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기 May 28. 2024

우리 집 개가 된 보리


우리는 8월 초에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우리는 서쪽에 있는데, 동쪽 성산까지 가서 집을 알아봤던 터라 멀리 가면 강아지들을 더 볼 수 없게 될 것이었지만, 다행인지 원래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인 동네에 집을 구해 이사를 하게 됐다. 집을 구하면서도 두 가지 생각이 같이 들었던 것 같다. 멀리서 집을 구하고 싶은 생각과 가까이서 집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가까이 살면 가끔이라도 오가며 개들을 돌볼 수 있을 것 같았고, 멀리 이사를 하게 되면 개들을 보며 마음 아플 일이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마 멀리 이사를 갔어도 그곳에서 다른 강아지들을 만나 마음 아픈 일이 생겼을 것이다. 


어쨌든 가까운 곳에, 그리고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보리를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가 키울 수는 없지만 중성화 수술을 하고 데리고 있다 보니 원래 있던 곳에 다시 데려다 놓을 수가 없을 것 같았고, 할아버지도 보리한테는 애정이 별로 없어 데려가려면 데려가라고 했다. 데리고 와서 지내면서 입양 갈 곳을 찾아주면 될 것 같았다. 마당에 묶여 있는 채로 막연하게 세 아이의 입양 홍보를 하는 것보다, 한 명을 데려와 집중적으로 돌보면서 홍보를 하면 가족을 쉽게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때 잘못 생각한 건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개를 데려오면서 할아버지에게 성의 표시를 안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를 입양 보내는 게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몰랐다는 것이다. 


우리는 할아버지가 개를 키우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도 보리와 무무(누리의 새끼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귀찮다는 듯 아주 흔쾌히 개를 데려가라고 했기에 그 개를 데려오는 데 있어 값을 지불하거나 감사를 표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쌍화차 같은 걸 가져간 적은 있지만, 정작 할아버지가 안 계셔서 전해드리지 못하고 한참 동안 집에 두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어떤 것도 지불하지 않고 개를 두 마리(이후에 무무도 데려왔다.)나 데려온 것이 할아버지한테는 손해 보는 일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고, 특히 제주에서는 개를 데려오는데 단 얼마라도 드리는 게 관례처럼 되어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평범한 경우라면 개를 사는 것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특히 살아있는 동물을 받아오는데 얼마라도 감사를 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으나 그때는 불쌍한 강아지들을 구해 온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걸 할 생각을 전혀 못 했다.      


두 번째로 강아지, 그것도 다 큰 성견이거나 중형견 이상으로 자랄 가능성이 높은 개-를 입양 보내는 일이 거의 하늘에 별따기라는 걸 몰랐다는 것이다. 나는 작은 개 보다 큰 개가 더 귀엽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부모님이 아파트에서 진돗개와 함께 산 적도 있었기에 열심히 찾으면 분명 보리도 입양 보내고, 귀여운 무무도 입양 보내고, 예쁜 누리에게도 가족을 찾아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1-2년 안에는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일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점점 더 크게 느낀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게 무무와 누리, 백미와 현미(모두 누리의 자손들) 그리고 봄이와 포이에게 모두 좋은 가족을 찾아줄 수 있었지만 결국 보리는 우리가 입양해 가족이 되었고, 다른 강아지들도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간신히 입양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강아지를 입양 보내는 것, 그리고 개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해 경험도 지식도 없는 채로 보리와 함께 이사를 했다. 먼 거리가 아니었고, 이사 갈 집이 먼저 비어있는 상태라서 며칠 동안 천천히 오가며 청소도 하고, 큰 짐들을 옮겼다. 오래된 집이었던 데다 이전에 짐이 많은 대가족이 살던 집이라서 구석구석 청소할 곳이 많았다. 원래 살던 집이 작은 원룸이었고, 나도 오래 살 생각으로 왔던 것이 아니라서 짐이 별로 없었던 게 다행이었다. 그래도 자잘한 짐들은 어느새 많이 늘어서 이삿날만 해도 생각보다 몇 번을 더 오가야 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그때만 해도 차에 타는 걸 무서워하던 보리를 데리고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이동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형 승용차에 짐을 가득 실은 채로 앞 좌석에 끼어 앉지 않았을까 싶다. 이삿날이 다가오던 어느 날, 그 집에 살던 고양이와 누리, 보리가 모두 마당에 나와 있는 장면이 사진으로 남겨져 있어 그날 만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누리와 무무, 그리고 중성화 수술을 시켜 줬지만 어느새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는 게 자연스러워진 고양이를 두고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자주 와 보기로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짝꿍과는 보리를 마당에서 키우기로 협의를 했었다. 그는 강아지를 집 안에서 키우는 것에 대해 낯설어했을 뿐 아니라, 보리를 데려가서 입양 가족을 찾아 준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과연 입양을 보낼 수 있나) 입장이라서 그 정도 타협이 최선이었다. 다행이랄지 마당은 넓었고, 조금 정리가 되면 울타리를 쳐 주거나, 집을 만들어 줄 수 있을 터였다. 


