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모바일 소설 공모전을 여는 까닭
‘전자책은 들이는 돈 대비 나오는 수익이 많지 않다’고 하는 출판사 얘길 건너건너 듣는데요. 하루 종일 손에서 떼지 않는 이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을, 그것도 사서 읽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 맞는 책이(이쯤 되면 책이라고 해야 하는지 글이라고 해야 하는지 헷갈립니다) 나오지 않아서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건 아닐까요.
책 한 권 써본 적 없고 만들어 본 적 없지만, 이따금 모바일에 맞는 유료 글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답 안 나오는 고민을 혼자 하다가 재미난 얘기를 들었습니다. 다산북스와 카카오페이지의 콜라보 프로젝트인데요.
두 회사가 공동으로 ‘모바일 소설 공모전’을 여는데 응모조건과 심사기준이 꽤 까다롭습니다.
주제_살아남아라
주제 설명_직장생활, 소개팅, 유체이탈, 게임, 음모론, 빚, 대한민국, 마감임박, 재난, 감염, 연쇄살인, 우주정복 등
형식_연재작품
이야기 전개 조건_1화에서 눈을 사로잡으면서 다음 화가 궁금하도록 전개하면서 3화~5화에서 에피소드 하나를 마무리하고 이야기는 ‘기-승-전-결’이 아니라 ‘전-기-승-결’이어야 하고 캐릭터와 사건이 도드라진 소설이면서 에피소드 한 편 한 편이 작품의 전체 줄거리와 연결이 되면서 메인 스토리 라인이 확실해야 하는데 에피소드를 단순 나열하는 작품은 지양
특히, 이야기 전개 조건까지 내건 게 신기합니다.
① 1화에서 눈을 사로잡으면서 다음 화가 궁금하도록 전개하면서
② 3화~5화에서 에피소드 하나를 마무리하고
③ 이야기는 ‘기-승-전-결’이 아니라 ‘전-기-승-결’이어야 하고
④ 캐릭터와 사건이 도드라진 소설이면서
⑤ 에피소드 한 편 한 편이 작품의 전체 줄거리와 연결이 되면서
⑥ 메인 스토리 라인이 확실해야 하는데
⑦ 에피소드를 단순 나열하는 작품은 지양
(어쩌라는 건가요...)
이건 모바일에서 읽힐 글이 무얼지 다산북스와 카카오페이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나온 조건입니다.
이 얘길 전 다산북스의 서대진 디지털콘텐츠 팀장에게 먼저 들었는데요. 모바일에서 통하는 글이 무얼지를 두고 다산북스와 카카오페이지가 고민한 내용이 무엇인지, 그것만 공유해도 의미 있을 거라고 부추겼습니다. 저랑 인터뷰하자고요. ^^;
카카오페이지 운영을 맡는 곳이 포도트리이므로, 저는 서대진 다산북스 팀장과 포도트리의 이수현 대리를 만났습니다.
이야기를 듣기 앞서 카카오페이지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카카오페이지는 카카오가 2013년 4월 만든 앱인데요. 교보문고나 예스24, 리디북스가 하는 전자책 서점과 다르게 어느 주제이든 연재하는 전자책 서비스입니다. 형태가 기존의 전자책 서점과 다르고, PC는 제끼고 모바일 앱에서 팔고, 판 책은 모바일 앱으로만 보여주는 특징 때문에 카카오는 카카오페이지를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웹으로 볼 방도를 마련했으나 앱으로 보는 게 주력입니다)
카카오페이지는 모든 면에서 생소했기 때문에 초반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13년 가을 만화를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면서 '실패한 서비스'에서 '성공적인 서비스'로 거듭났습니다.
지금은 만화와 소설, 도서(판타지, 무협, 로맨스를 뺀 나머지 책)로 나눠 서비스중입니다.
서대진 다산북스 디지털콘텐츠 팀장 다산북스의 디지털 콘텐츠 팀에서 전자책 사업을 맡고 있어요. 모든 유통사와 직거래해서 운영할 수 있는 작품을 다루는데요. 아프리카TV와 유튜브에서 유명한 BJ를 인터뷰하여 올해 'BJ로 산다는 것'이라는 시리즈를 전자책으로 냈어요.
