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봄, 가을을 아쉬워하고 지는 노을의 시간을 좋아하는 이유와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뜬금없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이 생각이 단지 이 글을 위한 시작이 아니고, 오가는 바람처럼 요즘 내 머릿속을 흐르고 있다고 전하기 위해서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우유부단한
모호한
불분명한
어중간한
이런 단어들 뒤에 남는 이미지는 늘 부정적이다. 특히 한반도 역사에서는 이러한 태도는 늘 지탄의 대상이었다. 생존을 위협받았다. 그래서 우리 안에 이러한 '중간 감정'을 delet 하는 자동반응이 내재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계절이 바뀌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읽은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서 환절기의 아름다운 순간을 누군가도 같이 보았고, 이렇게 말과 글로 담아냈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중간계절에는 우리가 다음으로 가야하는 운명임을 공감케 하는 힘이 있는데, 서시에서도 그런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변화의 흐름이 드러나는 때에는 누구나 우리가 '흘러감'을 알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쥐고 있었던 생각들에 스르르 힘을 놓게 되기도 한다.
유튜브 타임라인에서 우연히 김성호 님의 '회상'을 듣게 되었다. 80년대와 90년대 초에 그의 노래들은 참 주옥같았던 곡들이 많았는데, 역시 정말 아름다운 노년의 삶을 살고 있는 거 같았다. 부드럽고 깨끗한 목소리와 편안한 표정들이 그의 인생을 말해주었다. 여러 번 이 곡을 반복해 들으면서, 나는 우리가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의 만 가지의 스펙트럼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출처 : KBS전주 https://youtu.be/FXfyvQl2bD0
애잔한
애처로운
애틋한
슬프지만 행복한, 허전하지만 꽉 찬 이 마음
이러한 '중간 감정'이 주는 우리 마음의 풍요로움은 꼭 가을날의 들녘 같다. 선선한 바람이 쏴아-하고 들녘을 쓸어갈 때 시원하게 뚫어내는 마음자리, 그래서 텅 빈 공허감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 뭐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단정할 수도 없는, 그 상태를 그냥 허용하고 오래오래 두고 보며 닦아주며 곁에 두고 싶은 마음.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분명 가슴이 알고 있는 이 느낌을 이 변화의 계절에 한껏 느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