마당에서 살던 보리


처음에는 긴 줄을 연결해 보리를 묶어 두었고, 잘 때는 화장실과 집이 연결된 세탁실에서 재우려고 했다. 하지만 이사 온 집은 보리에게도 낯선 곳이라서 계속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 했다. 여름이라 문을 열고 방충망만 닫아 두었는데, 방충망을 계속 긁고 결국 뜯어서 안으로 들어왔다. 밤에 세탁실에서 잘 때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집에 들어오려고 해서 잽싸게 문을 닫아야 했다. 마침 이사 후 며칠 뒤에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 친구들이 와 있었는데, 사람들이 북적거리니 더 집에 들어와 함께 있고 싶었을 테고, 어느 틈에 현관까지, 부엌까지 하며 집에 들어와 있기도 여러 번이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쓰레기통 뒤지기도 여러번 했다.


친구들도 돌아가고 새로운 곳에 어느 정도 적응도 되었을 즈음 태풍이 왔다. 저녁부터 정전이 될 정도로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불었는데, 결국 그때부터 보리는 우리와 함께 실내 생활을 하게 됐다. 낮 동안 마당에서 한참 비를 맞던 개를 잘 때라고 안에 들여놓는 것이 더 번거롭고 불편할 뿐만 아니라, 세탁실은 소리도 더 잘 들려서 개가 무서워할 수도 있고, 신경 쓰여서 개를 보러 왔다 갔다 하는 게 더 힘들며, 특히 입양을 보내려면 실내 생활에 적응이 되어야 한다는 핑계로 짝꿍을 부단히 설득했다. 사실 설득이라기보다는 우겼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집 안에 살기 시작한 보리

 

어쨌든 그렇게 태풍이 불던 여름에 보리는 진짜 ‘집강아지’가 되었고, 입양홍보도 나름 열심히 했다. 보리는 내 눈에는 너무 예쁜 강아지라서 정말 금방 데려가려는 사람이 나타날 것만 같았는데, 네이버 카페, 보호소 강아지들이나 유기견 입양 홍보를 하는 포인핸드, 인스타그램, 동물단체 홈페이지.. 그 어디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맘때 우리가 살았던 집_누리와 무무가 살고 있는 옆집_을 숙소로 신혼여행을 온 부부가 무무와 누리가 지내는 모습을 보고 인터넷에서 내 글을 찾아 연락을 해 왔다. 개들이 지내는 모습이 안타까운데 혹시 누군가 챙겨주고 있는 사람이 없나 하는 생각에 찾아봤다고 했다. 아무도 그 글들을 보고 연락해 올 거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던지라 너무 놀라고 고마웠다. 태풍 때문에 개들에게 밥을 주러 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개들을 대신 챙겨주겠다고 말해줘서 정말 고맙고 반갑고, 나를 찾아 연락을 해 온 것이 신기했다.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서울로 돌아간 다음에는 보리 입양 홍보도 함께 해 주었다.      


얼마 되지 않았던 보리의 입양 문의 중에 직접 보리를 보러 온 사람도 있었다. 다섯 살 정도의 남자아이와 어머니였는데, 강아지를 보러 집에 와도 되느냐고 물었고, 나는 당연히 너무 좋았다. 하지만 보리가 어린아이와 만나는 모습은 본 적이 없고, 어떨지 알 수 없어서 긴장도 됐는데, 우리 집에 온 모자는 보리를 너무 예뻐했고, 당장 보리를 데려갈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아이가 보리를 너무 좋아했는데, 신이 나서 테이블 주위를 뛰어다녔고, 보리는 그 아이를 쫓아다녔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불안하고 걱정돼서 보리를 애써 잡아두고, 아이가 뛰지 않을 수 있도록 얘기도 여러 번 했는데, 오히려 그 어머니는 너무 태평했다. 그리고 두 번 정도 더 우리 집에 와서 보리를 봤는데, 마지막에 왔을 때는 보리만 데리고 동네 산책을 해도 되냐고 해서 다녀오라고 했다. 너무 안 와서 내가 마중을 나갔을 때는 여름 저녁인데도 거의 어둑해질 즈음이었다. 곧 다시 볼 것처럼 열렬한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그 후 연락이 없었다. 


