은 밀라노 시내에서 차로 30분 (어디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만 서울로 치면 일산 킨텍스 위치입니다) 떨어진 밀라노 삐에라에서 열립니다. 가구와 인테리어 회사는 밀라노 삐에라뿐 아니라 밀라노 시내 매장에서도 전시를 같이 엽니다. 그러면서 가구 외 산업에서도 이 기간에 끼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패션, 가전제품, 컴퓨터, 모바일 기기, 자동차, 디자인 커뮤니티(한국으로 치면 '하우스' 앱)가 이 기간에 맞춰서 전시회를 엽니다. 공통 분모 없는 산업들이지만 모두 '디자인'을 내세웁니다. 행사 명도 '밀라노 디자인 위크'지요.


http://www.turismo.milano.it/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중구난방으로 열리는 것 같습니다만, 이탈리아 관광청 사이트에 행사 정보가 올라오는 주요 행사입니다. 출발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다녀와서 발견했습니다.


제가 다녀온 행사는 위 지도에 나오지 않습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살짝 걸쳐서 4월 11일과 12일에 열렸습니다. 주최측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행사 절정에 열면 비용은 비용 대로 나가고 올 사람들을 다른 행사에 뺏길까봐 하루 일찍 연 것 같습니다. (가보았습니다만 대부분 SW 회사 또는 공학도라서, 편견이 아닙니다만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그리 즐겼을 것 같지 않습니다.)


저를 초대한 회사는 프랑스의 다쏘시스템입니다. 다쏘시스템은 캐드 소프트웨어 회사입니다. 우리가 아는 캐드 맞습니다. 이 회사는 프랑스의 전투기 제조 회사의 개발팀에서 출발했습니다. 전투기를 만들려고 내부에서 만든 캐드 소프트웨어의 성능이 너무나도 뛰어나다는 개발팀의 자신감이 만든 회사입니다. 전투기 디자인용 캐드 소프트웨어를 여타 항공기 제조사에 팔겠다는 이 발상을 한 개발자는 프랑시스 버나드입니다. 당시 개발팀 리더였습니다. 공학도이니 영업은 할 줄 몰랐지요. 


개발자만 25명으로 채운 다쏘시스템은 1981년 출발했습니다만 제품을 팔 줄 몰랐습니다. 당시의 카티아는 단독으로만 판매하지 않았습니다. 이 소프트웨어를 돌릴 컴퓨터에 얹어서 팔았지요. 그 일을 한 게 IBM이었습니다. 초기 다쏘시스템은 개발만 하고 영업과 판매는 IBM을 통해서 했습니다. 그러다 IBM에서 다쏘시스템의 영업을 맡던 조직을 인수하였고, 25명으로 출발한 회사는 이제 각국에 있는 지사 포함 1만3천명이 넘는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다쏘시스템은 설립 10년이 지나고 전기를 맞이했습니다. 고객사인 보잉사가 '실물 크기로 샘플 제작하는 작업을 덜 수 없나. 컴퓨터로 모의 실험하면 좋을텐데. 다쏘, 안 되겠나'라고 의견을 제시한 거지요. 그때까지 카티아는 설계를 도와주는 소프트웨어에 불과했습니다. 다쏘시스템은 결국 해냈고 1994년 보잉 777을 3D 시뮬레이션으로 디자인과 성능을 검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쏘시스템의 카티아로 설계한 보잉777 http://www.boeing.com/commercial/777/#/gallery/

항공기 제조사 내 개발팀이 다쏘시스템이란 회사를 설립하도록 이끈 캐드 소프트웨어 카티아는 항공기뿐 아니라 자동차, 조선, 건축, 의수 제작 등에도 쓰입니다. 항공기와 자동차, 선박 부문에서 세계 톱 소프트웨어이지요. 2016년 다보스 세계 경제 포럼에서 지속가능기업 2위에 꼽혔습니다. 1위는 BMW인데요. 다쏘시스템의 카티아로 전기차를 디자인합니다. 1위 같은 2위네요.

다쏘시스템은 보잉 777을 3D 시뮬레이션하는 데 성공한 뒤로 컴퓨터 모의 실험을 전 영역으로 확대하려 합니다. 화장품이나 제약회사가 동물이나 사람을 상대로 임상실험하는데 이걸 자사의 소프트웨어로 대체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를 위해 제약회사 프랑스 국립 연구소와 컨소시움 (바이오인텔리전스)을 구성해 연구 중입니다. 


도시 계획과 정책을 입안하는 데에도 발을 들이밀었습니다. 버추얼 싱가포르라는 프로젝트는 싱가포르의 온갖 데이터를 다쏘시스템의 소프트웨어에 넣어 가상의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현실의 싱가포르를 가상에 하나 더 만들어 가상의 도시를 두고 실제 정책을 입안하기 전 이 안에서 실험을 하는 겁니다. 당장 공상과학소설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겠지만, 다쏘시스템은 기반 소프트웨어와 기술, 선례를 하나하나 쌓고 있습니다.


다쏘시스템과 싱가포르 총리실 산하 연구소가 하는 프로젝트. 버추얼 싱가포르 예시 화면

행사 중 버나드 샬레 다쏘시스템 CEO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다쏘시스템은 전문 분야에서 세계 톱이며 경쟁자를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서가고 있습니다. 2015년 매출이 28억3900억 유로, 한화로 3조 6천억 원이 넘습니다. 2014년보다 24% 성장한 수치입니다. 그야 말로 승승장구하는 상황인데요. 도전이랄 게 있을까요. 늘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고 생존 게임을 하는 스타트업을 만나다가 다쏘시스템처럼 어려울 게 없어 보이는 기업을 만나니 아주 단순한 게 궁금했습니다.


프랑스의 인상 좋은 할아버지처럼 미소를 머금은 버나드 샬레는 "3D 시뮬레이션을 하는 데 성공한 게 보잉 777이고 20년도 더 된 일인데 아직 그 기술이 여러 산업으로 퍼지지 않은 게 우리에게 도전이라면 도전"이라고 말했습니다. 버나드 샬레는 말투가 느릿하고 미소를 머금고 말하는 탓에 느긋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요. 창업 30년이 지나고도 질주 본능을 참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올해 만난 버나드 샬레는 머리가 더 희끗했습니다. 흰 색 셔츠에 남색 스카프를 맸는데요. 위 사진보다 인상이 더 푸근해보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메뉴에 나오지 않는, 인스타그램 사진 감상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