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고

by 보라


이영애 나오는 거 아무 영화나 틀었다. 2001년작이군. 난 이 영화 이제야 봤다. 나에게 2001년은 도저히 영화를 볼 상황이 아니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나이에 난 백수였다. 부모님께 면목이 없었다. 대학교는 자퇴했다. 부모님께 영화 보러 극장에 간다고 돈 달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아빠 말씀이 기억난다. "대학에 돈은 한 다발 갖다 주면서 왜 하는 건 많이 없니?" 그러게.... 진짜 우리 집 형편에 맞지 않게 돈을 가져가는 것도, 대학생활 적응 못해 방황하는 것도, 모든 게 다 죄책감으로 느껴졌다.

이 영화를 초반쯤 보면 자그마한 이영애가 유지태에게 폭싹 안기는 씬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짜증 나게.ㅋㅋ 난 그때나 지금이나 연애포기 상태다. 지금은 그렇다 쳐도, 어렸던 나는 왜 그렇게 까지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나. 따지고 보면 대학 자퇴도 그럴 수도 있고. 인생을 포기할 만큼 큰 일은 아닌데. 나는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 어렸던 나에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너무 죄책감 가지지 않아도 돼. 그렇게 자기혐오할 필요도 없어.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거야. 사람은 누구나 다 소중한 존재야"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가겠지. 하지만 다가오는 여름이 있다. 봄날이 간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새롭게 맞이하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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