산책할 때 보리가 너무 당겼던 걸까, 보리가 산책할 때 너무 당기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는 간식 주면서 했더니 괜찮았다고 했었는데.. 어떤 생각을 하고 결론을 내렸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타부타 연락을 줬다면 기다리진 않았을 텐데 아쉬웠다. 나도 너무 어린아이와 큰 개를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고, 보리도 사회화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와 놀다가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도 했었기에 입양이 성사되지 않은 게 그리 놀랍지도, 크게 서운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연락이라도 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꽤 오래 했다.      


보리를 데리고 국제학교들이 모여 있는 영어교육도시에 가서 입양홍보를 하기도 했다. 마침 가까운 곳에서 새끼 강아지들과 모견을 구조하신 분이 있는데, 그분도 나날이 쑥쑥 자라는 아기 강아지들을 데리고 입양 보낼 방도를 생각하던 중 직접 강아지들을 입양할 만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 찾아가기로 한 것이었다. 캐나다, 호주, 영국 등에서 온 선생님들이 많은 사는 곳이다 보니, 큰 개들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들보다는 인식이 더 열려있는 편이고, 개들을 집 안에서 키우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문화가 좀 더 보편적이라서 그곳에서 직접 강아지들을 보여주며 입양 홍보를 하면 좋을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나도 혹시 보리에게도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고 함께 입양 홍보에 나서기로 했다. 새끼 강아지들이 워낙 귀여울 테니 관심을 별로 못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들이 겸, 그늘을 가릴 파라솔도 빌려줄 겸 함께했다. 

역시나 사람들은 대게 어린 강아지들에게 더 관심이 많았지만, 보리도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꽤 받았다. 그중 보리를 보고 한참을 예뻐해 주던 한 어린이가 있었다. 한참을 앉아 보리를 쓰다듬었는데, 보리도 그 아이의 손길이 편안한지 가만히 있었고, 그 아이의 부모님들도 어쩌면 개가 이렇게 얌전하냐며 관심을 보였다. 그래도 집에서 개를 키울 수는 없다고 한 모양이었고, 아이는 아쉬워서 떠나지 못하고 한참 보리를 만져주다가 갔다. 한 번쯤 더 가고, 그 후로는 시간도 잘 안 맞고, 입양 효과도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안 갔는데, 얼마 뒤 그 입양 캠페인에 함께 갔던 지인이 그때 왔던 그 여자아이의 가족이 와서 보리를 찾았다고 전해줬다. 그때 그 입양 캠페인에 또 나섰더라면 보리는 입양을 갈 수 있었을까? 글쎄, 그 당시에는 그 기회를 놓친 것이 너무 아쉬워서 그날 나가지 않은 걸 꽤 후회했지만, 아마 그 가족도 적극적인 입양 의사가 있었다면 연락할 방법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보리의 '임시보호' 기간은 8월 초 이사할 때부터, 12월 중순쯤 까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후로 보리는 ‘우리 강아지’가 되었다. 만약 누리가 임신을 해서 새끼들을 낳고 한 달 동안 우리 집에 와서 보살피는 일이 없었다면, 보리는 한동안 더 임시보호를 하다가 다른 가족에게 입양을 갔을지도 모르겠다. 누리의 이야기는 다른 편에서 자세히 써야겠다. 


보리가 우리 개가 된 후로도 나는 늘 다른 개들에게 마음을 나눠주고 있었다. 보리가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 수술을 하고 회복할 때나, 개들을 멀리 입양 보내고 다른 개들을 구조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고 있을 때 말고는 늘 주변에 마음이 쓰이는 개들이 나타나 마음이 분산되었다. 보리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다른 개들이 집에 오는 것에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한 번도 문제가 일어나는 일 없이 잘 지냈지만 그건 정말 다행스럽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보리가 참고, 표현을 잘 안 하는 강아지라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른 강아지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래서 보리와 가족끼리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애틋하고, 소중하기도 하면서도 늘 다른 개들에 대한 생각을 잘 멈추지 못한다. 사랑을 나눠줘야 할 보리보다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보지 못 한 다른 개들이 더 안쓰럽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그런 마음이 더 큰 분들이 개를 구하는 일에 생을 바치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면서도 딱 떨어지는 답을 구할 수 없는 일에 마음이 엮여 잘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이다. 이제는 이런 상태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들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매달리는 것이 나의 도덕적 우월감을 확인하고 싶거나, 오만한 마음은 아닌지 돌아보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