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평안하기를

'세 번째 이별의식'을 읽고

by 신민화

동생이 떠나고 난 두 달 정도 뒤부터 누군가에게 내 속 이야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마구마구 하고 싶어졌다.

동시에 아무와도 그 어떤 이야기도 나누고 싶지 않기도 했다.

위로가 몹시 고팠으면서도 그 어떤 위로도 받고 싶지 않은 상태.

누군가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온전히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누군가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누군가와 실제로 대화를 하지 않게 되면서 책을 찾아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

온라인 서점에서 읽을 책을 찾다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사람들이 쓴 책을 찾게 되었다.

사별한 사람들의 이야기, 병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야기,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람과 이별한 이야기.

보이는 대로 사들였다.

책탑이 되도록 사들였지만 막상 읽으려니 읽히지가 않았다.

아직 슬픔이 고통과 같은 뜻일 뿐인 상황에서 내 고통조차 소화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그게 어떤 고통인지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책은 최근까지도 꾸준히 사들이고 있다.

그때부터 사들인 책을 언젠가부터 한 권 한 권 읽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세 번째 이별의식>이라는 책이다.

17살에 자살로 엄마를 잃은 작가님이 10년이 지난 시점부터 내면의 트라우마를 인지하고

엄마를 진정 보내드리기 위해 애도하기 회복하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쓰신 글이 담겨있다.



책 제목 아래에 이런 글귀가 있다.

"나는 왜 살아야 하나?"에 답하는 한 자살 생존자의 기록.



동생이 떠나고 나서 나도 내게 했던 질문이다.

"살기 싫은데 왜 살아야 하지? 사는데 의미가 없는데 왜 살아야 하는 거지?"

나 역시 그 답을 찾고 싶어서, 동생을 기억하고 싶어서, 동생을 사랑하고 싶어서

앞으로도 그리워하면서 기억 속에 있는 동생과 같이 살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엄마의 사망 현장을 가장 먼저 발견한 17살 소녀는 엄마의 장례절차에서 배제되어 엄마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그 후로 10년 동안 그토록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잊을 수 없을 그 장면을 마음속에 두고

잊으려고, 나중에는 마주해 보려고 애쓰고 애썼을 작가님을 생각했다.



제삼자가 봤을 때는 아무 일 없어 보이는 모습이겠지만

그 내면에서는 전쟁 같은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다.

온 에너지를 살아서 존재하는 것에 써야 한다.

의미가 없어도 이유를 몰라도 일단 살아있기에 생존하려면 해야만 하는 행위들이 있기에

몸을 움직인다.

생존하려고 바깥에서는 내내 가면을 쓰고 지내다가

집에 와서 자려고 눕는 순간, 드디어 가면을 벗고 진정한 내 모습으로, 우울한 내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편안하게 느껴졌다는 작가님의 문장에서 나를 알아주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칠흑 같은 밤이 빨리 찾아오는 이 계절이 좋다.

나를 숨길 수 있고, 내가 보이지 않는 시간이 좋다.

가면을 벗어 던지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몸을 뉘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고, 그 어떤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되고,

그 어떤 것도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오면 나도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하루 중 그 시간은 아주 잠깐이라서 우울하더라도 달콤하다.



작가님이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날은 소풍날이었다고 한다. 엄마는 김밥을 싸주셨다고 한다.

엄마의 핸드폰을 건네주셨다고 한다. 엄마는 그날 내내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고 한다.

작가님은 죽는 순간 떠올리게 될 한 장면이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일 것이라고 했다.

그 순간을 마주했을 17살의 소녀를 책을 읽는 내내 마음속으로 안아주었다.

슬픔을 고통을 오롯이 느끼지 못하고, 그 장면으로 수 백번 돌아가 엄마를 마주했을, 그 장면 만은 피하고 싶어 발버둥 쳤던 때의 문장이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 사람을 마음속으로 안아주었다.



작가님이 했다는 생각, 감정의 결이 나의 그것과 너무너무 비슷했다(비슷하다고 썼지만 똑같아서 놀랐다).

10년이 넘도록 내내 17살이었던 소녀가 엄마를 제대로 보내드리겠다는 다짐을 하고, 애도를 하면서

그 때로부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게 소녀는 자라서 스스로를 위해서, 또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을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게 내게 닿은 이 책은 진정 내게 위로가 되었다.

내 경험을, 충격과 절망과 슬픔과 죄책감과 수치심과 우울과 혼란스러움을 작가님 역시 너무나 완벽하게 대변해주고 있어서

'네 마음 알아'라고 어루만져주는 느낌이었다.



애도는 각자의 몫이다. 기간도 정도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죽는 날까지의 시간이 필요한 애도도 있을 것이다.

이 애도가 대체 언제 끝나려나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그때도 그랬던 것처럼 일단 살면 된다.

그리고 나아가면서 일단 지금 살면 된다.

지금에 살면서 지금 마주하게 되는 것들을 오롯이 겪으면 된다.

그날 주어지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안아주면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죽을 때까지여도 상관없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젠 다른 책들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어쩌면 각자의 슬픔을 겪으면서 나누고 싶지 않았을까.

그들 역시 누구와도 이야기할 상대가 없는 사람이었기에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상대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



내가 부디 평안해지를 바라는 마음처럼,

당신도 부디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