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와 새끼 강아지들을 돌려 놓아줘야 했던 것 까지 쓰고 바로 보리 교통사고 이야기로 넘어갔다.
강아지들은 12월에 데려다 주고, 경찰에 가서 조사를 받고, 검찰에서 연락이 와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불기소 처분 알림이 왔다. 다른 곳에도 쓴 것 같지만, 강아지들한테는 두 번 밖에 가지 않았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고, 눈 위를 뽀득뽀득 다니는 강아지들이 귀여웠고, 우리를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좋아했다. 눈에 덮여 바닥의 위험한 것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이비는 짧은 줄에 묶여서 창고 밖으로 몸을 꺼내면 목줄이 끝까지 당겨졌다. 사람의 감정으로 이입했을 때 황망해 보이기만 하는 그 표정을 두고 그냥 올 수 밖에 없었다.
아이비를 데려다 놓던 날에는 할아버지와 언성을 높이며 싸웠고, 아이비는 그 사이에 있었다. 원래는 무릎이라도 꿇고 개들을 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서로 소리를 지르고, 할아버지는 A의 멱살을 잡았다. 일단 강아지를 두고 오는데, 할아버지에게 허락을 받고 아이비에게 다시 인사를 했다. 아이비가 새끼들을 낳던 더러운 창고에 넣어둔 채 미안하다고 안아주는게 다였다.
그 전까지 작업실을 최대한 따뜻하고 아늑하게 해서 지내게 해 주었었는데,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아이비와 새끼들이 우리집에 있는 동안, 내가 새끼들을 괜히 살렸다고 후회하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컸는데, 그런 일은 없게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렇게 됐다. 아마 새끼들이 태어나던 날 저녁에 우리가 가지 않았다면, 아이비와 새끼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그 둘 중 몇 명이나 살았을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우리집에 데려와서 아이비가 젖 먹일 수 있게 밥 많이 주고, 따뜻하게 해 주고, 구석에 빠지지 않도록 울타리 치고, 수시로 들르고.. 그렇게 살려놨는데 결국 한 달 만에 다시 춥고 더러운 곳으로 데려다 놓은 것이다.
이제 태어난지 한 달이 지난 새끼들은 웬만하면 살 것이었다. 더 이상 아이비는 젖을 주지 않고, 주고 싶어도 저도 밥을 못 먹어 젖이 안 나올 수도 있지만, 배고파도 새끼들은 살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새끼들 준다고 따로 사료를 불려줄 일은 상상도 할 수 없고, 누리 밥도 안 챙겨주겠지만, 그래도 새끼들은 살 것이었다.
아이비를 데려다 주고 오던 날, 근처의 작은 카페에 들어가 뭔가를 마시고, A는 담배를 샀다. 나도 담배 하나를 받아 피우는데, 평소처럼 핑 돌지도 않고, 담배는 빠르게 작아졌다. 그냥 집으로 갈 수가 없어 다시 할아버지네 집으로 갔다. 할아버지가 있으면 그냥 돌아오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없었다. 그렇게 우겨서 개를 데려오라고 해 놓고, 맨 손으로는 개를 만지지도 않고, 개에게 밥을 주지도, 물을 주지도, 애정을 주지도 않으면서 그저 개가 자신을 반기기를, 집을 지키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시 갔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냥 한 번 더 인사를 하고 오는 수 밖에는. 갑자기 추운 공기에 새끼들은 낯설었는지 한 군데 모여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가보니 새끼들이 눈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 보송송하고 아기 강아지들이 때가 탔지만 여전히 귀여웠다. 새끼들도 배가 고팠는지, 불려서 간 사료에 코를 박고 먹더니, 엄마 밥그릇에 까지 들어가려고 했다. 그냥 그렇게, 잠시 얼굴을 보고, 하루라도 덜 배고프게 밥을 주고 온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했다.
다음에 갔을 때는 눈이 녹아 질척거렸다. 새끼들은 한층 더 꼬질꼬질해져 있었고, 아이비의 표정은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눈을 잘 마주치지 못 했던 것 같다. 여전히 짧은 줄을 팽팽하게 당겨 밖으로 나와 있었다. 눈이 녹자 드러난 창고 밖은 새끼들이 다니기엔 위험해보였다. 온갖 쓰레기들과 버려진 가재도구들(쓰레기와 같은 말인가)이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고, 그 사이를 새끼 강아지들이 오가고 있었다. 창고 옆으로 좁은 통로를 지나가면 무무가 살던 곳이었는데, 그 곳도 새끼 강아지들에게는 위험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새끼들은 이제 두 달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뭘 먹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다들 제법 통통했다. 털색은 비슷비슷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농도가 달라서, 얼굴 생김이랑 체구랑 털색을 보고 이름을 지어줬는데, 새끼들이 워낙 쑥쑥 자라서 그런지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우리집에 있을 때는 실내에서만 아장아장 걷는 정도였는데, 이제 쓰레기더미를 넘나들고 있으니 그만큼 크기도 했고, 정신이 없었다.
