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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May 29. 2024

가을과 겨울


(아이비 = 누리이다. 보리의 엄마 강아지이고, 입양 후 누리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는데, 그때의 이야기를 쓰려니 지금의 행복한 누리 이름을 가져다 쓰기 미안해 예전의 이름으로 쓴다.) 



내 핸드폰 사진첩에는 사진들이 너무 많다. ‘너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만큼 많다. 작년 봄부터 봄이와 포이를 입양 보내려고 사진을 찍느라 그전에 있던 사진은 다른 곳에 옮겨 보관했는데, 몇몇 시기에 찍은 사진들은 굉장히 많아서 작은 사진으로 보아도 뚜렷이 시기가 구분될 만큼 사진의 개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정리를 해야 하는데 좀처럼 다시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정리도 못 했다. 누리가 새끼들을 낳아서 우리 집에 데려왔던 한 달 동안의 사진들과 보리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인 누리와 형제들과 함께 지낼 때의 사진들이 특히 많다.


어느 때 이후로 나는 새끼 강아지들이 더 이상 귀엽지 않다. 그저 슬프기만 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짧은 다리로 세상의 땅을 아장아장 밟아보고 뛰어 보는 강아지들의 운명이 슬프다. 분명 좋은 가족을 만나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많은 강아지들이 있겠지만, 그런 강아지들의 운명도 그렇지 못할 강아지들의 운명 때문에 슬프다. 어쩌면 세상에 태어난 존재들이란 다 슬픈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운이 좋아서’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 적어도 내게는.    


그때의 얘기를 해야 할 때가 왔다. 처절하고 철저한 실패의 기억.        

보리는 여전히 입양문의가 없었지만 그래도 함께 생활하는 데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더 이상 방석도 뜯지 않았고, 보리만 집에 두고 외출해도 불안하지 않았다. 늦여름에 시작해 늦가을까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준비한 공연도 재밌게 잘 마무리했고, 그 덕에 친구들도 한바탕 다녀갔다. 그리고 그 사이 아이비가 임신을 한 걸 알게 됐다. 그럴까 봐 두려워서 아이비 중성화 수술을 꼭 해 주고 싶었던 것인데, 우리가 이사를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며칠간 가출했다고 하더니 그때 임신을 했던 모양이다. 나중에는 가출했을 때 찾아서 몰래 데려올 생각은 왜 못 했는지 후회도 했었다. 강아지 배는 티가 많이 나지 않는 것인지, 밥을 주러 갔을 때, 친구가 만들어준 닭가슴살 간식을 가져갔었는데, 여느 때 보다 더 잘 먹길래 배가 많이 고팠거나 기호성이 높은 간식이라서 그런 줄만 알았다. 임신을 해서 그랬던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출산하기 일주일 전쯤에야 배가 많이 불러서 임신을 알아챔과 동시에 곧 출산을 하겠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보리는 집에 적응을 했고, 누리에게는 종종 가서 밥을 주고, 구충제를 발라줬다.
딱 봐도 임신을 했었는데, 아마 모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날은 쉬는 날이었는지 낮에 집에 친구들이 와서 시간을 보내다가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 길에 밥을 챙겨주려고 누리네 할아버지 집에 들렀다. 날이 추워지고 있어서 할아버지를 만나면 아이비가 출산이라도 우리 집에서 하게 할 수는 없는지, 포기할 의향은 없으신지 물어볼 생각도 하고 있었다. 11월 중순의 저녁은 해가 짧았고, 부쩍 추워졌다. 집 마당에 도착했는데 아이비가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 창고에 데려다 놓았나 하고 들어가 보니 아이비가 새끼를 낳고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비는 입구 구석에 더러운 옷가지들이 쌓인 곳에 새끼들을 낳은 것 같았다. 창고 입구도 온갖 쓰레기로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캔 하나를 따서 주자 허겁지겁 먹고 다시 새끼를 낳으러 들어가는 것 같았다. 쇠줄에 새끼들이 치이거나 몸이 조일까 봐 혹시 몰라서 묶인 줄을 풀어줬던가, 그런데 우리가 와서 아이비도 당황을 했는지, 갓 낳은 새끼를 물고 마당 바깥쪽으로 나오더니 갑자기 땅을 파서 새끼를 묻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우리도 너무 당황스럽고, 마침 이 타이밍에 온 것이 다행인 것 같으면서도 아이비가 우리 때문에 괜히 더 혼란스럽고 힘들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큼 흘렀는지 감도 오지 않을 만큼 어둡고 조용하면서도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새끼들은 제각각 조그맣게 삐약거리고 있었다. 몸도 다 마르지 않아 강아지 같지도 않은 작은 핏덩이들이었다. 뭐가 정답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짝꿍이 집으로 데려가자고 했다. 보리를 데려간 것도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너무 의외의 발언이라 그 말이 어리둥절했고, 데려가고 나면 그다음은 어떻게 하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그 기회를 놓칠세라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래’라고 했다.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니 첫 말은 데려가서 잘 키워달라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서 ‘우리가 키우라고요?’했더니 ‘클 때까지 키워달라’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물론 잠깐 힘든 상황만이라도 벗어나게 해 주자는 것이었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데리고 있으면서 할아버지가 개를 포기하게 할 방도를 찾아볼 작정이었는데, 키우다가 달라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허락을 구했으니 끊고 강아지들을 데리고 왔다. 차에 있던 스티로폼 박스에 새끼들을 넣고, 담요로 덮고, 아이비를 뒤에 태우고 출발을 했다. 어두워서 빠뜨린 아이가 있지는 않을지 새끼들이 있던 곳을 다시 살펴보는데, 자세히 볼수록 더 엉망인 그곳은 새끼 하나가 어느 틈에 끼어 있어도 모를 것 같았다. 


