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g Blues Jan 12. 2019

1. '아내 이사'의 시작

풀타임 아빠 육아기 <아내가 이사갔다> 1화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내가 육아휴직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보통의 남편들의 육아휴직은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를 한참 고민하다가, ‘진짜 해도 될까’를 또 한참 고민하다가 실행에 옮기게 되는 경우가 많겠지만, 고맙게도 나의 경우는 그런 번뇌의 시간이 없었다. 그냥 내가 해야 하는,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갑자기 닥친 것이다. 아내가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와 8살 딸아이만 남겨두고.




지난 8월, 우리 부부와 딸아이 - 이렇게 세 명이 사는 집에 벌어진 일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나는 13년 차 회사원으로 주중에는 회사에 집중, 주말에는 가정에서 쉬는 데에 집중하던 평범한 남편이었고 아내는 수년 전 박사학위를 딴 후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딸아이를 돌보며 틈틈이 구직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아내가 (워낙 바늘구멍 같은 문이므로) 큰 기대 없이 넣었던 모대학의 교수 채용에 덜컥 합격을 해버린 것이었다. 문제가 몇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그 대학교가 지방-대구에 있다는 것이었고(우리는 서울 근교 거주), 또 하나는  불과 20일 후인 2학기 시작부터 당장 강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에게 '아내의 이사'라는, 생소함과 두려움을 풀풀 풍기는 일이 닥쳐온 것이다.

  

사실 채용 전형의 각 단계를 통과하던 날마다 잠든 아이를 옆에 두고 우리의 앞날에 대한 호기심 어린 대화를 해왔지만 그때는 어디까지나 '설마'가 전제되어 있었다. 결국 아내가 최종면접 당사자가 되어서야 우리 부부는 사고를 제대로 쳤다는 것이 실감 났다. 엄청난 기쁨과 그만큼의 당혹감이 동시에 찾아오니 우리 부부 둘 다 아주 묘한 조울 상태가 며칠간 이어졌다. 


요즘 대학 교수 자리가 그렇다. 특히 아내의 전공인 인류학 분야의 경우 개설된 학교도 매우 적어 '정규직스러운' 교수 자리를 얻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이다. 그런 어려운 자리에 기적적으로 합격을 해놓고 지방이라서 가네 못 가네 하는 것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또한 나 역시 아내의 학업을 다년간 지지하고 후원했던 보기 드문 훌륭한 남편이었으므로 그 누구보다 아내의 선택을 지지하고 성취를 축하했다.   

 

문제는 아이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