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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Mar 19. 2024

멍뭉이 책

프롤로그

깊은 밤에, 그리고 해가 뜨기 시작하는 이름 아침에 마당에 나가면 꼭 봄이 생각이 난다. 보리와 셋이 살 때는 그렇게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나가지는 않아도 됐었는데, 봄이는 아기라 자기 전에, 일어나자마자 꼭 마당에 나와 쉬를 해야 했다. 덕분에 가을에 이른 아침 해를 많이 봤다. 봄이가 캐나다에 가는 날은 깜깜해서 달이 한밤처럼 떠 있었다. 포이가 갈 때는 보름달이었는데, 봄이가 갈 때는 초승달이었다. 포이가 떠나고 거의 보름 만에 봄이가 간 것이니 하늘이 꼭 달력 같았다.


봄이는 우리 집에 있는 동안 점점 늦게 일어나게 됐지만, 마당에 나가 만나는 하늘도 점점 어두워졌다. 아, 꼭 그렇다고는 할 수도 없겠다. 여름에는 4시에 일어나 나갔다가 하늘은 쳐다보지도 않고 들어와 다시 잤으니까. 점차 적응이 되어 우리도 이른 아침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게 익숙해졌고, 봄이도 조금씩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봄이와 나가서 아침 해가 뜨기를 기다리던 시간이 익숙해질 무렵 봄이가 캐나다로 떠났다. 봄이가 떠나고 나서 우리는 다시 아침잠을 조금 더 잤다. 봄이와 포이가 떠나고 제주의 겨울이 깊어졌다. 보름달을 보면 포이가 생각나고, 초승달을 보면 봄이가 생각나는 밤하늘을 아주 잠깐씩만 보고 들어왔다. 날은 춥고 바람이 매서웠다. 보리와 산책을 나가는 것도 힘들어서 봄이가 더 추워지기 떠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같이 있었다면 더 쏘다니고, 작은 집은 더 따뜻했겠지. 개들은 체온이 높으니까.     

 

동지도 지나고 해는 다시 길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겨울은 많이 남은 것 같다. 동네에 밖에 묶여 있는 개의 집에 볏짚을 깔아주고, 밥을 줬다. 그래도 추울 것이었다. 바람소리가 무섭고, 어둠이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밖에서 견디는 아이들이 우리 동네에 너무 많다. 봄이가 떠나면 또 어딘가에서 강아지를 주워오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리고 겨울 동안 겨우 밥을 조금씩 갖다 주며 위안 삼았고, 글을 쓰고 있다는 핑계를 댔다.      

지난 4년을 찬찬히, 그리고 냉정하게 다시 바라보면 더 이상 개를 구할 수 없는, 내 삶을 먼저 구해야 하는 현실을 좀 더 뚜렷하게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쓰다 보니 이 글은 온통 후회뿐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개를 키우지 말라고, 구조할 생각도 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은 것 같다.

하지만 개를 구하고, 또 구하려고 애쓰면서도 밝고 씩씩하고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밝고 씩씩해 보이기 위해서도 애를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보다는 조금 더 튼튼한 사람들일 거라고 믿고 싶다.      


나는 밤마다 바람이 부는 소리에 괴로우면서도 밖에 나가보지 못하는 겁쟁이이지만, 그래도 나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떤 개들은 운 좋게 ‘견생역전’을 하기도 한다.      

나는 ‘견생역전’도, ‘인생역전’도 필요하지 않은 사회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쪽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내 글이 공허하고 재미없게 느껴질지라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남겨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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