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있지만 새끼들을 낳아도 진드기에 뒤덮여 있고, 비쩍 말라 밥도 못 먹고 있던 강아지. (누리)
다른 새끼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한 명만 남아 또 창고 옆 담벼락에 묶인 어린 강아지. (보리)
내가 데려가 키우겠다고는 할 수 없고, 좋은 주인을 찾아준다면 좋겠지만 연고 없는 동네에서 어떻게 알아봐서 개들을 입양 보낼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안쓰러워 밥을 챙겨주고, 산책을 시켜주던 중이었다. 바닷가 동네라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아주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었고, 나도 산책 할 겸 틈나는 대로 강아지들과 함께 나섰다.
어미개인 누리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지만, 아직 어린 보리는 산책만 나가면 흥분해 날뛰었고, 새 줄을 사줄 생각도 못 하고 묶여 있던 쇠줄 그대로 산책을 데리고 나온 나는 끌려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아주 얌전하게 산책을 잘 하는 강아지를 만났는데, 데리고 나온 사람은 척 보기에도 프로페셔널한 기운이 물씬 풍기는 분이었다. 시골길에서 산책을 하다가 다른 강아지 보호자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기가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떻게 하면 강아지들을 더 좋은 환경에 보내줄 수 있을까 고민이 한가득 이었기에, 개를 키우는 분에게 말을 걸면 주변에 다른 분이라도 소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분도 이미 보살피는 강아지가 많고, 산책시키는 강아지도 본인의 강아지가 아닌데 산책을 시켜주는 것이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강아지들이 있어 시간을 쪼개 산책을 시켜준다고 했다. 내 생각에는 대화를 하는 동안 보리가 아주 얌전하게 잘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분이 보기에는 영 산만했는지, 입양을 보내려면 기본적인 훈련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큰강아지(중,대형견) 입양처를 찾기 어려우니 해외 입양을 보낼 생각이 있으면 개들을 구조하고 입양 보내는 단체에 연락해 입양 홍보라도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보라는 조언도 해 줬다. 무지했던 내가 듣기엔 막연한 조언이었지만, 그 때의 나는 한 두 마디라도 내 상황을 이해해 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귀하고 인상적이었다. 하긴 지금의 나라고 해도 그때보다 뾰족한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주인이 있지만 어쩌면 길에 사는 개들보다 더 못한 삶을 살고 있는 누리와 보리는 어떤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유기견에 대한 이야기는 많았지만 방치되어 지내는 강아지들에 대한 얘기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직접적인 폭력이나, 눈에 보이는 학대를 당해 상처가 심하거나 위급한 상황에 처한 아이들은 많은 관심을 받고, 도움의 손길이 닿는 경우가 있는데, 열악한 환경에 있어도 주인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당하지 않거나, 간헐적으로 얻어먹는 밥이라도 있는 개들은 구조 우선순위에서 한참을 밀려 난다. (그 개를 직접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돌보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그 개가 처한 상황이 더없이 급하지만 객관적으로는 순서가 밀리는 것이다. 그만큼 학대 받는 강아지들은 너무나 많다.)
그래서 동물단체에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 하고 보면, 도와줄 여력이 있을 것 같은 단체는 없고, 오히려 재정난이나 인력난에 도움을 구하는 단체들을 보기가 더 쉽다. 그런 중에 내가 급하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차마 못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비교적 규모가 있는 단체들은 개인 구조자를 돕거나 위기의 동물들을 구조할 수 있는 시스템은 있지만, 일이 많고 손은 부족한 건 매한가지라서 제주도에 있는 당장 급해 보이지 않는 강아지들에게까지 순서가 오기란 요원한 일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방구석에 앉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단체들을 찾아보거나, 연락을 하거나, 글을 써서 홍보 하거나 하는 일들이었다. 그런 일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는 것이, 당장 문을 열고 열 발자국 걸음이면 닿을 수 있는 곳에 강아지가 묶여 나만 기다리는데, 결과도 알 수 없는 일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매달리는 것 보다 나가서 같이 산책이라도 하고, 간식이라도 주고 오는게 더 급한 일 아닌가 하는 마음에 조바심이 나는 것이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정답은 정해져 있지만, 돈 버는 일도 없이 작은 방에 혼자 앉아 있는 백수의 마음이란 대체로 그렇게 오락가락 하는 것이었다.
강아지들을 입양 보내는 건 거의 포기했다. 강아지들을 처음 봤던 2019년 봄, 제주에 잠깐 살기로 하고 왔던 2020년 2월, 그리고 제주에서 더 오래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던 5월. 그 사이 누리의 일곱 아이들 중 하나가 죽었고, 또 한 명이 죽은 것을 짝꿍이 보았고, 네 명의 아이들은 어디론가 보내졌을 것이고, 한 명 남은 것이 보리였다.