다산북스에는 몬스터라는 전자책 브랜드가 있는데요. 이건 '콘텐츠를 읽게 하는 원동력이나 동기를 제공하는 게 중요할 것'이란 생각에서 출발했죠. 디지털 퍼스트 또는 디지털 온리를 추구하는데요. 종이책으로 먼저 내지 않고 전자책으로 내는 브랜드입니다. 종이책 출판사가 다루지 않은 새로운 분야, 새로운 카테고리를 기획하고 새로운 느낌의 트렌드를 빠르게 담는 게 핵심가치예요.
이수현 포도트리 도서사업팀 대리 저는 올 3월 포도트리에 입사했어요. 입사해서 처음엔 베스트셀러 위주로, 대중적으로 잘 팔리는 도서를 팔아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가 나왔어요. 사람들 반응도 없고 구매 연결도 안 되었죠. 좌절했죠. 고민도 많이 했고요.
뷰어가 안 좋아서인가라는 고민도 했죠.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바일에 맞게 책을 분절해서 팔았는데 제가 읽어보니, 그러니까 독자처럼요, 원하는 시점에 예상하는 결말이 안 나오니까 답답하더라고요. 기-승-전-결은 종이책에 맞는 호흡인데 모바일로 끝까지 읽기엔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카카오페이지를 쓰는 독자는 기존의 종이책이나 전자책 시장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과 습관이 다르다는 결론을 얻었죠.
서대진 팀장과 이수현 대리는 요즘 뜻이 잘 통합니다. 서대진 팀장은 다산북스에서 종이책이 아닌 디지털, 그것도 모바일에서 팔릴 책을 개발하는 미션을 수행 중입니다. 이수현 대리는 포도트리에서 카카오페이지의 만화, 소설도 아닌 도서사업팀에서 일하며 만화, 웹툰, 웹소설이 아닌 분야에서 매출을 만들어야 하는 미션이 있고요.
서대진 팀장은 “모바일 친화적 콘텐츠, 모바일에서 장르소설 외에 사람들이 향유하고 일정 시간을 넘어서 끝까지 읽을 콘텐츠가 무얼지, 그걸 성공적으로 유료화할 방법이 무얼지, 그런 콘텐츠는 어떤 모습일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판타지, 무협, 로맨스가 잘 팔리는 건 아는데 다른 건 없느냐는 거죠. 편집자로서 그걸 개발하고 싶은 욕심이 서대진 팀장에게 있는 거고요.
모바일 콘텐츠 경쟁이 심화되고 어느 정도 획일화되었다고 봅니다
서대진 팀장은 같은 책이 종이책으로는 잘 읽혀도, 전자책, 모바일로 넘어오면 완독률이 떨어진다는 가설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여기에다가 최근 3-4년 스마트폰 보급률이 늘면서 출판 콘텐츠가 웹툰,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 메신저와 경쟁하는데 단연 불리한 상황이라는 인식도 있었습니다.
모바일에서 읽을 거리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
이수현 대리도 이 질문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저희 팀 부장님이 나우누리에서 즐겨 읽던 유머 글을 카카오페이지 편집도구에 넣어서 테스트해봤는데 재미가 없었어요. PC통신은 모니터 화면에서 페이지를 넘겨보는 방식이었거든요. 그런 테스트를 해보면서 뷰어에 대한 걱정을 덜었어요. 뷰어의 기능보다 가독성을 생각하게 된 거죠.
종이책을 디지털로 바꿨을 때의 가독성과
모바일로 볼 때의 가독성이 다른 거죠.
카카오페이지는
웹소설과 그 외 소설의 제작 가이드를
다르게 제공해요.
글씨체부터 좌우여백과 줄간격, 자간, 장평, 해상도까지요.”
‘모바일 소설 공모전’
네이버가 명명한 '웹소설'의 다른 버전일까요. 느낌적인 느낌으로다가 웹소설과 다른 것 같긴 합니다.
