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동아서점
이번 주 충동적으로 속초에 다녀왔습니다. 당일치기 여행인데 목적지는 오로지 한 곳 강원도 속초시 교동 658번지에 있는 동아서점이었습니다. 퍼블리 박소령 대표가 극찬에 극찬을 아끼지 않기에 궁금했는데 사업 제안차 간다기에 구경할 겸 갔습니다. 옆에서 얘기를 듣다 블로그에 써도 되느냐고 물었고 “아, 뭐”라고 허락아닌 듯한 허락을 하였기에 다녀온 후기를 씁니다.
동아서점은 문을 연 지 60년이 되어가는 서점입니다. 간판에는 1956이라고 쓰였습니다. 올해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63년 된 서점이 문을 닫았는데 동아서점은 되레 확장이전했습니다. 동네서점이 줄어드는 분위기가 이 서점만을 빗겨간 걸까요(말씀 쭉 들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속초시 중앙동 4번지에 있던 동아서점은 올 1월 교동으로 확장 이전했습니다. 새로 온 자리는 2층짜리 건물인데 1층은 서점 2층은 창고로 씁니다. 1층의 규모는 120평. 사장님 말씀으론 단일층으로 1백 평 넘는 서점은 전국에 50곳도 없을 거라고요. 길가로 난 창이 시원하게 뚫려서 더 넓어 보였습니다.
동아서점에 가면서 트위터에 속초에 재미난 서점에 간다고 글을 올렸더니 속초 출신 두 분이 어느 서점에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서점 이름과 주소를 말했더니 두 분 다 고개를 갸우뚱. 이 서점의 아들과 동창이라는 분은 특별함을 느껴본 바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서점에서 박소령 대표는 무엇에서 특별함을 본 걸까요. 가보니 알 것 같았습니다. 이건 서울 사는 사람이 지방 도시에 갖는 환상과 맞닿습니다. 한적한 동네에 선 큼직한 서점. 내외부가 깔끔하고 살뜰하게 꾸민 흔적이 느껴지는 서가. 같은 서점이 서울에 있어도 눈길 받았을텐데 속초 서점이 이러니 더욱 흥미롭습니다. 제 눈에도 동아서점은 큼직하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습니다.
속초의 동네서점이라고 소개받고 갔는데 단독 건물에 깔끔한 외관, 넓직한 실내까지 동네서점치고 규모가 컸습니다. 넓은 서점은 저희 동네에도 있고, 어릴 적 살던 동네 서점도 길 건너로 확장 이전하며 엄청 큰 서점이 되었습니다. 동아서점에서 제가 느낀 특별함은 팀장님 멋대로 고르고 꾸민 서가였습니다.
문앞에서 대충 훑으면 여느 서점이랑 다를 게 없는데요. 책을 보러 서가 앞으로 다가가면 서울에 관한 책 두 권을 골라 서울 vs 서울 이라거나 영화로 나오며 유명한 소설 마션과 우주의 생성 원리를 다룬 책을 모아 영화 마션 과학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제목에 불안이 들어간 불안 vs 불안 식물 이야기 사전과 세계 야채 여행을 식물 vs 야채라고 쓴 팻말을 달아 비치하였고요. 다른 서점이 아닌 동아서점 손님에게 인기를 끈 에세이를 모아서 진열한 모습이 재미있었습니다.
프랑스 탐정소설 조르주 심농 시리즈를 책장 한 칸에 모았는데요. 여기에 조르주 심농이라고까지 작은 종이를 붙여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열린책들 내부에서 기대에 못미친 성과를 거둔 걸로 평가하는데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애정 듬뿍 담아 진열하는 서점이 있다고요.
전 동아서점에서 동네서점에서도, 대형서점에서도 느끼지 못한 재미를 느꼈습니다.
아무런 안내 없이 꽂혀 있으면, 그 책은 그냥 책입니다. 관심있게 들여다 볼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흔하디 흔한 책에 불과하죠. 동아서점은 별 것 아닌 걸로 넘길 책을 주제별로 모아서 단 두 권일지라도 그 책이 담는 주제를 단어 하나로라도 소개합니다. 모르던 책을 이렇게 발견하고, 알던 책은 여기에 와서 한 번 읽어볼까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겁니다. 전 여기에 가서 자꾸만 지갑을 활짝 열려고 하는 제 마음과 싸웠습니다.
동아서점처럼 책을 진열하는 게 그리 특별하냐, 어디든 다 하는 거 아니냐고 제게 묻는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교보문고와 같은 대형서점에 가면 늘상 보는 모습이고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점에 가면 재미가 없습니다. 새로 나온 책을 따로 모은 매대를 보아도 심드렁합니다. 매대가 광고판이 되면서 서점이 골라서 보여주는 책을 썩 내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형 신간 그러니까 무라카미 하루키나 김훈, 조정래 작가와 같은 누구나 이름 한 번 들어본 작가의 책이 나오면, 매대 하나가 아니 두서너 개가 통으로 그 책 한 권으로 찹니다. 그 매대엔 다른 책이 오르지 못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건데요. 소름끼치게 싫습니다.
큰 서점은 이러하고요. 동네서점에 가면 팔릴 책만 들여놓기 때문에 (당연한 거죠) 베스트셀러 위주로 구색을 맞췄는데요. 베스트셀러 살 거면 전 온라인 서점을 쓸 것 같습니다.
속초 시외버스 터미널 또는 속초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택시 타고 10분 남짓. “교동 우체국 연수원 가주세요”라고 합니다. 동아서점이라고 말하면 모르시더군요. 전 동아서점 옆에 있는 교동 우체국 가달라고 했더니 기사님이 한참만에 “연수원 말하는구만”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에 교동 우체국 연수원이라고 말하면 된다고 짐작했습니다. 과묵하셨어요. 동아서점은 우체국 바로 옆에 있습니다.
모처럼 서점에 갔는데 책도 읽고 오면 좋겠죠. 속초 동아서점은 정문 옆 창가에 긴 책상을 설치했습니다. 창밖을바라보며 책 읽을 수 있어요. 책상 조명이 있어서 어둑어둑한 저녁에 독서하기도 괜찮습니다. 이 공간을 꾸미는 손길에서 아기자기함이 묻어나는데요. 팀장님의 어머니, 그러니까 사장님의 부인께서 손수 꾸민다고 합니다. 제가 갔을 때는 색깔 고운 낙엽을 주워 올려놓았더라고요.
봉포머구리
강원도 속초시 청초호반로 56
추천메뉴: 성게모둠물회, 성게알밥, 성게미역국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쉬는 날이 없습니다. 휴무일 공지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합니다.
동아서점에서 서가 관리를 비롯한 운영을 맡는 K팀장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