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태도에 대하여
삶을 즐기는 것은 '~해야 한다'는 말을 줄이고, '~하고 싶다'는 말을 늘려 나가는 것이 그 시작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못 당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의무감과 책임감만으로 살아가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눈앞의 놓인 과제들에 내 인생을 다 내어 주기보다는 좀 더 멀리 보며, 나를 더 아껴주고, 틈틈이 나에게 즐거운 음악을 들려주고, 달콤한 휴식을 허락할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세상은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인다는 어린 시절의 전지전능함을 포기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가능할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의 꿈을 떠나보내는 과정이다.
만일 당신이 상대를 치유하려 들면 어느새 당신은 상대를 지배하려 할 것이고, 상대는 자신을 통제하려는 당신에게 엄청난 분노를 쏟아 낼 것이다. 서로의 감정이 통제되지 않은 채 복잡하게 얽히면 문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서로 상처투성이가 된 채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분명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를 훨씬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감추고만 싶었던 나의 약점과 단점을 알고도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고 받아들여 주면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구나'하는 긍정적인 확신을 갖게 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무엇이든 시도해 보려고 한다. 지금까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심리적 장벽을 깨부수고 새로운 세계와 조우하며 자아를 확장해 나간다. 사랑 안에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분석가들은 '좋은 치료자 백 명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낫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직장 동료, 선후배와 가족 같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유지해 나가는 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투여된다. 친밀하다는 것은 서로를 잘 알면서도 받아 주는 특별한 관계가 된다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 줄 용기와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며 관계에서 오는 실망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친밀한 관계에서 평생을 통틀어 가족과 소수의 친구만이 포함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다 보면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 버림은 물론, 인간관계가 의무이자 책임이 되어버린다.
혜은 씨는 얼마 전에 한 남자 후배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선배, 우리는 선배가 좋아서 함께하고 싶은 거예요." 그녀는 "좋아해 주는 건 고마운데 그냥 나는 혼자가 편해"라고 답했다고 했지만 좋아서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기쁘지 않았을까. 그 후배가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나오면 좋겠다. 꽁꽁 걸어 잠근 마음의 빗장을 푸는 데 필요한 것은 결국 누군가의 다정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