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서웠고, 오직 살고 싶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by 보라

처음엔 음식을 많이 먹어서 체한 건 줄 알았다. 동네병원에 갔더니 별로 아무것도 아닌 거란 듯이 말씀하셔서 나도 약 좀 먹고 하면 낫겠지 싶었다. 머리 좀 아프고 속이 좀 안 좋은 정도. 그때 아버지가 큰 병원에 가 보자고 하셨다. 아버지가 의사도 아닌데 무슨 촉이 오셨나 보다. 하.. 아빠 말 들을걸.. 그랬다면 다가올 고통의 쓰나미를 안 겪어도 되었을 텐데.

집에 오는 길에 너무 속이 안 좋아서 풀밭 비슷한 곳에 2번 토했다. 토하고 나니 좀 나은듯하여 일단 집에 와서 호박죽을 시켰다. 너무너무너무 맛이 없어서 이럴 리가 없는데 싶었다. 겨우 몇 숟가락 뜨고 누웠는데, 그때부터 배가 점점 더 아프기 시작했다. 동네병원에서 타먹은 약이 소용이 없었다. 바가지에 3번 더 토했다ㅜㅜ

누워있는데 새벽 1시쯤인가, 참다 참다 안되어서 큰소리로 부모님을 불렀다. 고통의 쓰나미에 뒤척뒤척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아버지가 119를 불러 주셨다.

10분쯤 지났을까. 119에서 아버지께 전화 왔는데 지금 도착했으니 1층으로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도저히 1층까지 못 가겠는데 뭘 어떻게 해라는 건지..;

그때 아버지가 내 손을 덥석 잡으셨다. 아픈 가운데에도 좀 놀랐다. 지금까지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아버지가 내 손을 잡은 적은 아기 때 말고는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아버지는 무뚝뚝하시고 나보다도 표현이 잘 없는 분이다. 아버지의 손은 항상 쭈글쭈글 혈관이 도드라져 보인다. 크고 쭈글 한 아버지의 손이 말하는 것 같았다." 괜찮다. 다 괜찮다.. 내가 곁에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그리고 구급차에 내 발로 직접 올라가라고 했다. 이것도 너무 힘든데.... 어찌어찌 죽을힘을 다해 올라탔고 구급 대원이 체온을 재었다.

"38.9도입니다. 지금 열나고 있으니 마스크 착용하세요"

그리고 응급실을 알아봐 주셨는데 3군데는 거절당하고 4번째 전화한 곳에서 받아주었다. 그 와중에 이 구급 대원 왜 이리 말 많은 거야. 내 의식은 명료하고 잠이 오지도 않는데.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대답할 힘도 없다고요.

응급실 도착 후, 첫 번째 위기! 소변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간호사가 소변줄로 할 거라고 했다. 너무 굴욕적이라 자세한 얘기 생략. 응급실 가면 제발 소변은 화장실에서 노멀 하게 받아오세요. 안 나와도 어떻게 해서든 받아오는 게 낫다.

ct 검사 등 7가지도 넘는 검사가 진행되었고 결과는 맹장염이었다. 염증반응이라는 게 일어난다고 간호사가 대빵 큰 주사와 링거를 주셨다. 체온은 여전히 38.9도. ( 나중에 알고 보니 38.9도는 고열에 해당되었다.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할 정도의 고열이었다. )

바로 응급수술을 해주지 않았다. 의사가 없다고 했다......... 응급수술만 했더라도 다가올 고통의 재앙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입원실에서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대기하다가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다. 진통제 탓인지 견딜만했던 나는, 걸어서 수술실로 향했고 가족들에게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수술방에 들어갔다. 자고 일어났더니 이미 수술은 끝나 있었다.

병실에 있는데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오더니 하소연을 했다. 무려 2시간 30분 만에 수술이 끝났고, 배 안에 염증과 대변이 섞여 있어서 제거하는데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니 수술만 빨리해 줬어도 이런 일 없잖아.. 맹장이 터졌나 보다.

간호사가 혈압을 재었는데 80/50이었다. 열은 여전히 38.9도. 혈압 올리는 기계 비슷한 것이 동원되었고 해열제도 들어갔다. 그리고 학생간호사들이 30분에 한 번씩 혈압과 체온을 재어 주었다. 뻥 안치고 아무리 작게 잡아도 족히 50번은 넘게 혈압을 재었다.

나중에 좀 정신을 차리자 간호사가 ***이라는 비급여 약물을 구매를 강력히 권유했다. 가격이 15만 원가량 된다고 했다. 내가 망설이자 옆에 있던 엄마가 그냥 맞으라고 했다. 솔직히 돈 아까웠다. 간호사들이 피주머니도 주기적으로 갈아줬다. 자기들끼리 이건 토마토색이라며 어쩌고 저쩌고 했다. 또, 내 팔뚝을 보더니 맛있게 통통하다고 했다. 그 간호사는 실력이라도 좋아서 5초도 안 돼서 혈관을 쓱~ 잡고는 가버렸다.

이제 좀 살 것 같은데도 간호실습생들이 계속 혈압을 재었다. 참다 참다 화난 나는 한마디 했다. 이제 혈압 그만 재고 싶어요. 그랬더니 다시는 간호실습생들이 혈압을 재지 않았다.

링거는 이것저것 끊기지 않고 들어가서 또 너무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이런 거(?) 좀 그만 맞고 싶다고 말해버렸다. 그랬더니 거의 다 맞은 링거 하나를 빼주셨다. 3일 입원했는데 한 달은 입원한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이번 일을 겪으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가 바뀌었다. 내 기준으로 가장 중요한 건. 1. 건강 2. 돈 3. 가족이다. 그 외에 친구들은 그냥 가끔 같이 놀 수는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러니 친구가 별로 없어도 괜찮다.. 다 괜찮다.. 내게 가장 도움이 된 건 아버지의 크고 쭈글 한 손이었다ㅜㅜ 아버지 제가 더 잘할게요. 오래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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