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멀리 도로에서 바쁘게 뛰어가는 하얀 고양이를 봤다. '바쁘다‘는 왠지 귀여운 느낌이 들지만 ’절박하다‘는 말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하얗고 작은 고양이가 더 작은 공처럼 보일 만큼 몸을 동그랗게 웅크렸다가 멀리 뛰었다. 몸이 펴지는 순간은 찰나였고, 반대편에서 차가 오지는 않나 걱정하며 멀리 보는 사이 그 작은 고양이는 사라졌다. 그 고양이는 왜 그렇게 빨리 달렸을까? 다른 고양이들이 차에 치이는 걸 본 적이 있을까?
익숙한 두 동네를 오가는 4차선 도로는 늘 너무 넓게 느껴진다. 밤에는 특히 너무 넓고, 어둡고, 아무도 없는 차로에서 홀로 달리는 차들은 속도를 너무 내서 바쁘게 지나가는 고양이나 개들을 치지는 않을지 늘 긴장하게 된다. 쓰러진 고양이를 본 적도 여러번이다. 개가 치이거나 쓰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큰 개가 차도에 쓰러져 있으면 나는 내려서 그 개를 옆으로 옮겨 줄 수 있을까, 숨은 있는데 움직이지 못 할 만큼 다쳐 있으면 어쩌지. 그런 상상들 때문에 나는 자꾸 더 겁쟁이가 되는 것 같다.
씩씩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보리는 이사한 집에서 자주 가출을 했다. 처음엔 그렇게 집 안에 들어오고 싶어 하더니, 집 생활이 익숙해지자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보리가 안으로 들어오려고 뚫었던 방충망은 이제 보리가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수선이 필요했다. 그래도 잠시 문이 열린 틈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뛰어 나가서 옆집 밭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다 뼈다귀라도 주우면 불러도 절대 오지 않았다. 보리와의 달리기는 절대 이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같이 뛰지 않고, 회유해서 오게 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써 봤지만 대체로 만족할 만큼 뛰다가 못 이기는 척 돌아오거나, 먹을 것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가까이 가서 잡아 오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보통은 멀리 가지 않고 옆집 밭에서 놀다가 들어오곤 했는데, 한 두 번은 안 보이는데 까지 사라졌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몇 번의 일상적인 가출 소동이 있었고, 우리는 늘 친구들이 오면 문단속을 시키느라 바빠지곤 했었는데, 해가 바뀌면서 보리도 생활이 익숙해졌는지, 문을 열어둬도 집 마당을 벗어나지 않고 냄새를 맡거나 햇빛만 쬐다가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도 문을 열어둔 채로 마당에 빨래를 널거나, 잠시 집 안팎을 살피거나 할 때가 생겼는데, 그렇게 하면 보통은 같이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들어오곤 했지만 어느 날은 그것도 심심했는지 갑자기 밖으로 나가버렸다. 진즉에 울타리를 쳤어야 하지만 비용이며 공사가 엄두가 나지 않아 미루던 날들이 길었다. 안 보일만큼 나갔다가도 5분-10분이면 돌아와야 하는데, 그 날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불안한 생각은 들지 않았고 어디서 놀고 있을까 하며 리드줄을 들고 찾으러 나갔는데, 동네 강아지 친구네 집에 간 것도 아니고, 좀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늘 묶여 있는 강아지 친구가 평소에 내지 않는 소리를 내는게 갑자기 불안하게 느껴졌다.
동네 안쪽으로 가던 걸음을 돌려 바깥쪽으로 나서봤다. 도로 쪽이라서 가면서도 괜히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도로가로 나와 10m쯤 걸었을까, 앞에 어떤 여성분이 교회 표시석 앞에 앉아 뒤쪽을 자꾸 불안하게 쳐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아닐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걸음이 빨라졌다. 그 여성분 앞에 하얗고 빨간 물체가 보이는 것 같았다. 하얀 것은 보리인지도 모르지만 빨갛다니? 뛰기 시작하는 순간 보리라는걸 알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사람의 차가 한쪽에 서 있었고, 얼굴에 잔뜩 번진 눈물과 표정에서 보이는 당혹감만으로도 상황을 모두 알 수 있었다. 보리가 차에 치었고, 그 분이 119에 전화를 했더니 동물구조센터에 연락을 하라고 했고, 시내에서 출발해서 1시간 정도 걸릴 예정이라 했다고 한다. 보리는 다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고, 혀를 길게 빼고 헐떡거리며 마찬가지로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다. 다리 하나를 든 채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다가 일어나려고 했지만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일단 집에 기다리고 있는 A에게 연락을 했다. 상황 설명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은 것 같았는데, 목소리를 듣자 왈칵 눈물이 났다. 마침 집에 와 있던 친구와 같이 차를 타고 왔다. 차에 태우려고 보리를 들었는데, 처음 들어보는 깨갱 소리를 크게 냈다.
