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시골 풍경이었지만, 도착을 앞두고 마지막 골목에 들어서자 왜 올레길이 예쁘니 걸어보라 했던 것인지 바로 깨닫게 됐다. 그렇지만 이미 골목을 들어선 다음이었다. 좁은 골목의 입구에서 되돌아 나오려면 요령껏 후진을 잘해야 하는데 이미 도착 시간을 2분 넘겨 있었다. 좁은 돌담길을 요리조리 꺾으며 운전실력이 는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골목 마지막 집에 나의 공간이 있었다. 19호실. 맞은편 공터에 차들이 있기에 그곳에 주차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운전해서 오는 사람을 위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는 안내가 생각났다. 건물 입구에 딱 한 대가 들어갈 주차 공간이 있었다. 자갈이 깔려 있는 정비된 공간. 나만의 주차장을 누리는 느낌이 좋았다. 올레길을 걷지 못한 아쉬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인간이란, 작은 주차 공간 하나에도 감동할 수 있구나. 차고가 있는 번듯한 집을 가진 사람과, 공터에 주차를 하는 사람, 늘 주차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에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벽난로가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 집이 아니었지만 주차를 하는 순간 이곳이 내가 온전히 머물 공간이라는 감각이 마치 내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집 안에 들어서자 향냄새 같은 것과 생활의 냄새 같은 것이 뒤섞인 따뜻하면서도 낯선 냄새가 났다. 아침에 잠깐 날이 아주 맑았는데 도착할 즈음에는 다시 흐려졌고, 어두운 실내에 벽난로가 유난히 밝고 따뜻했다. 예쁘게 쌓아 올려진 장작이 벽난로에서 타고 있는 모습을 보자 왠지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특별히 내게 ‘안전한’,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고, ‘공간 전시’라는 게 뭐지?라는 호기심이 더 많았던 내 방문의 동기 아래에는 안온한 공간을 바라는 내 마음이 있었던 거구나.라고 거꾸로 깨닫게 되었다. 벽난로 덕에 마음은 풀어지고 가습기가 켜져 있어 세심하게 배려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굳이 손에 들고 간 코트를 의자 위에 아무렇게나 걸쳐두고 처음의 느낌을 잊지 않고 싶어 메모를 했다. 하지만 그 메모 없이도 지금 그 느낌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손글씨로 적힌 카드와 스콘, 귤, 꽃들이 둥근 테이블에 올려져 있었다. 내 이름과, 오늘 날짜와, 준비한 이들의 마음과, 이름이 적힌 카드를 왠지 자꾸만 들여다보게 됐다.
방문자답게 집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침실에 붙은 화장실 창밖의 동백이 막 꽃을 피우고 있었고, 문이 열려있어 공기가 차가웠다. 집에서 급히 나오느라 양치를 못하고 칫솔을 챙겼는데, 욕실에 준비된 치약이 향긋했다. 외출에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적절한 예상이었다. 스콘과 커피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침을 먹고 나온 터라 배도 부르고, 양치까지 하고 나니 스콘을 먹겠다는 생각보다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나무 계단을 올라가 2층 다락에는 작은 다탁과 방석, 풍경을 볼 수 있는 창이 있었다. 공간 안내문에는 밖에 나가 언덕에서 먼바다를 바라보기를 권했는데, 다녀오면 시간이 다 지나 있을 것 같았다. 안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현관과 마주 본 화장실에는 세탁기도 있고, 장작과 청소도구들이 있어 생활감이 느껴졌는데, 세면대에 서서 보이는 창문 밖 풍경이 마치 그곳을 작품처럼 보이게 했다. 동백꽃이 붉었다.
침대에 누워도 봤다. 가기 전까지는 침대에 눕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벽난로가 타고 있어 따뜻한 거실에 비해 찬 공기가 감도는 침실의 하얀 이불에 누워보고 싶었다. 옷을 입고 누워도 되나 싶었는데, 잠시 눕는 건데 뭐.. ‘나만의 공간’이라고 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호텔 침구처럼 주름 하나 없이 하얀 느낌이 아니라, 약간의 구김이 있는 부드럽고 따뜻해 보이는 이불이라 더 누워보고 싶었던 것 같다.
