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무 이야기를 써야겠다. 서울 도련님이 된 무무.
무무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처음 며칠은 개가 있는 줄도 몰랐다. 무무가 있던 자리는 우리 집 대문을 나서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마구 자란 풀과 나무로 뒤덮인 공간이었고, 그 공간은 할아버지 집에서 보자면 뒤꼍 같은 곳이었다.
눈길도 주지 않고 무심하게 지나치던 곳이었고, 개가 있었던 적도 없어서 외출할 때는 물론 보리와 아이비를 보러 가려고 몇 번을 오가면서도 거기 개가 있는 것을 몰랐다.
개가 있다는 걸 알고 나서도 그 개에게 다가가 보는 데까지 또 한참이 걸렸다. 순한 레트리버처럼 생긴 데다가, 새끼들이 있어도 사람에게 짖지도 않던 누리나, 어릴 때부터 쭉 봤던 보리와 달리, 풀숲에 둘러싸여 잘 보이지도 않는 누런 빛깔의 개는 낯설고 무섭기까지 했다. 우리를 향해 짖지도 않고, 나뭇가지와 우거진 풀숲 사이로 쳐다보는 우리를 꼬리를 살살 흔들며 쳐다보기만 했다.
보리와 누리가 지내는 모습을 보면 할아버지가 그 개라고 더 잘 챙겨줄 리 만무했고, 결국 어느 날 용기를 내서 가까이 가 보기로 했다. 가까이 가려고 하자 그때야 그 개는 헥헥 거리며 목줄을 당기고 앞발을 들어 가까이 오려고 했다. 보리보다 짙고 긴 털 때문에 덩치도 더 커 보이고, 발도 커서 가까이 가서도 혹시 물리지는 않을지 밥을 주는 것도 조심스러웠지만, 배가 고프고 사람이 그리웠을 뿐 엄청 순한 개였다. 그리고 역시나 밥도, 물도 없었고, 개집이라고도 할 수 없는 버려진 공간에 묶여 있는 상태였다. 이후에 할아버지에게 물으니 보리의 형제라고 했다. 보리와 함께 제일 늦게까지 남아 있던 아기 강아지가 있었는데, 아마 보내졌던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목줄은 작아진 채로 목에 꽉 끼어 있었고, 얼마간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사람을 좋아하고, 손길을 갈구했다.
산책을 하기 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이름도 한참 뒤에 지어줬다. 왠지 '모모'라는 이름이 생각났는데, 입을 오므려 발음하는 이름이 무무에게 붙이기엔 좀 작은 이름 같았다. 입술에 힘을 풀고 약간 무심한 듯 귀엽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귀여운 이름을 가졌지만 심란한 환경에서 줄에 묶여 살아가는 개. 밥을 줄 때는 잔뜩 우거진 나뭇가지와 버려진 건축 자재 같은 것을 치우며 지나가야 했고, 유난히 사람을 좋아해 수선스러운 개를 어떻게 데리고 나와 산책을 할지도 막막했다. 서로에게 조금 익숙해지고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산책을 해 보기로 했는데, 줄을 풀어주자마자 뛰어나올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 풀숲을 나오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줄을 풀어줬는데도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던 자리에서 낑낑거리기만 했다. 맛있는 걸 앞에 두고 아무리 유혹을 해도 작은 장애물을 앞에 두고 건너 오지를 못 했다. 한참을 앞에 두고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줄을 잡고 데리고 나왔는데, 줄을 잡고 나오니 잠깐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당기거나 저항하는 것도 없이 수월하게 나왔다.
가까스로 나와 처음 산책을 하던 날. 무무는 깜짝 놀랄 만큼 산책을 잘했다. 누리나 보리처럼 줄을 당기지도 않았다. 다만 한 번씩 가던 길에서 주저앉았다. 찻길에서 주저앉기도 해서 진땀이 나게 했는데, 길 건너 정자에서 소풍을 나와 있던 지인들을 만나 간식을 얻어먹고는 긴장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았다. 처음 나온 산책에서 좋은 기억을 얻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도 수시로 주저앉았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건 겁이 나서였다. 무무는 겁이 아주 많은 개였고, 태어나서 그만큼 걷고, 낯선 곳의 냄새를 맡은 것이 그날이 처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처음 산책을 해 봐서 다리에 힘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아마 처음 맡아보는 온갖 냄새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멀리 나와 버린 것 같아 겁이 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몇 번 번 산책을 더 하니 당기기도 하고, 더 적극적으로 냄새도 맡았다.
무무가 정말 겁이 많다는 것은 입양을 가서 확실하게 알게 됐는데, 입양을 간 집 계단을 한 달 동안이나 내려오지 못해서 내내 실내에서만 배변을 했다고 한다. 밖에 나가기 시작한 후로는 실외에서만 배변을 하는 개가 한 달이나 실내에서만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겁이 많은 것인지, 그리고 그동안 가족들을 얼마나 애를 태웠을지 무무도, 가족들도 고생을 참 많이 했을 것 같다.