집 앞 까지 가도 할아버지가 있으면 들어가 보지 못하고 멀리서 보고 돌아왔다. 그때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까, 그 후로도 많이 생각해 봤지만 답은 없었다. 막상 아기 강아지들을 다 데려왔으면 모두 입양 보낼 수 있었을까, 새끼들만 모두 데려오고, 아이비만 여전히 중성화 수술도 못 한 채로 거기 남겨두고 와야 했다면 어땠을까. 어떻게 해도 힘든 상황인 건 마찬가지였겠지만, 어쨌거나 그 상황에서 제일 힘든 것은 아이비와 새끼 강아지들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비와 새끼 강아지들을 할아버지 집에 두고 왔는데, 그 와중에 가장 늦게 우리집에서 나은 새끼 강아지는 돌려보내지 않고 집에 두었다. 할아버지한테 얘기할 때는 새끼가 다섯 명이라고 했는데, 다 낳고 나니 6명이었던 것이다. 새끼들이 다 죽었다고 할까도 생각했었는데, 경찰에서까지 그렇게 말하기에는 우리가 배짱이 너무 약했다.
남은 그 한 마리는 유일한 암컷 강아지였다. 암컷을 그 집에 다시 돌려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았다. 할아버지는 아이비의 중성화 수술을 생각해 보겠다고 얘기 했다가도, 다른 날 말을 바꿔 개가 예쁘니 새끼를 봐야겠다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또 다른 암컷 강아지가 거기서 자라면 또 임신을 하고 반복될 것이었다.
새끼 강아지들을 집에 데려왔다고 했을 때부터 응원을 해 주던 부모님이 남은 한 마리의 새끼강아지를 키우시기로 했다. 우리집에서 한 달 정도를 더 지내다가 데려다줬는데, 그 강아지를 보면 슬퍼졌지만, 또 그 강아지를 보며 슬픔이 이겨내 지기도 하는 신기한 나날이었다.
그 아이만 두고 형제들이랑 아이비를 데리고 떠날 때는 다시 같이 돌아올 거라고 얘기해 줬는데.. 차에서 새끼 강아지들에게도 다시 우리집으로 돌아가자고 얘기해줬는데, 집으로 돌아갔을 때는 약간 붉은빛이 도는 털 때문에 ‘수수’라고 이름 붙여준 아이 하나만 남아있었다. 갑자기 혼자 남아 무섭거나 놀랐는지, 아무렇지도 않았었는지는 모르겠다. 작업실에 꾸몄던 산실 겸 강아지방을 정리하고, 대신 방 한켠에 아기방을 꾸몄다. 작업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울타리도 쳐 두긴 했지만 금세 의미가 없었고, 보리와 함께 하는 아기 강아지 육아가 시작되었다.
아기 강아지는 분유도 먹고, 불린 사료도 먹으며 하루하루 쑥쑥 자랐다. 형제들 중에 조금 치이는 듯 제일 작았었는데, 할아버지 집에 가서 다른 강아지들을 보고 오니 왠지 그 애들보다 더 큰 것 같았다. 얼마 뒤에는 토를 했는데, 실 같은게 섞여서 나왔다. 가만히 보니 벌레 같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징그러운 모습이라 인상이 찌푸려지는데, 그런게 강아지 토에서 나오다니.. 아침에 그러기에 A가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갔다 왔다. 카페에서 일 하고 있던 때라, A가 병원에 갔다가 오는 길에 들렀는데, 강아지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기생충 약을 먹어야 했다. 한동안은 기생충이 나올 거라고 했다. 수수에게 기생충이 있다면, 다른 강아지들이나 아이비에게도 기생충이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배변 장소도 분리되지 못 한 채 자라고 있는 강아지들에게 기생충 약을 먹인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수수 몸에서 나오는 기생충들을 처리하는 것 만 해도 큰 곤욕이었다. 나보다는 A가 충격적인 장면들을 더 많이 봤지만..
눈이 오던 날에 할아버지네 집에 있는 새끼 강아지들은 쓰레기더미 위의 눈들을 밟고 돌아다녔지만, 수수는 품에 안긴 채 바깥을 나와 살짝 눈을 밟아 보고 들어왔다. 수수와 함께 지낸 시간은 정말 행복했지만, 할아버지네 집에 갔다 와서는 수수를 끌어안고 엉엉 울기도 했다. 어쩌면 그 간극을 견디는게 괴로워서 부모님 집에 더 빨리 수수를 데려다 줬는지도 모르겠다. 사나흘만 더 있다가 갈 걸 나중에는 조금 아쉬워했었는데, 수수는 우리집에서 3주 정도 지내다가 부모님 댁에 비행기를 타고 갔다. 너무 빨리 자라서 혹시 기내에 타고 갈 무게가 넘을까봐 조금 이르게 잡은 것이기도 했는데, 다행히 처음처럼 쑥쑥 자라지는 않았다.
