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

by 보라

할머니가 2021년에 돌아가셨다. 나는 할머니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주검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할머니의 죽음보다 나의 트라우마가 될까 봐 무서워서 이기적으로 장례식 마저 불참했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밀양에서 깻잎 따는 일을 하셨다. 내가 대학을 자퇴한 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할머니의 일터에 놀러 가 보았다. 허리를 구부리고 깻잎을 따시던 모습, 깻잎을 정리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할머니는 숙식을 깻잎 농장 주인집에서 해결했다. 그 집 푸세식 화장실에 구더기가 바글바글 가득 차 있던 모습 충격이었다. 밥을 먹는데 대충 밥덩이하나와 김치로 때우고 나에겐 짜장라면을 주셨다. 나는 여러 번 말했다."깻잎 좀 그만 따고 우리 집에서 같이 살자"라고. 하지만 할머니는 계속 거절하셨다 "니 취직하면 같이 산다"라면서.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 맞벌이하셔서 할머니 손에 자랐다. 할머니와의 기억은 내가 할머니 친구분 집에 따라갔던 것. 할머니가 대충 내 머리카락을 잘라 주시던 것. 너무 심심해서 할머니께 스케치북을 내밀며 예쁜 사람이나 동물을 그려달라고 졸랐다. 전체적으로 심심하다는 기억이 크다. 할머니가 어린 나와 잘 놀아주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듯하다.

커가면서 나는 할머니의 나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고 말았다. 사소한 것 남동생은 미용실 보내면서 나는 왜 항상 할머니가 집에서 대충 머리카락을 자르냐고. 도시락 반찬은 왜 남동생에게 더 많이 주냐고. 손님이 오셨는데 할머니가 사과를 내어오셨는데 나 스스로 집어먹으면 되는데 왜 항상 할머니가 집어주냐고. 할머니와 같이 버스 탔는데 할머니가 발을 헛디뎌서 나와 할머니 모두 넘어졌던 적 있는데. 그래서 나는 잠깐 기절했는데. 깨어나니까 병원에도 데려가지 않았냐고.

내가 할머니 인생에 과연 소중한 사람이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구도 거의 없고 부모님 맞벌이하시고 의지할 사람은 할머니 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때 매일매일을 왕따와 놀림에 시달렸는데, 할머니가 학교에 와서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혼내주셨다. 그 뒤로 괴롭힘이 줄어서 그땐 진짜 고마웠다.

내가 지나치게 부끄럼 많고 아웃사이더에 가까운 건 할머니 탓이라고 할머니가 잘못 키웠기 때문이라고 할머니를 원망한 적도 있다.

내 대학등록금 하라고 하루에 일당 2만 원 받으시는 걸 모아서 어머니께 100만 원을 주셨다. 나는 사실 대학 적응 못해 때려치웠는데, 내가 할머니 힘들게 번돈을 허무하게 날렸단 생각에 한동안 죄책감이 들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허리 아프고 거동이 불편해져서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셨다. 나는 할머니께 일 잘 안 한다고 욕을 많이 먹었다. 나도 할머니께 대들고 심한 말 했다.

할머니가 연로하셔서 요양원에 가시던 날. 나는 할머니께 호박죽을 시켜드렸다. 다른 음식은 토할 것 같다고 잘 안 드시면서, 호박죽은 잘 드셨다. 식사 후 요양원에서 차가 오자, 할머니는 자신이 가진 가장 예쁜 외투를 걸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에 오르셨다.

지금 생각하면 솔직히,, 내가 좀 더 할머니를 이해해 드리고 잘 대해 줬다면 어땠을까? 한 번씩 할머니 생각이 나면 후회, 감사, 약간의 원망, 그리움 등.. 의 감정으로 마음이 먹먹해진다.




작가의 이전글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