보리와 함께 있던 분은 공항에 가던 중이었는데, 보리가 갑자기 튀어나와 교통사고가 났고, 무척 놀라고 당황했겠지만 그래도 내려서 보리를 보듬어 안고 있었기에 보리가 무리해서 더 멀리 가거나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제주 한 달 살이 중에 아버지가 오시기로 해서 공항에 마중을 나가던 중이었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하면 연락을 주기로 하고 헤어졌다.
가까운 동물 병원 몇 곳에 전화를 해 봤지만 토요일이라서 연 곳이 없었다. 다행인지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 한 곳이 전화는 받지 않았지만 열려 있었는데, 토요일 진료를 마치고 문을 닫으려는 중이었던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하자 불을 다시 켜면서, 복합골절이면 여기서 수술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엑스레이를 다시 켜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엑스레이를 찍으려고 하니 너무 아파해서 진정제와 진통제 주사를 놓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역시나 복합골절이라 수술할 수 없다고 하며 제주시에 외과 수술을 하는 병원에 전화를 해서 소개해 주었다. 한시간 이상 차를 타고 가야하니 또 진정제와 진통제를 맞았다. 병원비는 30만원 정도가 나왔다.
사람들이 병원에 가면 그러는 것처럼, 진료 내용과 엑스레이 사진을 도착할 병원에 전달해 주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고, 엑스레이 사진이라며 준 종이에는 어설프게 찍힌 엑스레이 사진 세 장이 작은 그림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진정제 덕분인지 보리는 늘어져서 쉼만 쉬며 누워서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진료 카트에 보리를 눕히고, 수술 중이던 의사가 나와서 보리를 보는데 교통사고가 났다고 하자 한숨부터 쉬었다. 보리의 상태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아서 바로 진정제와 진통제를 맞았다고 하자 납득하며 그때부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들어가서 검사를 했고, 어떤 진정제를 맞았는지 알 수 없고, 금식을 한 상태도 아니어서 원래라면 좀 더 기다려서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해야 하지만 바로 하겠다고 했다. 어떤 진정제를 맞았는지 확인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게 황당했고, 걱정도 됐지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기다리며 수술이 잘 되길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보리가 수술실에 들어가자 그때야 눈물이 났다.
보리와 차 사고가 났던 분(B씨라고 하자)도 막 제주에 도착한 아버지와 함께 왔다. 보리가 밖에 나가도록 둔 우리 잘못이고, 이제 제주에 온 지 일주일 됐다는 그 분도 안 해도 될 경험을 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미안했지만, 그 분도 우리에게 너무 미안해했다.
우리는 그 분이 만약 보리를 치고 그냥 가버렸다면, 본인도 놀랐지만 차에 치였을 강아지가 걱정되어 바로 나와서 개를 붙잡고 동물구조센터나 주인을 찾으려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더 아찔하고, 오히려 그런 사람의 차에 사고가 난게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분도 강아지를 키우고 있어서 사고가 났던 차 안에도 개가 타고 있었다고 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한 웰시코기와 제주 한달살이를 하러 온 것이었다. 씩씩한 사람이었다.
보리를 찾으러 나갔을 때는 이른 오후였는데, 보리와 제주시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수술이 끝났을 때는 밤이었다. 수술이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에겐 엄청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다. 다리가 굽혀지는 곳 바로 아래쪽이 부러져서 수술이 쉽진 않았지만, 잘 됐고, 두 달 정도 쉬면 잘 나을 거라고 했다. 움직임을 제한해야 해서 2주 정도는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잠깐 보러 들어갔더니 마취가 풀리는 중인지 얼핏 깬 보리가 철장에 누워 있었다. 넥카라를 쓴 채로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왔다.
(평평한 입원장이 아닌 철장에 누워있는게 맘에 걸렸지만 그 때는 그런걸 물을 겨를도 없었다. 아마 입원장이 모자라거나, 큰 개를 위한 입원장이 없었던 건 아닐까, 나중에 사진을 받고, 이불을 더 깔아줄 수 없는지 물었을 때, 배변 때문에 철장에 두었다고 했는데, 어차피 실내 배변을 안 하는 아이가 그렇게 해 둔다고 할지.. 나도 그 때는 개를 키워본 경험도 없고, 보리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초보여서 병원에서 하는대로 다 받아들이고, 카톡으로 간호사 선생님들이 사진 보내주고, 영상 보내주는 것 만으로도 너무 고마웠다. 다들 보리를 예뻐한다고 해서 안심도 됐다. 보리야 어디서 지내든 예쁨 받을 강아지고, 조용한 강아지이지만 만약 지금이라면 병원에 궁금한 점은 더 물어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쨌든 보리를 잘 챙겨주시고, 매일같이 연락해 주시는게 고마워서 간식도 몇 번 사 갔다. 병원비도 큰 부담이었던 상황이라 그것도 고민 하긴 했지만, 선생님한테 잘 하고 싶은 아이 키우는 엄마들 마음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수술이 끝나고, 늦은 시간이었지만 B씨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저녁 식사라도 하지 않겠냐고 권하셔서 고마웠지만, 입맛도 없고, 그럴 정신도 아니어서 그냥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뭘 먹긴 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셋 모두 녹초가 되어 돌아와 테이블을 앞에 두고 멍하니 한참 앉아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모두 보리가 차에 치었어도 마음이 따뜻하고 책임감이 있는 분의 차에 치어 다행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 와중에도 웃겼던 것은 보리 배에 뼈다귀가 가득 차 있다는 의사쌤 말이었다. 집에서 나간 다음 뼈다귀가 있는 곳을 찾아가 잔뜩 먹은 다음 신이 나서 집에 오던 길에 사고가 난 것이었다. 얼마나 신이 났었을까, 그리고 대체 얼마나 많이 위에 하얗게 뼈들이 보일 정도로 먹은걸까..