무무가 한 달 동안이나 계단을 못 내려올 만큼 겁을 먹었던 것은 아마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할 틈도 없이 비행기를 탔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이사할 때 보리를 먼저 데리고 와서 입양을 보내고 그다음 무무나 누리의 입양처를 찾으려던 중이어서 보리가 집에 와 있었고, 보리와도 아직 적응 중이라 무무를 데리고 와서 적응시키고, 훈련을 할 생각을 못 했다. 지금은 무무와 누리의 가족이 된 분들이 신혼여행을 왔다가 무무와 누리를 만나고, 한 아이라도 그곳에서 데리고 나오고 싶다는 생각으로 입양을 결정했고, 그렇게 서울로 가게 된 무무를 하루 일찍 우리 집에 데려와 보리가 처음 와서 지냈던 작업실 복도에서 재웠다. 입양자가 그날 우리 집에 와서 무무와 보리와 시간을 보내고 다음날 혼자 펫택시를 타고 공항에 가서 무무와 함께 비행기를 타는 일정으로 제주에 왔다. 나는 마침 갑작스럽게 친구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서울에 가게 되어 무무를 데리고 오는 것도, 무무와 하룻밤을 보내는 일도 직접 챙기지 못하고 짝꿍이 도맡아 하고, 무무 입양자를 맞이하는 일도, 무무를 떠나보내는 일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공항에는 시간 맞춰 도착해서 무무가 비행기를 탈 때는 같이 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차 타는 것도 무서워하는 무무가, 켄넬에도 적응이 안 된 상태에서, 원래 지내던 곳에서 낯선 곳으로 이동해 겨우 하루를 자고, 다음날 아침 집에서 공항(그래도 펫택시 기사님을 잘 만나 공항 가기 전에 잠깐 산책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제주공항에서 출발해 서울 집에 도착할 때까지 켄넬에 갇힌 채 완전히 새로운 공간에 도착했으니, 아무것도 모른 채 이동을 해야 했던 무무는 얼마나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을까 싶다.
무무와 누리가 어떻게 가족을 만나게 되었는지는 다른 꼭지에서 더 자세히 얘기해야 하니 여기서는 이 정도로 줄이기로 한다.
무무에게 처음 다가가기는 힘들었지만, 정말 귀여운 강아지였다. 외모가 특히 귀여웠다. 잘 못 먹어 말라 있었지만 털이 풍성하고 얼굴이 짧은 편이라 동글동글해 보였고, 골든 레트리버 같은 짙은 금빛 털이 아주 부드러웠다. 부드러워서 잘 엉키기도 해서 여름에는 털을 다 밀어줘야 했었는데, 낯선 가위질도 잘 견딜 만큼 사람에 대한 믿음도 컸다.
주인 할아버지가 누리의 중성화 수술은 원하지 않아서, 수컷이랑 가장 늦게 하려고 했던 무무의 중성화 수술부터 했다. 우리도 보리의 중성화 수술 때보다는 약간 경험이 생겨서 무무가 차를 타고 제주 시내까지 나가기 전에 가까운 바닷가에 차를 타고 가 보기로 했다. 차를 태우는 건 힘들었고, 중성화 수술하러 가는 날이라고 더 쉬워지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바닷가 산책은 즐거웠다. 금능 해수욕장에 물이 많이 빠져 모래톱이 넓게 드러나 있었고, 한쪽에 사람이 적은 해변이 있어서 무무와 발도 담그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해안에 찰박찰박한 정도로만 물이 있고, 파도도 치지 않아서인지 무무도 물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사진으로 남겨놔서 더 기억이 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즐겁고 한가하고 희망적인 시간이었다.
무무의 중성화 수술은 보리보다 훨씬 더 간단하게 끝났다. 수컷들은 원래 수술이 더 간단하다고 한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마취에서 깨려고 하는 무무를 데리고 나왔다. 무무는 우리 집에 둘 수가 없으니 다시 있던 곳에 두었는데, 그래도 그전에 주변 정리를 많이 해 주어 무무 집에 들어가는데 까지 풀숲을 헤치고 가진 않아도 됐다. 무무가 있는 곳은 돌부리가 많은 데다, 비가 오면 질척해지는 흙바닥이었지만 그래도 늘 집에서 제일 먼 곳에 응가를 했다. 깔끔한 성격이었다. 어둡고, 습하고, 바닥에 뭐가 깔려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벽만 남은 창고였지만 그래도 지붕이 있는 곳을 정리하고, 푹신한 것을 깔아주었다. 무무가 예민한 부위를 소독하는 것도 참을 만큼 우리를 좋아하고, 순한 아이라서 다행이었다.
무무까지 중성화를 해 주었으니 많은 일을 한 셈이었지만 결국 아이비는 중성화 수술을 못 해주고 이사를 가게 됐다. 아이비는 그맘때 우리 집에 오는 것을 좋아해서 줄만 풀리면 우리 집 마당에 와서 놀다 갔는데, 일부러 데려다 놓지 않으면 밤을 보내고 가기도 했다. 아마 아이비에게는 우리 집이 더 자기 집 같았을 것이다. 늘 묶여 있어도 음식 찌꺼기가 든 비닐봉지 밖에는 던져주지 않는 할아버지는 아이비가 자신을 반겨주는 것을 좋아했지만, 사랑을 주지는 않았다.
무무가 입양을 갈 수 있었던 건 귀여운 외모도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새침하고 얌전한 서울 도련님이 되어 외모를 맘껏 뽐내며 잘 지내고 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