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그 후에 어떻게 살았을까

by 신민화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 됐지만 예전엔 드라마 본방을 보려고 집에 가서 화장실 미리 갔다 와서 먹을 거 챙겨서 티브이 앞에 앉아서 기다리던 설렘도 재미있었다. 그땐 중간 광고도 없던 시절이어서 한 번 앉으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비우지 말아야 했다. 잠깐 자리를 비웠다 돌아오면 중간에 보지 못한 내용이 뭔지 알아볼 유튜브는커녕 인터넷도 없었다.



궁금한 게 생기면 스마트폰 인터넷 검색창이나 챗지피티한테 물어보면 바로 알려주는 편리한 요즘 세상도 좋지만 가끔은 ‘기다림’과 지금에 비하면 불편했던 당시의 느렸던 일상이 조금 그립기도 하다. 난 그 시절을 겪고 지나왔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어서 그런 걸까.



드라마를 보다 보면 나는 희한하게 서브 남주한테 마음이 쓰였다. 특히 여주한테 한없는 순정을 바치고 헌신을 하고 여주가 상처를 줘도 개의치 않고 여주만을 바라보고 여주가 남주한테 상처를 받으면 여주를 감싸주는 재질들한테 말이다. 때로는 비극적인 결말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남주와 여주가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결말이 많았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그 서브남주는 남주, 여주가 함께 행복할 때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하는 게 궁금했다.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주의 행복을 빌면서, 하지만 슬퍼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게 궁금했다.



그건 만화책을 봐도, 소설책을 봐도 그랬다. 그런 곳에서는 주인공의 큰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주인공이 중간중간에 만나는 인물들이 나중에 어떻게 됐을까… 하는 것들이 궁금하다. 얼마 전에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 2권을 읽었는데 송수익이 의병활동 중 부상을 입고 산속 절에서 지내는데 그때 절에서 머물었던 과부 홍 씨라는 인물이 있다. 송수익이 홍 씨를 보고 가 과부가 돼서 수절하고 있는 사연을 알고 서신을 보냈는데 홍 씨는 나중에 송수익을 마음에 품게 되어서 절을 떠났다가 오로지 송수익이 머무는 절에 가기 위해서 시부모님한테 거짓말을 하게 된다.



마크툽의 <찰나가 영원이 될 때>라는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얼마나 내가 널 좋아하면 달에 네 목소리가 들려’

‘얼마나 내가 널 원하는지 눈을 감아도 너와 마주쳐’



홍 씨가 송수익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묘사하는 장면을 읽는데 저 노래가 귓가에서 배경음악으로 자동재생됐다.

그리고 만난 송수익과의 짧은 만남에서 송수익은 홍 씨에게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선을 진하게 긋고 떠나면서 2권이 딱 끝이 난다.

아직 3권을 빌려놓고 읽지를 않아서 홍 씨가 나중에 다시 등장할는지 아닐는지는 모르지만 책장을 덮고 나는 또 돌아서서 떠나는 송수익의 뒷모습을 바라봤을 홍 씨의 옆으로 가서 홍 씨를 바라보게 된다. 홍 씨는 송수익이 완전히 떠나고 나서 얼마나 있다가 발걸음을 옮겼을지. 울었을까. 그 절에서 머무는 동안, 송수익이 없이 해가 뜨고 달이 뜨는 매일을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맺었을지 그런 게 궁금해졌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뉴스에는 비극적인 소식이 참 많다. 누군가가 홀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고, 큰 사고가 나기도 하고. 세상에 혼자인 사람도 있어서 슬퍼할 이 없는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의 마지막 날이 궁금하고, 그가 떠나고 세상에 남은 사람이 있으면 그때는 떠난 이뿐만 아니라 남은 사람은 그 뒤로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하다. 뉴스에서는 인터뷰 장면만 볼 수 있지만 인터뷰가 끝나고 그 사람은 어떻게 집으로 갔을까. 밥은 먹었을까. 잠은 잘 잤을까.

지나가고 나면 그만일 수 있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들. 나랑 별 상관없어 보이는 그런 존재들에게도 마음이 왜 이리 마음이 쓰일까.



나도 지나가고 나면 그만일 수 있는 사람이어서? 누군가의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그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여서? 나는 세상과 별 상관없는 존재처럼 느껴져서? 그래서 그런 나를 보듯 하는 걸까. 지나쳐도 한 번쯤 돌아봐주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한 번쯤 생각해 주었으면, 별 상관없어 보이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 내게도 마음 한켠을 내어주었으면 하고 은근히, 하지만 강렬히 바라는 마음이라서?






사진: UnsplashMartin 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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