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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Aug 19. 2022

실업급여를 못 받아서 울었다.

엊그제 실업급여를 못 받게 되어 차에서 눈물까지 흘렸다. 화요일 0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신청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자정 전에는 신발을 사겠다고 수선을 부리다 자정이 지난 다음에는 해야 할 일도 잊고 잘 준비를 했고, 오전에는 개집을 판다고 수선을 부렸는데, 그럴게 아니라 아주 간단하게 실업급여 신청을 했으면 될 일이었다. 어떤 상황일지도 모르는데 진돗개가 7마리나 새끼를 낳아서 집을 산다는 말을 듣고 간식을 챙겨주겠다고 부산했다. 아니면 아침 먹고 노트북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시간 사이 아무 때나 신청을 했으면 됐을 걸. 동거인이 점심을 먹으러 나갔을 때도 시간이 있었고, 잠깐 돌아왔다가 같이 청수리에 집 보러 가기 전에는 퍼뜩 생각도 했었다. 그치만 돌아와서도 기억이 날 줄 알았지.. 그런데 돌아와서도 까맣게 잊었다. 다른 신경 쓸 거리가 있을 때는 주의를 뺏길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처리해야 할 일은 떠올랐을 때 바로 했어야 하는 건데.. 집 구하는데 정신이 팔려 집에 오자마자 오일장신문 찾아보고, 또 그 와중에 넷플릭스 시리즈까지 보느라 깜빡 잊어버렸다. 정신 차리고 보니 6시였다. 지난달에도 그랬는데.. 지난달에도 그랬으니 이번에는 정말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어리석게 바보 같은 일을 반복해 버렸다. 120만 원에 달하는 돈이었다. 백미와 현미가 있을 때 만들어서 썼던 개집 두 개를 당근으로 팔아서 5만 원을 받았고, 귀찮은 과정을 거쳐 바디 오일을 반품하고 4만 원 상당을 환불받았으며, 미처 챙기지 못했던 환불금을 문의해서 3만 원 정도를 받았다. 다 합해도 10만 원이 조금 넘는다. 그 열 배 정도의 돈을 날리다니.. 너무 한심하고 속이 쓰리다. 지난달에 긴장해서 씀씀이를 줄인 것과는 달리 이번 달에는 보리랑 수수 간식이며 사료며 내 신발에 생활용품들까지 인터넷 쇼핑으로 돈을 꽤 써서 카드값도 많이 나올 예정이었다. 치과에서 충치 치료를 하느라 33만 원을 썼는데, 목돈이라고 생각하고 손을 부들부들거렸으면서 120만 원을 받는 일에는 이렇게 안일했다니 나 스스로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당장 카드값을 낼 돈이 모자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두려워졌고, 100만 원 정도의 돈에 이렇게까지 타격을 받는 나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 눈물이 났다. 개를 구조해서 돌보는 단체와 개인에 후원금도 보내고, 가입만 하고 입금을 안 한 적금도 조금 넣고, 미용실도 다녀오고, 뒤늦게 여름 기분을 내려 페디큐어도 받을까 했었는데.. 보리와 수수 우비도 사야 하고, 생각은 안 하고 있었지만 곧 추석 선물도 준비해야 하는데 지금 상태라면 전혀 여유가 없다. 도대체가 서른 중반이 넘도록 남들만큼 명절 선물 준비에 충분히 마음을 쓸 수 없다니 익숙한 자괴감이 든다. 내 찜한 상품 목록은 길기만 한데, 당분간은 튀어나오는 광고들을 조심하려면 SNS도 하면 안 될 것 같다.

요즘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이라고 하는데, 관련 기사에 진짜로 돈이 없어서 ‘무지출 챌린지’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빈곤함 때문에 괴로운 사람이 가난을 전시하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보다는 유행을 따라 하는 것에 더 가깝다는 것이었다. 유행이나 재미를 좇아하는 행동일 수도 있고, 절박함에 따른 실천일 수도 있지만, 내가 아는 것은, 돈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는 커피 한 잔 마실까 싶은 것도 건강과 환경을 위해서 참고 뿌듯해 할 수 있지만, 꼭 필요한데 쓸 돈도 없을 때는 커피 한잔 못 사 먹는 것도 서럽다는 것이다.   

이제와 후회한 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수시로 100만 원의 가치가 떠오른다. 몇 십만 원도 아니고 100만 원이라니. 토퍼가 몇십만 원이라 못 사고, 시간과 공을 들여 당근 거래를 하면 남는 돈은 몇 천 원, 몇만 원이고, 보리 영양제도 비싸서 못 샀는데, 그 백만 원이면 가방이며 옷 몇 벌은 고민 안 하고 살 수 있을 텐데, 몇 년 동안 마음 편히 옷 한 벌 못 샀으면서 그렇게 허무하게 한 달 치 실업급여를 날린 것을 받아들이기 뼈아프다. 100만 원 정도에 이렇게 크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100만 원에 카드 값이 걱정될 정도의 내 현실에 갑자기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린 것과는 별개로 나는 아직도 내 밥벌이가 걱정이다. 세상엔 물건을 사라는 광고만큼이나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한 광고도 넘쳐난다.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 안 벌고 있는 당신은 바보라고, 그 방법을 알려준다며 돈을 번다. 그 방법에 혹 하고 넘어가고 싶다. 그 수업을 수강할 수 있을 만큼 돈이나 시간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과연 그 수업을 들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세상에 돈을 벌 방법은 많은데 나는 왜 그중 한 가지도 못 하는지 싶다. 내가 할 수 있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한 확신은 점점 옅어지고, 이 일을 해서 언제 남들처럼 집도 사고, 가구와 가전도 사고 번듯한 집을 꾸리나 싶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글만 쓰고 책만 읽으면서 돈도 벌고 싶은 내가 한심하다가도, 원래 이 시간은 가만히 책을 읽고 공부하는 시간이었는데, 갑자기 생계 걱정을 하게 된 처지가 문득 억울하다. 언제쯤 나는 그 100만 원 에 대한 아쉬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면서도 개들을 구하고, 입양도 보내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것처럼, 밥벌이도 하면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인가 생각하며 점점 더 쪼그라든다. 그렇지만 100만 원이라도 벌려면 쪼그라드는 마음을 애써 자꾸 펴는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시기들을 다 흘려보냈다는 생각 때문에 자꾸 조급하고 불안해지지만, 애써 책을 읽고, 나를 즐겁게 하는 일을 찾고, 도전할 수 있는 맷집을 키워야지. 120만 원을 자꾸 생각해 봐야 내 돈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지나간 날을 자꾸 생각해 봐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삶의 ‘기회비용’이 커졌다는 말. 나이를 먹으면 그렇다는 말이 자꾸 나를 움츠러들게 하지만 지금의 내가 잃을 것은 시간뿐이니까. 시간을 잘 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시간을 잘 쓰려고 이렇게 저렇게 재느라 시간을 쓰지 말고, 뭐든 한다면 그 시간이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믿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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