주인 할아버지는 우리가 개들을 돌보고 산책시켜 주는 것을 고마워했고, 본인도 개들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하루 이틀만 우리 손길이 닿지 않아도 개들이 사는 곳은 다시 엉망이 됐다. 깨끗하게 청소해 둔 곳에 썩은 귤이나 마당을 빗질한 쓰레기를 버리기도 했고, 음식 쓰레기를 봉지째 개에게 던져줬다. 그것도 있을 때만 주는 것 같았고, 가끔 교회에서 음식쓰레기를 얻어와 주는 것을 크게 노력하는 것으로 여겼다. 우리가 사다 놓은 사료에는 곰팡이가 피고 구더기까지 생겼는데, 그걸 그대로 주기도 했다.
그래도 달리 갈 곳을 찾을 수 없고, 우리가 키울 수도 없는 형편었다. 곧 이사를 할 예정이라 마음은 더 복잡했지만, 이사를 가더라도 가끔 들러서 챙겨주자고 마음을 먹었다. 대신 중성화 수술은 시켜주고 싶었다. 누리도, 보리도 모두 암컷이니 중성화 수술이라도 해서 또 임신을 하고 힘든 환경에서 출산을 하고 새끼들을 키우고 그 새끼들이 알 수 없는 곳에 보내지는 것은 피하게 하고 싶었다. 지자체에서 마당개 중성화 수술을 지원해서 시골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는 새끼 강아지들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몇 년 전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아 동물보호단체에서 그 일을 대신 해 주거나, 지원해 주는 일을 해 왔고 나도 제주의 한 단체에 중성화 수술 지원사업을 신청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2월에 제주에 와서 두 달 정도 있을 계획이었지만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예정되었던 공연이 무기한으로 연기되었고, 제주에 오게 된 목적이 없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딱히 서울에서도 정해진 일정이 없었고, 동생이 결혼하게 되면서 전셋집도 정리한 참이었기 때문에 어디에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제주에 더 있기로 했다. 어쩌면 그 전 해 4월부터 보게 된 강아지들이 서울에 있는 동안에도 계속 마음이 쓰여서, 제주도에 있으면 보살피면서 다른 수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살고 있는 집 계약은 여름까지였다. 멀리 이사를 가서 힘들게 살고 있는 강아지들 꼴을 안 보고 살 수 있다면 마음이 편했을까, 그때는 그 아이들을 두고 떠날 것이 마음에 너무 걸렸다. 배고프고, 묶여 살아 답답하더라도 적어도 임신하고 새끼를 낳느라 고생하지는 않게 중성화 수술이라도 시켜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동물 단체에서 나와 상황을 파악했고, 할아버지가 개를 키우는 방식은 나아질 것 같지 않으니 내가 강아지들이 입양갈 수 있는 곳을 찾겠다고 약속하면 중성화 수술을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원래는 한 마리만 지원해 줄 수 있는데, 내가 남의 개를 돌보고 있는 처지에 공감해서 모두 지원해 주겠다고도 했다.
입양을 보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시간을 들이고, 포기하지 않으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에게 중성화 수술 동의서를 받으러 갔더니 보리 중성화 수술에는 동의하지만, 누리 중성화 수술에는 동의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차피 둘이 한꺼번에 할 수는 없으니 일단 보리 먼저 수술을 해 주고, 다시 설득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보리 중성화 수술을 해 주러 갔다.
켄넬을 빌려왔고, 차에 태우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어찌어찌 태운 다음에 병원에 갔다. 차를 타는 것도 처음, 병원에 방문하는 것도 처음인 보리는 긴장을 했는지 아주 얌전했다. 그동안 보리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병원 불빛에서 찍은 사진이 가장 예뻤다.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민 표정이 인간에겐 귀엽게 보였지만, 개에게는 긴장한 표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붙어 있는 시간이 정말 좋았던 것일 수도 있고.
암컷 개의 중성화 수술은 조금 길어서 두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마취에서 깨려고 하는 보리를 데리고 왔다. 차를 타고 중간쯤 와서부터 마취가 깨는지 낑낑거렸다. 막상 보리 수술이 끝나고 집에 데려오자 원래 있던 곳에 다시 둘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더럽고, 모기도 많고, 수술부위를 소독해 주기도 어려울 터였다. 짝꿍 작업실 옆에 빈 작은 창고를 치우고, 켄넬과 담요를 두고, 줄을 조금 길게 해서 묶어 두기로 했다. 낯선 곳에 혼자 묶인 보리는 밤에는 울었지만, 그래도 그때 마다 나가서 볼 수 있었고, 낮에는 마당에 잠시 풀어두기도 했고, 소독도 제때 맞춰 해 주고, 밥에 약도 섞어 같이 줬다. 늘 배고팠던 보리는 쓴 약이 섞인 밥도 잘 먹었다.
중성화 수술 회복 기간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개의 컨디션은 좋아보였지만 인간의 마음 쓰임이 끝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보리를 원래 있던 곳에 데려놓으려는 계획은 계속 미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