카카오페이지라는 플랫폼이 지닌 특수성부터 봐야 합니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전용 앱으로 서비스하는 앱인데요. 전자책이라고 하기엔, 교보문고나 예스24, 알라딘, 리디북스, 북큐브와 다릅니다. 책을 뜯어서 조금씩 파는데 전자책의 미덕인 글꼴과 글자크기, 여백, 줄간격을 바꾸는 기능이 없습니다. 첫 화면에 웹툰과 만화, 웹소설이 그득합니다. 먼 먼 아주 먼 옛날 동네마다 있던 도서대여점에 간 듯한 느낌이 납니다.
제가 다니던 도서점에는 진지한 책이 이따금 들어왔는데요. 그런 건 만화와 소설 읽다가 지겨워 하는 단골이 분위기 전환 차 읽는 책이었습니다. 무협지 읽다가 이번 주말엔 괜히 마음의 양식이 되는 책을 찾아보는 거죠. 매출 대부분은 만화와 한번에 3~10권씩 빌려가는 판타지나 무협 소설이었죠. 로맨스는 제 기억속에 단권이나 두권, 많아야 세 권 세트였습니다. 이런 책들은 금세 읽으니 회전도 빠릅니다. (빨리 반납 안 하면 혼났고요 ㅠ ㅠ)
카카오페이지가 딱 이런 분위기죠.
카카오페이지가 교보문고나 예스24, 알라딘의 웹사이트 첫 화면, 광고에 거는 책과 다른 걸 파는 앱이란 걸 알겠습니다. 2013년 출시 때부터 그걸 내세웠고요. 그런데 뭐가 어떻게 다른 걸까요. 덜 진지한 걸 판다는 것 말고요. 답은 제가 만난 세 사람도 찾는 중이었습니다.
“장르소설은 모바일에 맞게 진화했다고 봐요. 대화체로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거든요. 이게 시사하는 바가 있지만, 모바일 콘텐츠 모두가 이걸로만 채워질 필요는 없어요. 독자가 도움을 받거나 이득을 얻거나 재미를 느끼면 좋은데 여기에 맞게 도서 콘텐츠도 진화할 필요가 있죠.
누구도 이게 뭔지를 모르는 거죠.
‘모바일 친화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구호처럼 말하는데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저희는 해보자는 거예요.
일단.
이번 공모전이 잘 안 되어도
다 경험이 되어 쌓일 거라고 생각해요”
(서대진 다산북스 디지털콘텐츠 팀장)
손에 쥘 수 없는 이상향과도 같은 ‘모바일 친화적인 콘텐츠’. 출판사 혼자서는 답을 구하지 못할 겁니다.
모두가 ‘이게 정답이야’라고 말하는 건 출판산업에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무얼 어떻게 해야 모바일에서 팔릴까요? 공식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카카오페이지를 운영하는 포도트리가 정답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최소 조건은 발견하지 않았을까요.
“활자를 읽으면서 머리에 그림을 그리듯 상황을 인지하면서 빨리빨리 봐야 하거든요. 그게 결국은 구매랑 연결되요. 종이책을 페이지 맞춰 잘라서 파는 걸 실험해봤어요. 웹소설은 한 권이 아니라 짧게 회당 연재하잖아요. 다산북스의 신간과 구간을 카카오페이지에서 분절해 팔아봤죠. 베스트셀러를 한 회에 1백 원, 2백 원에 팔았는데 베스트라고 해서 나가지 않더라고요.”
카카오페이지는 책 한 권을 통째로 팔지 않습니다. 조금씩 팔죠. 회당 파는 연재물을 하나로 묶으면 값이 꽤 나갈테지만, 독자에게 끝까지 재미있을지 없을지 모를 책을 통으로 파는 대신에 조금씩 떼어서 팝니다. 읽다가 재미 없으면 그만 사고 안 읽으면 됩니다.
책 한 권 또는 작품 하나를 사서 읽는 턱을 낮추었는데 과제가 있습니다.
“끝까지 읽게 하라” “멈추지 않고 구매하게 하라”
결국 점유 시간과 직결하는 거에요.
글을 읽다가 덮는 순간
(다른 앱을 켜는 순간)
모바일 속으로 콘텐츠가 숨어 버리면
엄청난 경쟁으로 들어가죠.