차에 타는 게 무서워서 이전에 태웠을 때는 오줌도 싸고 똥도 쌌던 아이비가, 새끼들을 차에 데리고 타서 그런지 아주 쉽게 차에 올라탔다. 아마 우리를 믿었고, 어쩌면 기다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아이비는 늘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 했는데, 그 마음을 들어주지를 못 했다. 


집에 와서 짝꿍의 작업실에 아이비와 새끼들이 쉴 곳을 만들어 줬다. 예정에 없던 일이라 준비된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바닥에 있는 대로 박스를 깔고, 집에 남아 있던 방한 스펀지를 깔고, 전기장판을 가져와 켜고, 이불을 깔아서 조금이나마 따뜻한 자리를 만들어줬다. 난로를 가져와 켜고 잠깐 한숨을 돌렸을까, 새끼들에게 젖을 주다가 일어나 서성거리던 아이비의 꼬리 밑으로 빨간 게 보였다. 새끼들을 낳고, 추운데 이동하느라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진 건 아닐까 깜짝 놀라서 자세히 보니 또 새끼를 낳는 거였다. 데리고 온 강아지가 5명이었는데, 한 명이 더 태어나고 있었다. 엉덩이부터 빠져나왔나, 잘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아서 짝꿍이 도와서 꺼내줬다. 나는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출산하는 걸 짝꿍이 도와줬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이비가 새끼들을 핥아서 닦아주는 걸 도와주고, 오는 동안 체온이 식은 강아지들이 다시 따듯해지게 어루만져줬다.    

(이때를 생각하다 보니 또 빵이 생각이 난다. 아이들은 하나 둘 없어지고, 도로에서 치이는 모습을 봤을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또 혼자 출산을 하고.)           


아이비는 조금 힘든 듯 숨을 헐떡거렸지만 점차 안정되는 것 같았다. 밥도 많이 먹고, 물도 많이 마셨다. 친구 남편이 수의사라 물어보니 헐떡거리는 건 아파서 그런 거라고, 그리고 만져주는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심기가 편해 보이지는 않으니 손을 거두고 간식으로 애정을 표현해 주라는 조언을 들었다. 아이비가 너무 힘들어 보여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평소에 좋아하던 대로 많이 쓰다듬어 주고 안정시켜주려고 했는데, 사람이든 개든 예민할 때는 건드리지 않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가 보다. 

