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휴대폰은 지금도 안방 침대 옆 엄마가 휴대폰을 늘 두시던 자리에 그대로 있다. 오며 가며 엄마 휴대폰 속 사진첩을 열어서 엄마가 찍어서 모아두신 사진들을 본다. 그러다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서 꺼진 채로 있으면 충전해서 다시 휴대폰 전원을 켜고 엄마가 쓴 메모들이나 메시지 창이나 음성 녹음을 듣는다.
어제는 한 달 만에 엄마 휴대폰을 열어봤는데 엄마 사진첩 속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그동안 엄마한테 수없이 많은 사진과 영상들을 보냈는데 그중에서 삭제할 건 삭제하고 고르고 골라 남겨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손자가 태어난 순간부터 일에 치여 정신없는 딸을 위해 당신이 손자를 위해 이유식을 해먹이시고 금이야 옥이야 예뻐하시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때는 늘 보던 엄마 얼굴이었는데 오랜만에 보는 건강하고 예쁜 시절의 엄마 모습이 낯설다는 느낌에 괜스레 엄마를 아픈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던 것 같아 미안해졌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엄마와도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진짜로 알게 되었다.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그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일부러 더 의식해서 생각했다. 엄마가 먼저 갈 수도 있고 내가 먼저 갈 수도 있고. 엄마랑은 그런 이야기를 서로 많이 나눴다. 엄마 내가 먼저 가면 어쩌고 저쩌고. 사람의 생명이라는 게 당시에는 한없이 약하고 깨지기 쉬운 것이라고 느껴졌기에 준비 없는 이별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미리 준비하고 싶었다.
엄마가 장을 보러 나가도, 내가 잠깐 친구를 만나러 나가도. 지금 헤어지는 이 순간이 만약 우리가 함께 하는 마지막 순간이라면?
그런 상상을 꾸준히 했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올 거고, 난 친구를 만나고 다시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거라고 믿었다.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한 이유는 소중하게 여기고, 함께 하는 동안 감사함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니까. 우리가 함께 하는 이 순간이 진짜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나날이 거짓말처럼 쇠약해져 가는 엄마 곁에 있던 날. 매일 밤이면 내일 아침 엄마를 부르면 엄마가 대답을 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언제 뚝 끊어질지 모르는 밧줄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전엔 이게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사실은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내년에도 함께 할 거라는 걸 알았다. 엄마를 부르면 엄마가 대답을 하는 세상에 산다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는 어쩌면 내일 우리가 헤어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일상을 살면서 당장 해야 하는 일더미에 치여 생각할 겨를 없이 시간과 함께 떠밀려 흐르다 정신을 차리면 시간이 이만큼 흐를 동안 뭔가에 집중하느라 슬픔에 너무 젖지 않았다는 게 때로는 다행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운 사람은 평생 그리워하겠지만 너무 그리워하다 보면 슬퍼질 때가 있다. 보고 싶은데 다시 볼 수 없고, 내가 잘 못한 일들만 쉴 새 없이 떠올라 결국은 고통스러워진다. 그리워할 거면 그리움에서 딱 끊고 오케이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갈 길 가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내 안에서 늘 흐르고 있는 물결 쪽으로 시선을 돌려 제대로 응시하기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한다 아직은.
요즘 상상하는 ‘이 순간이 만약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라면’에서 떠나는 쪽은 나다. 그리고 가족을 보면 내게 주어진 오늘이 한없이 감사하다. 아침에 눈떠서 가장 먼저 보는, 옆에서 새근새근 잠은 솜털 같은 아이의 숨결과 살냄새에 감사하고, 아프다고 하면 열일 제치고 집으로 달려와 돌봐주는 남편의 존재에도 감사하다.
지금 헤어지는 이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라면 그저 이 순간의 모든 존재에 감사해진다.
사진: Unsplash의Milin Jo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