준비된 오디오북도 들었다. 안내문에서 뭔가 들어보라고 했는데, 디지털 기기와 친하지 못한 나는 설치된 아이폰을 섣불리 건드리지 않았었다. 침대에 누우니 스피커가 설치된 것이 보였고, 용기를 내서 저장된 파일을 클릭하니 ‘19호실로 가다’의 오디오북이다. 나는 왠지 내가 책을 읽고 녹음하기는 해도 남이 녹음한 건 잘 듣게 되지 않아서 이것도 잠시 듣다가 끄려고 했으나 낯선 공간에서 나지막이 말하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괜찮았다. 오디오북을 켜 둔 채 공간을 다시 돌아보고, 커피를 내리고 하다 보니 조금씩 오디오북의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고저 없이 읽어주는 목소리에 조금씩 그림이 그려졌다. (요즘은 연기든, 낭독이든 내가 해 온 방식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계기가 오는 것 같다.)
커피를 티팟에 내렸더니 좀 진해서 물을 탔더니 아주 맛있었다. 커피를 들고 2층 다락에도 올라갔다가, 테이블에 앉아 공간 안내문도 자세히 읽었다. 창 밖에 나가보고 싶어 거실의 폴딩 도어를 열려고 했는데 안 열려서 포기했다. 그걸 포기하고라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았다. 공간 여기저기에 있는 가습기는 저마다 다른 향을 담고 있었는데, 공간에 들어설 때 느꼈던 향냄새는 그것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벽난로 옆에 있는 가습기와 주방에 놓인 가습기의 향이 미묘하게 달랐다. ‘먼바다’라는 이름을 가진 향은 왠지 정말 먼바다의 냄새 같았고, 떨기나무 냄새가 궁금했는데 안 켜져 있었다. 버튼을 조금 눌러보다가 안 되길래 말았다.
우엉차도 마셨다. 고소한 향에 혀 끝에 약간 감도는 떫은맛의 차가 몸을 데웠다. 마침 벽난로 속의 장작들은 모두 타서 거실의 훈기도 조금씩 낮아지고 있었다. 19호실에서 워크숍의 결과물을 엮은 듯 한 책을 읽었다. 한편 한편이 살아있는 이야기여서 예기치 않게 몰입해서 읽었다. 글을 읽고, 공간을 거닐면서(집이지만 거닌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다.) 나도 다시 배우로서의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나는 내가 만드는 작업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작업에 내 몸만 들어가서 ‘연기’를 하는 것 외에 다른 그림은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연기에 그렇게까지 자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러 작업자들이 모여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 그 공간을 공유함으로써 전시를 완성시키는 걸 보니 나도 작업자로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안전’을 느낀다는 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안전은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하고, 당연히 감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 안전은 너무나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모두가 어디에서든 안전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다면 세상은 분명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모두가 안전하지 않다면, 우리는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내게 특별히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19호실에 도착해 불 피워진 벽난로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풀어진 기분에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던 것은 내가 누구든 상관없이 따뜻하게 맞아준다는 느낌 때문이 아니었을까, 긴장이 당연한 세상에 있던 몸이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감각했던 것 아니었을까.
‘여기는 안전한 공간이야’라고 친절하게 말해주는 공간을 경험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안전하지 못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집에서 애월까지 가는 40분 남짓의 도로가 그랬을 수 있고, 내 생각이나 의견을 입 밖으로 꺼내기를 고민하는 순간들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개를 산책시키는 순간, 혹은 일터나 집이 안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에게 안전한 공간의 크기가 다 같지 않다는 것이 그만큼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할 것이다.
19호실
19호실을 나서서 마을 어귀에 차를 대고 올레길을 다시 걸어보려 했다. 하지만 차를 타고 나오는 순간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19호실을 이렇게 남겨두어야지. 19호실 밖에서 괜히 서성거리고 싶진 않았다.
좁은 돌담길에서 마주 오는 차를 만났다. 뒤로 후진해서 비켜줄 공간을 찾는데, 맞은편 차의 조수석에서 내린 여성이 본인들이 빈자리로 들어갈 테니 후진해서 차를 뒤로 빼 달라고만 했다. 친절함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비건 카페에서 조각 케이크와 보리커피를 사서 왔다. 마치 목욕을 하고 나온 듯 개운한 기분이었다. 왠지 기운이 나서 집에 오자마자 아침에 두고 간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새로 내려서 파트너와 함께 케이크를 먹었다. 보리커피는 다 식었지만 맛있었고, 얼그레이 자몽 케이크는 부드러운 자몽의 과육과 상큼함이 얼그레이 크림과 어울렸다. 외출하고 돌아온 나를 반기는 보리의 눈빛이 따뜻하고 귀엽다. ‘안전함’을 의식하지 못하고 누리는 나의 공간이다. 그럼에도 문득, 19호실을 떠올릴 것이다. 흰 커튼 바깥의 귤밭과 흐린 날에 더 짙은 초록빛. 벽난로의 따듯함, 그녀들의 글과 목소리, 옅은 향을 머금고 피어오르던 수증기 같은 것들이 생각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