그 말에 오히려 마음을 조금 담대하게 먹고 편하게 쉬도록 자리를 피해주기로 했다.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에 만나자 아이비는 한결 더 안정되어 보였다. 밤새 쉬가 마려웠는지, 작업실에 쉬를 해 뒀는데, 날이 추워서 문을 닫아 놓았는데, 그래도 문 하나를 열고 나와 새끼들과 자는 공간이 아닌 바깥쪽 작업실에 했다. 이렇게 깔끔한 개를 짧은 줄어 묶어서 목줄이 당겨질 대로 당겨진 상태에서 대, 소변을 하게 만들다니.  

    

작업실에 마련해 준 산실. 새끼들 뒤처리를 야무지게 해 주는 아이비


밖에 나와서 응가도 했는데, 피가 섞인 묽은 변이었다. 몇 번을 그러다 그치긴 했는데, 물어보니 ‘오로’라는 것이라고, 태반을 먹고 변이 물러져서 그런 거라고 했다. 사람이든 개든 출산은 얼마나 대단하고 힘든 일인지, 그래도 넓은 마당에서 자주 나와 볼 일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나마도 안에 있을 때는 계속 참고 있으니 가능한 한 자주 나올 수 있게 해 주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금방 들어가서 새끼들을 돌보더니 날이 갈수록 더 자주 나오고 싶어 하고, 밖에 나오면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도 새끼들의 배설물은 야무지게 핥아서 먹어버렸다. 아주 어릴 때는 핥아서 배변을 유도하고, 조금 더 커서 새끼들이 스스로 일어나 배변을 할 정도가 되자 흔적이 남지 않도록 먹어버렸다. 그래서 여섯 명이나 되는 새끼 강아지들이 줄곧 먹고 싸는데도 자리가 깨끗했던 것 같다.      


아이비와 새끼들이 우리 집에 있었던 기간은 한 달 밖에 되지 않는다. 새끼 강아지들은 쑥쑥 자라서 그 변화만 생각하면 마치 꽤 긴 시간이었던 것 같지만 고작 한 달이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눈을 떴고, 눈을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걷기 시작했다. 걷기 시작하자 나올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걸어 나와 자는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배변을 했다. 그것도 우리가 바로 발견해서 치워주는 경우가 아니면 아이비가 다 먹어서 없애는 것 같았다. 새끼 강아지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어딘가 떨어지거나 끼어서 방치되지 않도록 울타리를 해 줘야 했다. 엄마와 떨어져서 오래 있으면 체온이 떨어지거나 배가 고파서 죽을 수도 있으니까. 새끼들의 행동반경을 제한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해 두긴 했지만 그렇게 걱정하진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새끼들이 목청이 엄청 컸다. 아마 엄마 곁에서 떨어져 있으면 자기를 발견할 수 있도록 특별히 더 크고 잘 들리는 데시벨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지나자 낮은 울타리는 소용이 없어졌고, 아이비 혼자 새끼들 없이 쉴 수 있게 따로 떨어뜨려놓은 방석까지 다 점령해서 자기들이 들어가 있었다.     

 

입양 홍보에 쓰려고 새끼강아지들의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되돌아보면 미안하고 슬픈 사진들이 되었다.