처음 갔던 병원에 대한 분노도 컸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어차피 처음부터 수술할 생각도 없었던 것 같고, 외과적인 수술을 할 수 있는 실력이나 설비도 안 되어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애초에 진통제만 주고 제주시 병원에 가도록 얘기해 줬다면 시간도 더 절약되고, 어떤 종류인지 모르는 진정제 때문에 무리하게 마취를 하는 상황이나 보리의 고생도 줄었을 텐데. 엉터리로 찍힌 엑스레이 사진 때문에도 더 화가 났다. 봤다고 해도 어떤 판단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엉터리 엑스레이. 강아지를 모로 눕여놓고, 다리가 겹쳐진 채로 사진을 찍어 다친 부위가 정확하게 보이지 않을뿐더러, 엉성하게 상체 일부만 찍어 정확히 뭘 위한 엑스레이인지 판단하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그걸 A4 용지에 손바닥보다 작은 사진 세 장을 붙여서 출력해 줬으니, 아무 쓸모도 없는걸 진료기록이랍시고 준 것이었다. 그 후로 다시는 그 병원에 가지 않았다.
걱정과, 후회와, 안도, 분노등이 뒤섞여 심란한 밤이었지만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보리를 차로 친 사람-B씨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컸다. 물론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제일 좋았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 차에 치인 것, 보리를 찾으러 나가서 너무 늦지 않게 만난 것, 보리가 다른 곳에 내상을 입지 않고 다리만 부러진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됐다.
병원에 가더라도 보리 면회는 할 수가 없어서 한번씩 가서 경과를 듣고, 간식을 사 주고 오는 정도가 할 수 있는 전부였는데, B씨도 가서 보리 간식을 사 주고 왔다고 했다. 아버지도 시간을 내서 식사를 하자고 하셨지만, 날씨도 안 좋고 시간이 안 맞에 다시 뵙지는 못 했다. 나중에 B씨가 편지와 보리 선물을 들고 집에 찾아와 병원비에 보탰으면 좋겠다며 100만원을 주었다. 차도 범퍼부분이 조금 찌그러져 있어서 되려 우리가 수리비를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봉투를 가져오니 너무 당황스러우면서도 고마웠다. 거절하다가 결국 받았는데, 실제로 병원비 부담이 반 가까이 줄어서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친구들도 병원비에 보태라며 얼마간 보내주거나, 걱정을 전해왔는데, 어려울 때 도움을 받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마음에 깊이 남는 일인지, 도움 받은 것을 잊지 말고, 나도 누군가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 꼭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씩씩한 사람’에 대한 얘기가 보리의 교통사고를 낸 사람에 대한 얘기라니 조금 의아하고, 억지스러운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녀의 마음씀이 정말 고마웠고, 문제를 대하고 해결하려는 태도가 기억에 남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라면 어땠을까, 개가 걱정돼 데리고 있다가 주인이 나타나면 안도할 것이고, 잘 치료되는지 소식을 궁금해 하겠지만, 일부러 선물을 준비하고, 찾아와 치료비를 낼 수 있을까.
요즘에 ‘씩씩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그때 받았던 그녀의 마음이 더 기억에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열악하거나 위험에 처한 동물들이나 혹은 사람들을 보면 나는 오히려 마음이 자꾸 약해진다. 피하고 싶고,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나, 나에 대한 실망감 같은 것들만 쌓인다.
그러지 않고 담담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일은 도움을 청하고, 할 수 없는 일은 지나보내는 인간이 되고 싶다.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나를 미워하지는 않는 인간이 되고 싶다.
어려움에 처한 동물(비인간이나 인간)을 지나치지 못하고 도우려 애쓰는 사람들을 ‘마음이 약하다’고 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슬픔을, 악함을 용기 내 쳐다보고, 해결할 마음을 먹는 사람들이다. 본인의 힘듦을 감수하고 어려운 일에 기꺼이 투신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다.
_24.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