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g Blues Jan 12. 2019

2. 아이에게 이야기하기

풀타임 아빠 육아기 <아내가 이사갔다> 2화

아내는 대구로 내려가 당분간 학교 주변에 원룸 얻 지내기로 했다. 아이가 엄마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그런대로 잘 견뎌주면 2학년이 되는 내년 초에 가족 전체 이사와 전학을, 만약 견뎌내지 못한다면 되는대로 당장 이사와 전학을 추진하는 걸로 우리 부부는 뜻을 모았다. (나의 고향이 대구이고 부모님이 대구에 계시는 점이 이런 용단을 다소 수월하게 해 주었다.)


문제는 아이였다. 아이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또 언제 말할 것인가. 엄마의 부재(그것도 장기간)와 이사 계획을 아이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말하자니 아이의 스트레스가 (그리고 징징거림이!) 하루라도 더 늘어날 것 같아 싫었다. 그렇다고 차일피일 미룰 수도 없었다. 임용 합격 소식이 퍼지며 축하 인사를 겸한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류의 질문이 점점 더 잦아지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는 매우 난감해졌다.  


아이가 옆에 있는데 부모님과 통화 중 그런 이야기(그래서 이사는 언제 오니, 전학은 시킬 거니 등)가 나올 때면 나는 아이 눈치를 보며 어물쩍 말을 얼버무려야 했고, 어릴 적 형제자매 중 한둘 죽는 일은 예삿일이고 자식은 세 명 정도는 낳아 키우는 게 당연한 그분들은 다 큰 애한테 뭘 그리 쉬쉬하냐고 핀잔을 주셨다. 핀잔을 들은 후면 확 털어놓을까 싶다가도, 우리가 육아서 깨나 읽은 부모들인데 그 중요하다는 '아이의 정서'를 무시해서야 되겠냐 싶어 또 말을 삼키고 고민만 계속하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 부부는 미루고 미루다 아내가 임용장을 수여받은 날 저녁을 D-Day로 잡았다.

아내가 이사 가기 2주 전 그날, 다 같이 저녁을 먹다가 아내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내 : 가인아 엄마가 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게 되었는데 그 학교가 대구에 있어

아이 : 아 그래서 요새 엄마가 자주 대구에 갔구나~

아내 : 응.. 근데 이번에는 강의를 많이 할 수 있게 되어서 주중에는 계속 대구에 있어야 해

아이 : ???

아내 : 그래서 아빠가 회사를 쉬고 집에서 엄마처럼 가인이 봐줄 거야. 주말에는 엄마가 올 거야

아이 : 주말에만 온다고!??  언제까지..? (역시 아빠 얘긴 아웃 오브 안중)

아내 : 한동안은 쭈욱.. 올해 말까지는 계속..

아이 : (얼굴이 찡그려지며) 왜왜.. 싫어 싫어


예상은 했지만 난감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럴 줄 알고 준비한 비장의 카드를 쓸 타이밍이었다.


아내 : 그치 싫지..ㅜ 그럼 가인이 그냥 대구로 전학 가서 엄마 아빠랑 다 같이 살까..?

아이 : 전학!?? 싫어 싫어!   나 00초등학교 계속 다닐 거야!

아내 : 그럼 주중에 엄마 못 보고 주말에만 보고 그럴 수 있겠어?

아이 : 응!  나 전학은 안가. 절대 안가. 00이랑 00이랑 놀아야 된단 말이야

아내 : (역시..) 그래 그럼 전학은 싫으니까 아빠랑 여기 있고, 엄마는 강의하러 대구 좀 갈게~

아이 : (쿨하게) 응. 근데 아까 오늘 유튜브 보여준다고 했지? 언제 보여줄 거야~?


한창 친구에게 빠져있는 아이에게 '전학'이라는 비장의 카드는 위력적이었다. 너무 쿨해서 섭섭할 지경이었다.(엄마는 더 했으리라) 우리 부부는 태블릿의 유튜브 영상을 헤벌쭉 보고 있는 아이를 어이없이 지켜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마음 한 켠이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저것은 일시적 도피 현상일까, 이해력 미흡의 결과일까..

아이가 제대로 이해를 한 것인지.. 불안함은 여전했다



‘아이에게 이야기하기’는 우리의 1차 관문이었고, 제법 평화롭게 통과했다.

진짜 관문은 2주 뒤에 있을 아내의 이사였다.
아내의 이삿날은 1차 관문처럼 쉽지 않았다.
그날은 우리 세 가족이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1. '아내 이사'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