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태어났지

맹장수술 실패 후 생존기

by 보라

맹장수술이 성공적이지 않았다. 흔히들 말한다. 맹장수술은 다른 수술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 아무것도 아닌 수술이,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게 되었다.

첫 번째 맹장수술 후 건강염려증 비슷한 게 왔다. 수시로 체온을 재었다. 내가 의학적인 지식은 없지만,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타이레놀을 먹어도 열이 안 떨어졌다.


동네 내과에 갔더니, 자기 영역이 아니라고 했다. 수술한 병원에 가서 ct를 찍을 것을 강력히 권유해 주셨다. 그리고 진료의뢰서를 써주시면서, 꼭 ct를 찍으라고 강조하셨다.

그래서 수술했던 병원에 갔는데, 수술부위를 보시더니, 부위가 딱딱해서 괜찮다고.... 항생제만 3일분을 주셨다. ct 찍자는 말씀은 없으셨다........ 솔직히, 나도 돈이 많이 들어갈까 봐, ct 별로 안 찍고 싶었다. 수술한 의사도 나도 바보멍청이였다. 다가올 재앙은 모른 체.


그다음 날 동네 내과에서 의사분이 직접 전화해 주셨다. 염증 수치가 너무 심하게 높다고. 빨리 병원에 와서 진료의뢰서를 받아가라고 했다. 더 강력하게 ct를 찍어야 된다는 진료의뢰서를 써주겠다고.

하지만 나는 당장 병원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른 중요한 일로 좀 바빴다.

그래서 동네 병원에 가지 않았다. 나는 바보ㅜㅜ 였다....


그다음 날, 열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고, 수술부위는 여전히 아팠다. 너무 힘들어서 계속 눈물만 나왔다. 밤 8시쯤이었다. 너무 아파서 응급실에 가고 싶었다. 부모님을 설득했다. 웬만해서는 응급실에 같이 데려다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얼굴에 살이 많아서 많이 아파도 아픈 티가 잘 나지 않았다.

어떻게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좋을까 막막했다. 내가 가진 모든 현금을 부모님께 드리며, 울면서 꼭 좀 응급실 같이 가자고 부탁드렸다. 돈까지 내놓으며 안 하던 짓을 하니, 다행히 내 설득이 먹혔다.


수술한 병원 응급실에 오니 또 황당한 상황이 펼쳐졌다. 내 얼굴에 살이 너무 많아 별로 안 아파 보였나 보다. 응급실 의사가 보더니 내일 외래 와서 검사해도 될 것을 왜 왔냐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응급실 의사까지 설득해야 했다. 그리고 강력히 주장했다. 제발 ct 좀 찍어달라고. 피검사도 해달라고.

내가 너무 단호하게 강력히 주장하니, ct와 피검사 소변검사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해주셨다. 불행 중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피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ESR이 무려 120...이었다. 정상 수치는 0~20인데 120이 나왔다. 내가 의학적 지식은 전혀 없는데 쳇 지피티에 물어보니 염증수치가 엄청 높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응급실 의사도 당황했고, 당장 입원해라고 했다. 그리고 휠체어까지 대령해 주셨다.....


결국 나를 구한 건 동네 의사의 강력한 ct 권유와, 그 말을 듣고 강력하게 ct 검사를 요구한 자신이었다.

"동네의사 분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너무 감사합니다. "내가 다 설득하고 주장해서 ct를 요구해야만 하는 이 상황이 웃프지만 그래도 동네의사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끝까지 ct 검사 주장한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그렇게 맹장수술 실패로 재입원까지 했다. 수술한 의사에 대한 나의 분노게이지는 만땅이었다. 처음 맹장 수술한 의사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재입원한 병원비는 한 푼도 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내 몸만 원래대로 건강하게 회복시켜 준다면 조용히 넘어가고 싶다는 말도 했다. 내 요구는 들어주지 않았다. 전혀 사과하지 않았고 병원비도 한 푼도 깍지 않고 다 내었다.

배액관 삽입 시술도 해야 했다..... 너무나 힘든 11월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몸의 회복 속도는 빨랐다. 하루에 항생제를 서너 병씩 맞았고 피도 자주 뽑아서 더 이상 피를 뽑을 혈관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다시 회복되었으니 액땜했다고 친다. 그래, 다시 건강해졌으면 된 거야.


병원을 원망할 생각도 없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냥 운이 좀 없었다고 해두자. 나를 살린 나 자신과 동네병원 의사를 칭찬한다. 나는 다시 살아났고, 다시 태어났다. 힘든 일을 겪고 보니 다른 작은 일에 대한 일종의 면역이 생겼다. 니체가 말했듯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떠오른다. "나는 다시 태어났지~~ 나는 다시 태어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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