다시 읽으려는데
메신저 보고
페북 알람이 오면 페북에 들어가죠.
그러면서 콘텐츠를 이어서 보겠다는 생각은
사라집니다.”
서대진 팀장의 말대로 스마트폰으로 긴 글 하나 읽기가 벅찹니다. 수시로 울리는 알람, 별일이 없어도 저도 모르게 들어가는 메신저와 페이스북.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면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진득하게 하는 게 어렵습니다. 그중 글은, 메신저나 페이스북에 쓰이지 않고 사서 읽는 글은 집중하기가 가장 힘듭니다. 사는 것부터 난관이죠. 그래서 모바일 소설 공모전의 응모 조건이 7가지나 됩니다.
이수현 대리는 그 조건을 막연하게 떠올린 게 아니라 검증해서 추린 것들이라고 말합니다. “웹소설 서비스하면서 어느 정도 검증된 조건을 공모전에 담았어요. 이를 테면 3화에서 5화 사이에 기승전결이 한 번이 있어야 한다는 거요.”
서대진 팀장과 이수현 대리가 답을 알기에 이 글을 쓴 건 아닙니다. 그간의 고민을 제게 말해주었고, 누가 읽을지 모를 웹에 기록하는 걸 찬성했기 때문입니다.
정답을 아는 사람만 발언할 수 있다면, 그래야만 한다면 정답 찾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요? 보물을 찾을 때 남들이 이잡듯 뒤진 곳은 소거하면서 찾는 것처럼, 그리고 보물이 있는 동굴에서 해골을 발견하면 틀린 길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것처럼, 세 사람이 말한 게 한 해, 두 해 지난 뒤 틀린 걸로 결론이 날지 모르지만(해골처럼요 ㅠ.ㅠ) 서로 머리를 맞대며 내린 결론과 고민을 아낌없이 나누는 데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정보라 그런데 이름을 왜 '모바일 소설'이라고 지었어요?
서대진 이 공모전의 이름을 지을 때 고민 많이 했죠. 모바일에 맞는 이야기이면 좋겠고, 굳이 소설이라고 칭하지 않아도 될 장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마약 같은 이야기라는 뜻으로 ‘드럭스토리’라는 후보도 있었고요.
이수현 스마트폰을 쓸 때 손가락, 엄지를 쓰잖아요. 그래서 핑거가 들어가는 이름도 있었……
서대진 엑셀을 띄우고서 생각나는 대로 백개 적었는데, 새로운 장르를 여는 듯하면서도 학술적이거나 먼 얘기처럼 느끼지 않고 창의적인 이름을 만들면 대중과 멀어지므로 직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대화를 슬슬 마무리하면서)
정보라 그래서, 모바일 소설 공모전 어떤 작품을 기대합니까? 예시라도 보여줘야죠!
서대진 (몸을 앞으로 내밀며 테이블에 더 무겁게 기대면서) 이런 이야기 어때요. 마이크로소프트웨어가 폐간 위기에 처한 거예요. 1화가 대표나 편집장님이 실의에 빠져서 목을 메는 장면에서 끝나고, 2화에서는 눈을 떴는데 중학생이 되는 거죠. 잡지 산업을 부흥하여 글로벌 기업을 만들겠다는 동기를 가지고서요. 자기 미래를 아니까 헤쳐나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리는 거예요.
정보라 ……그런 황당무계한 얘기도 뽑을 거예요?
서대진 그럼요! 재미만 있다면
정보라 ……
이혜원 이수현 대리와 서대진 팀장님의 말버릇이에요. “재미만 있다면” (이날의 옵저버. 이수현 대리가 있는 포도트리 도서사업팀의 부장)
이수현 서대진 팀장님이 자주 언급하는 말이 있어요. ‘전-기-승-결’ .찌라시나 사람들 입으로 전하는 재미난 얘기는 결론이나 사건부터 나오잖아요. 듣는 사람이 그 다음 말을 궁금하게 하는. 공모전 작품은 각잡고 쓰지 않아도 되니까 누구한테 얘기하듯이 써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