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과 문화

2026 트렌드 코리아

책 리뷰

by borderless

한동안 책을 깊게 들여다보지 못하다가 금년 독서모임을 계기로 다시금 열정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책과 그들이 바라본 세상을 듣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책 읽는 행위와 과정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편인데, 그럴 때 나는 마치 20대 대학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나의 20대를 그려보면 조용히 교보문고 카펫 바닥에 앉아 3-4시간을 내리읽고 행복해하던 그런 평범한 친구였던 것 같다. 그게 평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민이 생기면 그 당시 고민 주제가 되는 파트로 걸어가 왠지 답이 되어줄 것 같은 책을 한 권 고르는 거다. 그리고 그 책에서 해결책을 찾곤 했었다. 사람을 통해 답을 얻지 못할 때는 사람이 쓴 책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찾고 싶었다.



트렌드를 바라보는 태도


그래서 최근에 한동안 들춰보지 않던 트렌드 코리아를 5-6년 만에 읽어봤다. 트렌드라는 게 어릴 땐 너무 변동성이 크고, 그 해의 짧게 소비되는 현상을 짜깁기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어느 순간부터 안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잘 나누지 않는다. 그것보단 '그럴 수도 있지'로 변하고, '내가 가진 이 관념이나 생각도 언제든 변할 수 있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말한 개념이 맞아라는 태도는 스스로 경솔하거나 위험한 발언이라는 걸 알게 됐다. 트렌드 코리아도 그런 관점으로 바라보니 이제는 편하게 본다. 보면서 "아, 지금은 또 이런 흐름이구나. 시대가 변화하고 있구나." 정도로 말이다.



근본이즘


난 이 단어 자체가 상투적으로 느껴져서 궁금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책에서 보니 근본이즘의 유래가 레트로(retro)나 뉴트로(newtro)와는 다른 '복각'의 개념과 더 근접한 내용이었다. 복각은 뉴트로처럼 과거의 내용을 현대식 맞춰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을 그대로 복원하는 개념에 가깝다. 그런데 이 개념이 왜 나온 것이냐면 AI를 통해 마치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대량 생산하는 이미지에 반하는 것으로 나온 내용이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찾는 건데,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고흐 작품 원본을 보기 위해 프랑스 어느 미술관을 가서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것이다. 그 안에 본질을 맞닥뜨리는 것이고, 그 개념이라면 나와 조금 더 적합한 가치관인 것 같았다.


*뉴트로 뜻 : 과거의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트렌드

*레트로 뜻 : 과거의 스타일·문화·감성을 그대로 즐기거나 따라 하는 것

*복각 뜻 :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만드는 것


이번에 책을 만들면서 그 근본이즘에 가까운 모순을 많이 느꼈었다. 이유는 AI로 표지 디자인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건 너무 잘 알고 있는데, 막상 나는 그게 싫은 거다. 분명 AI가 멋진 아이디어를 내서 여러 시안을 만들어주면 돈도 절약하고 편하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 작업물이 내가 만든 게 아니라 AI가 만들어준 거라는 생각이 드니 작업자로서 창피한 감정이 들었다. AI가 편집 디자인을 해줄 수도 없고, AI가 책의 구성을 잡을 수도 없다. 여러 아이디어와 방향성을 줄 수는 있는데 실물을 만드는 주체성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근본이즘 관점으로 보자면 나는 구태여 힘들어도 그 공간을 가보고, 사람을 직접 만나고, 대화를 해본다. 예를 들어, 요즘은 워낙 온라인 미팅 ZOOM이 일반화되다 보니 수업을 들을 때도 가상공간에서 많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 처음 협업을 하기 전이나 수업을 들을 때 무조건 한 번 이상은 실물을 보고, 수업도 대부분 오프라인으로 듣는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내가 알고자 했던 개념들이 나에게 본질적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것 같고, 그 안에서 직접 상대에게 많은 질문을 나눌 수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가상공간에 너무 오래 머물러있는 관계들은 지양하는 편이다.


미드저니 AI가 만들어준 초기 표지 아이디어



그 사람을 알고 싶다면 직접 물어보거나 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온라인에서 바라보는 그 또는 그녀는 허상과 같은 느낌이다. 잘 꾸며지고 잘 만들어진 글과 이미지로 콘셉트화된 내가 잘 모르는 타인을 대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상대를 마치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감상하듯 직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가상의 상태에 오래 머물게 두는 관계는 나에게 큰 소모감과 피로도를 높인다. 결국, 가상에 오래 머물고 싶다는 건 '당신의 오리지널리티에 관심이 없다'는 말과도 같기 때문에. 온라인상에서 수많은 정보들을 축적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판단해 보고 아니라는 것을 결정짓는 게 훨씬 더 쉽다. 마치 AI처럼. 요즘은 그래서 사랑의 진정성과 순수성이 퇴화되기 쉬운 세상이다. 갑자기 노래도 떠오른다. 이찬혁의 멸종위기사랑. 똑똑한 노래다.




HQ 건강 지능


재밌는 단어다. EQ, IQ 등등 많은데, HQ라니. 그걸 보고 나는 '그렇지 이제는 건강 지능이 필요한 시대지' 했다. 보통 우리가 20대까지는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은 초자아와 체력으로 욕심을 과하게 갖는 경우가 있는데, 30대부터는 자신만의 이데아를 조금씩 내려놓는 지점도 생기는 것 같다. 그 원인 중 하나가 '체력 저하'다. 예전만큼 빠르게 회복이 되지 않으니, 앞으로는 내 욕심만큼 멀리 가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난 그래서 지금 내가 노년층이 아닌데 노년은 어떻게 보내야를 막연하게 그려보곤 한다. 그중 건강을 어떻게 챙길 것인가도 중요한 부분이고, 어떤 가치를 사람들에게 나눌 것인가도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건강지능은 필요 이상으로 무리하지 않는 거다. 예를 들어, 매번 컨디션이 좋을 수 없고, 항상 좋은 기록을 낼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고 안정적으로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다.


*EQ : 감성지능, 즉 감정을 이해하고 다루는 능력으로 공감, 배려, 감정 조절, 인간관계 지능

*IQ : 논리, 계산, 문제 해결 같은 지능으로 생각하는 힘

*HQ : 건강지수, 즉 몸과 삶의 건강 상태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능력


체력이 떨어지거나 컨디션 안 좋으면 쉰다.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고 박수 쳐주는 거다. 내가 나를 잘 알고 몸을 써야 일도 나에게 맞는 방향성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주체성은 남이 아니라 '나'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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