수수는 비행기도 대견하게 잘 타고,(지인에게 빌린 고양이 가방에 넣어갔는데, 기내에서 얼굴을 꺼내면 안 된다고 해서 지퍼를 닫아놨는데, 내리려고 가방을 꺼내고 보니 얼굴이 다 나와 있었다. 출발할 때와 착륙할 때만 조금 낑낑거리고 아주 조용히 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엄마가 청주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서 같이 집에 갔다. 수수가 조금이라도 안심 될까 싶어서 가방을 열어주고 뒷좌석에 같이 탔는데, 엄마는 조금 서운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새끼 진돗개를 데려와 키운 적이 있다.(아빠와 협의 없이 엄마가 데려왔지만) 이름은 복구. 아주 잘생기고 똑똑하고 착한 진돗개였다. 그 강아지가 교통사고로 떠난지 10년이 조금 더 되었는데, 한 번도 또 개를 키울 생각을 안 하시다가, 내가 여섯 마리나 되는 새끼 강아지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한 마리를 데려가겠다고 결정하신 거였다.
수수를 데려다 주고 이틀 뒤 바로 돌아와야 해서 아쉬웠지만, 엄마 아빠가 잘 키워주실 거라 믿기에 걱정은 하지 않았다.
보리가 교통사고가 났을 때는 얼마간은 생활에 패턴이 생기고 조금 안정이 됐을 무렵이었다. 여름에 이사를 와 가을까지는 공연을 준비했고, 공연이 끝났을 때 아이비와 새끼들을 데리고 왔다가 한달만에 돌려주고, 그 중 남아있던 한 아이, 수수를 몇 주 더 데리고 있다가 부모님 집에 데려다 주고 왔다.
수수가 있는 동안에는, 다시 할아버지 집에 데려다 놓은 새끼들과 아이비가 눈에 밟히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귀여운 새끼 강아지와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강아지가 부모님 집에 간 후 생활은 좀 더 단순해졌고, 아이비 가족들을 다시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슬슬 하기 시작했다. 2월이었고, 1월 까지 눈이 오던 날씨는 어느새 가끔 봄날 같았다. 따뜻한 날씨에 마당에서 빨래를 널었나, 시간을 보내다 보리가 나간 틈에 교통사고가 난 것이고, 병원에 있는 보리에게 달리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어도 온 신경이 그리 향해 있었고, 우리의 경제 상황은 남은 병원비 감당만으로도 빠듯했다. 아이비와 가족들을 구할 마음을 내지 못하는 아주 적절한 이유가 되었다. 마음을 낸다고 해서 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마음을 접고 보리에게만 집중하라는 계시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만이 내가 개들을 구하러 가지 못하는데 대한 정당한 이유가 되었다.
시간은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보리는 두 달 정도를 꼬박 요양해야 했다. 걷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고 해서 병원에서 쓰던 것과 비슷한 철장까지 주문했지만, 보리를 들어오게 하려고 나만 몇 번 들어갔을 뿐 제대로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방 하나에 미끄럽지 않은 담요를 깔고 그 방 안에서만 생활하도록 했다. 산책도 할 수 없었는데 마당이 있는게 다행이었다. 보리가 실내배변을 하지 않으니 때마다 마당에 잠깐씩 나가야 했는데, 그 때마다 금방 쉬를 안 하고 더 걸으려고 하는 보리와 실랑이를 하는게 쉽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 답답한 시기를 잘 견뎌낸 보리도 참 안쓰럽고 대견한 일이다. 왜 그러는지 이해도 안 됐을 텐데. 아침, 저녁으로 40분 이상씩 하던 산책을 안 하니 우리는 좀 더 한가했던 것 같기도 하다. 쉬를 하러 마당에 자주 나가야 하긴 했지만 잠깐씩이니 산책을 나가는 것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두달 동안은 멍뭉이 환자를 보내는데 집중했다. 집에 붙어 있는 공방에서 일 하는 A가 낮 동안 보리를 돌봤고, 아침, 저녁에는 함께 돌봤다. 사실 크게 돌봐야 하는 일은 없었다. 보리는 점차 네 발을 딛게 됐고, 배변을 위해 마당에서 짧게 바람을 쐬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아 했다. 이따금 갑자기 뛰려고 해서 우리를 당황시켰다. 더 많이 뛰고 싶었을 텐데, 그만큼 참은 것도 용하고 고마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