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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Apr 26. 2022

고사리

제주 채집 생활

1년 만에 고사리를 따러 갔다. 작년보다 굵은 고사리가 꽤 보였다. 작년에는 누가 벌써 다 따 갔는지 대가 좀 두꺼워 보이는 건 다 끊어져있던데. 해가 뜨기 전에 고사리가 잘 보인다고 했는데, 아직 이슬에 젖어있는 덤불 틈에서 반짝이는 털들을 가진 통통한 고사리들이 숨어있다. 해는 이미 다 떴지만 공기는 아직 촉촉하고, 고사리를 따는 오른손의 장갑과 옷소매는 어느새 축축하게 젖었다.

올해는 별로 춥지 않았다. 고사리를 따러 갈 때마다 아침에는 추워서 옷을 더 두껍게 입었어야 한다고 후회를 했는데, 오늘은 아주 잠깐만 그 생각을 했다. 진드기도 덜했다. 고사리를 따기 시작하자마자 추리닝 바지에 진드기가 두어 마리 붙어 있어서 조금 겁을 먹고 깊은 덤불로는 들어가지 않았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점심 먹을 때 확인해 보니 예년보다 훨씬 덜 붙어 있었다. 따기 쉬운 곳에 고사리가 잘 보여서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됐던 것 같다. 아무튼 작년과 재작년에는 장화 속에도 진드기가 여러 마리 들어와 있었는데, 이번엔 양 발바닥에 사이좋게 한 마리씩만 들어와 있었다. 집에 와서 입었던 옷을 모두 빨았다.

고사리를 따면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과 단순하게 사는 것. 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은 초반에만 많이 했다. 힘이 들기 시작하니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김연아 선수가 스트레칭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냐고, 그냥 하는 거라고 했는데, 나는 생각 없이 뭔가 하는 법을 잘 몰라서 지금까지 성취한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생각이 많을 때는 덜 힘들 때인가 보다. 고사리 따다가도 생각이 없어지는 걸 보니. 생각이 없어지는 순간들을 잘 관찰해야겠다. 어쩌면 생각이 없는 순간은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억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고사리를 따는 것도 집중해야 잘 딸 수 있다. 처음에는 쑥만 많이 보였다. 쑥을 뜯을까 싶어 찾으니 다시 고사리가 보였다. 쑥을 찾으면 고사리가 보이는가 싶어 쑥을 찾았더니, 쑥을 찾는 척만 하고 고사리를 찾고 있어서 그런지 또 고사리가 안 보였다. 둘 다 찾으니 둘 다 잘 안 보였다. 고사리가 있을만한 장소를 찾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고사리가 보인다. 하나가 보이면 그 주변두세 개가 더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내가 터득한 바로는 그게 고사리를 따는 방법이다.


아침 6시에 출발하기로 해서 5시에 일어나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집에 있는 밑반찬을 넣고, 간을 조금 덜 했다. 아침이라 간을 보기 싫어서 그냥 만들었는데, 다행히 간도 잘 맞고 맛있게 됐다. 반찬을 쓴 것도 뿌듯했고, 같이 간 언니도 맛있게 먹어서 더 좋았다. 세워놓은 차 옆으로 생긴 작은 그늘에 앉아서 유부초밥이랑 컵라면을 먹었다. 지난번 한라산에 갔을 때는 뜨거운 물을 정수기에서 받아 가져 갔더니 라면이 덜 익어서 맛이 없었다. 그때를 교훈 삼아 이번에는 물을 끓여 가져 갔더니 라면도 맛있게 되고, 드립백도 가져가서 커피도 마셨다. 밥 먹고 조금 더 뜯다가 10시 조금 넘어서 마치고 출발했다. 조만간 언니랑 한라산도 가기로 했다. 한라산에 가는 건 달리 노는 것보다 왠지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 채집 생활도 그렇다.

고사리는 따는 것도 그렇지만 손질하는 게 더 일이다. 모든 나물들이 대체로 그렇고, 고사리는 그나마 손질이 쉬운 편인 듯싶지만, 그것도 양이 많으면 엄두가 잘 안 나는 일이다. 게다가 대단히 많이 뜯어온 것 같아도 막상 힘들게 씻고, 삶아 말려 놓으면 몇 줌이 안 된다. 그러니 고사리가 비싼 건 당연하다. 작년에는 말리지 않고 삶아서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먹었다. 이번에는 최대한 많이 나물 반찬을 해서 먹고, 남은 양이 괜찮으면 반 정도는 얼리고, 반 정도는 말릴 셈이다. 언니가 자기가 뜯은 걸 좀 더 줘서 고사리 양이 꽤 많아졌다. 내가 딴 양의 1/3 정도는 더 많아진 것 같다.

봄에 나물을 뜯는 일은 한가한 일 같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만 동떨어져 옛날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생산적인 일이다. 채집은 가장 원시적인 생산 활동이고, 내가 먹을 걸 직접 마련하는 적극적인 삶의 방식이다. 다만 오래 걸리는 시간만큼 금전적 보상이 되지 않을 뿐이다. 돈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현대사회에서, 시간을 들여 나와 이웃의 먹을 것을 구한 나는 내 존재 가치의 충분함을 느끼지 못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소일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나의 제주살이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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