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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Aug 24. 2021

누구에게나 불행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있겠지

객관적으로 그렇게까지 불행한 건 아닐지라도 마치 그런 것 같은 기분. 

잠이 안 와서 일어나 나오는데 어질어질했다. 건강검진에 빈혈이 나왔었는데, 아마 자궁에 혹이 있는 것 때문에 그랬던 모양이다. 종종 어지러웠던 게 그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두 시가 넘어가도록 잠을 못 이루고, 자궁근종이 있는 나는 불행하다. 는 생각이 든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왜 잠이 안 왔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더 그렇고.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많이 왔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내렸다. 가끔 이런 문학적인 표현들을 실제로 느낄 때문 그런 표현은 대체 누가 처음 생각했을까 궁금해지곤 한다. 어쩜 이렇게 딱 맞을 수가 있지.

오늘도 오후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낮에 먹을 걸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아서, 너무 기운이 떨어지기 전에 편의점에 다녀오기로 했다. 차를 타고 길을 내려가는데 하얀 개 한 마리가 길가에 서성거리는 걸 봤다. 잔뜩 젖어서 측은해 보였는데, 뭘 찾는지 어쩌는지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또 마음이 덜컹했다. 

올라오는 길에 먹을 걸 좀 사 와서 줘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올라오는 길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 하나를 고르고, 고민을 하다가 그것만 계산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다시 들어가서 다시 강아지 보조식 하나를 골라 계산했다. 보리에게 줄 거였다. 길가에 차를 세워야만 하는 일은 없기를 바랐다. 천천히 올라오는데, 있던 곳에 강아지가 보이지 않았다. 목줄을 하고 있었으니 집을 찾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집이 있는 아이였기를. 묶인 채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는 강아지들을 보면 차라리 굶더라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지만, 그 아이들이 길에서 제 명을 다 살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물론 그건 묶여 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동네 집집마다 개가 있다가 없어지고, 또 새로 생기는 일이 허다하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이들이 쇠줄에 묶여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리다. 제주에 와서 가슴이 아리고, 마음이 저리고, 가슴이 아픈 일들을 너무 많이 보고 겪은 것 같다. 살면서 그런 감정을 느낄 일이 없었을까 싶지만, 인간의 일이 아니고 동물의 일이어서 그런지 그 상처는 왠지 더 깊은 것 같다. 왜 그럴까? 어쩌면 내가 지금 여기, 제주도에 있고, 최근에 마음 쓰는 일들이 거의 동물과 관련된 일이고, 그 일들이 인간의 의지로 달라질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일까?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인간사보다, 인간 때문에 벌어지는 동물들의 일이 더 마음 아프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 간식을 빗길에서 만난 아이에게 주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한동안 아렸다. 그런 아이를 보면 내내 마음이 무거운데, 오늘 아침에도 바닷가에서 두 마리 강아지를 또 만났고, 예전에 깨갱거리는 소리를 찾아가서 줄을 풀어준 할머니 집 강아지는 이제 많이 컸는지 짖는 소리가 꽤 우렁차다. 아마 그 강아지가 맞을 것이다. 오래도록 짖을 때는 가서 보고 싶은데, 가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면 내가 아이비와 아기들도 구해오지 못했다는 사실이 사무친다. 태풍이 오기 전에, 아이비가 또 임신을 하기 전에 데리고 오고 싶은데, 도움을 청하는 일 조차 막막하다.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며 편지를 쓰다 잠자리에 들었더니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내 능력 밖의 일에 마음을 끊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고, 이렇게 글이나 쓰면서 마음을 달래 보려고 하는 내가 싫다. 그러니 신세한탄이다. 


돈이 많았으면 구해왔을까? 내 일로 바빠 겨를이 없었다면 개들한테 마음을 덜 썼을까? 내가 백수라서 그랬나? 제주에 괜히 내려왔나? 아무 소용없는 질문들만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아마 그러니 스트레스 때문에 혹이 커졌는지도 모르지. 지난겨울과 봄, 아니 그 이전의 봄과 여름과 가을과 아니, 그 전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강아지들을 어쩌지 못해 시달렸다. 대체 어찌 된 운명이냐. 잊을 수 없다면 데리고 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씩 풀어보자. 작년 겨울에도 하나씩 풀자고 생각하다가 결국 다시 엉켜 버렸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했으니까. 손을 놓을 수 없다면, 포기할 수 없으면 하나씩 다시 풀어보자. 미련하고, 바보 같고, 누가 나를 욕해도. 후.. 그래도 마음이 아픈 건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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