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이유
나 홀로 여행
홀로 여행을 떠나게 된 시기는 27-28살 그리고 25살에 첫 배낭여행으로 친구와 함께 유럽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유럽을 좋아하게 되었고 장거리 여행에 대한 거부감도 줄어든 것 같다. 장거리 여행은 이코노미로 앞 뒤가 비좁아 피로도가 높은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타지에 도착한 순간 모든 것이 새롭고 하나부터 열까지 매일이 작은 도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곳에 떨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보통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여유가 있어서 다녀올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오히려 여유를 찾고 싶어서 가는 편이다. 여행은 바쁨을 환기시켜 준다. 서울에서의 삶은 지속적으로 바쁠 수밖에 없는 것이 굴레이고 '바쁨'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살아가게 된다. 그걸 24-25살에 이탈리아 돌바닥을 걸으며 야간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고 그 지역 사람들의 여유로운 일과를 보면서 알게 됐다. 정신없는 삶도 있지만 지구 반대편은 아직까지도 아날로그적인 삶이 있다는 걸 말이다. 그걸 단 한 번이라도 알게 되면 여행은 도파민적 개념이 아니라 삶의 쉼표가 될 수 있다. 나는 그런 점에서 여행을 좋아하는데 사람들은 나를 또 다른 편견으로 바라보는 듯하여 아쉽긴 하다. 하지만 이해시킬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행의 이유
여행의 시작점은 나 자신을 온전히 알고 싶고 그간 바쁘게 살았으니 쉬고 싶다는 의지가 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의 10대 20대는 대체적으로 아주 바삐 흘러갔고 누구보다도 고군분투했고 다소 지쳐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장기 입시와 대학 입학 이후에도 커리어나 동아리 활동, 공모전, 아카데미 수업 등 무언가에 언제나 골몰하며 매진했고, 졸업 이후에는 한국에서 모두가 아는 대기업을 가고 싶었기 때문에 그 높은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고자 하는 욕망이 너무나도 커서 그에 맞는 노력을 했다. 영어 공부도 있을 것이고, 장기간의 인턴, 프리랜서 여러 일들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들을 축적해 나갔고 운 좋게 공무원 생활도 했고 그러다 20대 후반으로 가까워지면서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로 화살표를 돌리기 시작했다.
인생에서 성공과 일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과 인간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는 사회적 동물이나 항상 홀로이기 때문에 그 혼자만의 고독이나 외로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일상에서는 누군가에게 깊이 있게 할 일이 많지 않을뿐더러, 그저 가볍게 이야기할 때는 어느 나라를 다녀왔다 정도로만 이야기하다 보니 나를 꽤 여유 있는 인간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여행은 생각보다 시작하는 순간부터 피곤한 일이 곳곳에 널려있어 집에 있는 것이 고로 쉬는 것인데 구태여 여행을 가니 그게 꼭 '쉼'을 위해서만 가는 것은 아니긴 하다.
관심 나라와 일
그래서 지금은 '쉰다'의 개념도 있겠지만 쉼과 배움이 접목되는 여행을 찾고 있긴 하다. 배우는 걸 워낙 좋아하다 보니 여행지에 가면 어찌 되었든 뭔가를 듣거나 경험하는 클래스를 꼭 찾는다. 그중 제주 자연 요가도 정말 좋았고 가능하다면 발리 요가 여행도 떠나긴 할 생각이다. 요즘 관심 있는 나라는 동남아, 미국, 남미 쪽인데 당연한 수순인 것이 동유럽, 중국, 상해, 홍콩, 도쿄, 요코하마는 가 보았으나 기후가 습하거나 휴양지인 지역을 가보질 못했다. 물론 서유럽이나 지중해는 가보진 못했고 거리가 워낙 멀다 보니 쉽게 엄두가 안나는 것이다. 미국은 금년 박람회를 통해 미국 동부에 상품 일부를 수출하게 되었다. 뭔가 박람회를 통해 큰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항상 그렇듯 거래는 어렵다. 미국은 유럽보다 역사가 짧고 내가 상투적으로 느끼는 미국의 이미지는 다소 상업적이고, 화려한 매스컴과 할리우드, 섹시 팝스타 등 지극히 적나라한 나라였기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과 관련되게 될 기회가 생기니 언젠가 한 번쯤은 가봐도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미국은 그렇게 나의 관심 나라는 아니긴 하다.
은퇴와 떠남의 미학
일은 재밌다. 다만 항상 내 은퇴 시기는 언제일까를 고민할 때는 있다. 내가 원하는 은퇴 시기는 빠르면 45살이다. 그쯤에는 관둬야 된다고 생각한다. 주변인들을 바라보았을 때도 그렇고 50세 넘어서까지 하게 되면 물류업 특성상 인생을 굉장히 물질적이고 공허하게 마무리 짓게 될 수 있다. 모든 일에 장단점이 있겠지만 유통업은 어떤 느낌이냐면 주야정청 백색 형광등을 방에 밝히고, 불길에 수 없이 날아오는 부나방들을 일일이 상대하는 느낌이다. 돈에 극심하게 목말라 있고 삶을 굉장히 처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망과 바닥을 매번 뜬 눈으로 목격하는 것과 같다. 그게 나에게 종종 인생의 허망함을 수시로 안겨줘서 여행을 찾게 되는 것 같고, 일 외에 어떤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삶을 또 새롭게 바라보곤 한다. 왜냐면 기본적으로 서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일상 자체가 빠듯하고 여유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건데 그런 삶에 치여 지내다 보면 인생 본연의 의미를 쉽게 놓친다. 이를테면 '돈'을 제일 1순위 가치로 두는 일이 너무 간단해진다. 돈이 중요하지만 '돈 만' 중요하다고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가치의 절대성이 인간을 괴롭게 만들기 때문에 사회가 그어놓은 절대적 가치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 여행을 떠나는 듯하다. 멀리 떠나온 이에게 '돈'을 묻진 않으니까. 내 직업도 묻지 않을 거고 내 학력, 그 무엇도 여행자에게 중요치 않으니 말이다.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조차도 관심 없는 이들이 있는 낯선 곳에 있다는 건 많은 자유를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