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회사에 취업하다.
정신건강센터에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었다. 요가, 영어회화, 서예, 집단상담, 뜨개질,, 등 프로그램에 참여하다가, 센터의 소개로 자그마한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선박에 들어가는 부품을 조립하는 회사였다. 인원은 나포함 6명 정도 되었다. 나는 주로 납작한 전자회로가 있는 판에 부품을 끼우는 일을 주로 했다. 익숙해지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육체노동이고 목을 구부리고 하는 일이라서, 목 뒤쪽 근육이 점점 아파지게 되었다. 돈을 벌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라 정형외과까지 다녀왔다.
센터 소개로 같이 취업한 남자분도 있었다. 그 남자 때문에 또 상처를 받고는 했다. "보라 씨는 쉬운 일만 하려고 하죠?" "일 개떡 같이 해놓았네" 등.. 너무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솔직해서, 나도 다른 사람들도 점점 그 남자를 싫어하게 되었다.
하루는 그 남자와 나, 단 둘이만 남겨놓고;; 다른 직원들은 2층 가서 일을 한 날도 있었다. ;; 대체 왜 단둘 이만 남겨 놓은 건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마침, 일도 힘을 써야 하는 일이라 남자가 하기도 벅찬 일이었다. 나는 그 남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오빠라고 부르면 내가 해줄게요" 이러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당연히 거절하고 기분 나빠했겠지만, 나는 그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도 더 세상의 때가 덜 묻은 인간이었다. 그래서 일은 해야 하고 하니까, 진짜로 "**오빠"라고 불러 버렸다. 진짜 별지랄 다했다. 그 남자는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닌데. 지금 생각해 보니 괜한 오해를 줄 수 있는 행동이었다. 이 부품조립회사가 너무 소중해서, 힘들어도 잘리고 싶지 않아서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엔 그 사람도 나도 일을 오래 하지도 못하고 대략 3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잘린 건 아니고 스스로 그만두었다. 뒷목 근육이 아픈 것도 못 참겠고, 납땜 냄새도 맡기 싫었고, 무엇보다도 직장상사였던 아주머니와 점점 사이가 안 좋아져서 그만두었다. 그래도 일이란 걸 해봤다는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다시 백수로 돌아가 쉬다가 직업훈련 학원을 알아보게 되었다. 웹디자인 학원에 다니게 된다.
(6)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