새끼 강아지들의 귀여움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후 1개월의 소중한 시간. 새끼 강아지들은 너무 귀여웠고, 아이비는 하루에 사료를 거의 1kg 가까이 먹으며 나날이 살이 오르고 털빛도 좋아지고 있었다. 너무 많이 먹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는데, 먹는 만큼 잘 주라고 했다. 다만 특별히 미역이나 고기를 삶아 주지는 말라고 했는데, 칼슘이 과다하면 오히려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사료도 한참을 골랐다. 산모용 사료를 먹여야 한다고 했는데, 보통 새끼강아지용/모견 사료가 같은 것이고, 소포장이 되어 있는 사료가 좋다고 했는데, 괜찮으면서도 가격대가 감당할 만한 것은 대포장 밖에 없는 식이었다. 강아지 사료 공부-라기 보단 검색도 이때 많이 했는데, 비싼 사료라고 꼭 더 좋은 것은 아니고 보통 시골 강아지들이 많이 먹는 대포장 사료 중에 산모용으로 나온 것도 괜찮다고 했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더 좋은 걸 먹이고 싶었던 것 같다. 

(조금 더 비싸더라도 영양이 높은 사료를 먹이는 게 더 경제적일 수도 있다. 저렴한 사료는 아무래도 개들이 양으로 더 채우려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고, 흡수량은 적으면서 배변량은 오히려 많은 경우도 있다.)     


할아버지는 개들을 데려온 지 이틀이 지난 후부터 다시 개들을 데려오라고 했다. 개가 없으니 안 되겠다는 게 이유였다. 며칠 더 말미를 받아 두고, 혹시 개가 아프다고 하면 포기할까 싶어서 심장사상충에 걸렸다고, 치료비도 많이 나오고, 약값이 계속 들어갈 거라고도 말해 봤는데, 역효과였다. 왜 새끼 낳은 개를 데려가서 아프게 하냐는 것이었다. 심각하진 않지만 심각하게 들리는 병이 한 가지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동물병원에 가서 자세한 검사까지 다 해 봤는데 모든 게 신기할 정도로 괜찮았다. 

할이버지에게 개를 파시라고 하니 생각해 본다고 하고 연락이 없었다. 우리가 살던 집에는 친구 여동생이 살고 있었는데 저녁에 그 힐아버지가 와서 대뜸 문을 열어 개를 찾고, 개를 데려다 놓으라고 쪽지도 써 놓고 갔다고 했다. 우리와 연락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동생이 불안해하고 위험을 느끼는데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어서 다시 연락을 했더니 다시 개를 데리고 오라는 말 뿐이었다. 그때 개 값으로 얼마를 먼저 불렀어야 했을까. 

너무 적게 부르면 콧방귀를 뀔 것 같고, 돈이 없는데 얼마를 줘야 하나 계산이 안 되기도 했다. 얼마를 주든 돈을 주고 개를 사 오면 그 할아버지가 개를 또 데려와서 팔려고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돈이 없다는 건 참 위축이 되는 일이다.    

       

어쨌든 그렇게 계속 시간이 흘러갔다. 강아지들은 한 달 반은 지나야 젖을 떼고 입양을 갈 수 있을 것이었지만 그래도 입양 홍보는 먼저 시작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애쓰면 이미 성견인 보리보다는 금방 가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느새 눈을 뜨기 시작한 강아지들

 

아이비와 새끼 강아지들을 데리고 와서 다시 돌려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후로, 강아지들에게 모두 좋은 가족을 찾아 줘야겠다고 결심한 다음부터 보리는 아마 나와 계속 살게 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보리의 입양을 결정한 날짜는 없다. 생일도 정확히 몰라서 4월 1일이라고 임의로 정해두고 있는데, 그것도 챙겨 주지 않는다. 나는 참 멋없는 강아지 보호자인 것이다.

멋은 없어도 새끼 강아지들 가족 찾는 건 할 수 있겠지. 그런데 그 개들이 내 개가 아니니 마음 편하게 입양 홍보를 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계속 개를 데려오라고만 하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설득을 해 보려고 하지만 통화는 점점 껄끄러워진다. 집에 가서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허탕을 치기도 했다. 개를 데리고 오라고 해도 내가 안 데려오고 전화로 설득하려고만 하니 할아버지는 나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신고한다고는 했고, 그래서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정말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경찰에서 전화가 왔고 조사 날짜가 잡혔다. 경찰관은 일단 개를 데려다주라고 한다.                               



-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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