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르면 엄마가 대답해 주는 세상.
엄마는 이제 보리차와 사과즙, 그리고 박카스 정도만 소량씩 드실 수 있다. 엄마의 몸은 앙상하고 복수가 찬 배는 불룩하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누웠다 앉거나 앉았다 눕는 것조차 혼자 할 수 없게 되었다.
다음 주면 산정특례 적용도 끝이 난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도저히 갈 수 없는 엄마를 대신해 보호자가 대신 산정특례 재등록은 안된다고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산정특례 혜택을 오롯이 누리면서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산정특례 혜택 못 받아도 괜찮다.
요양병원 몇 군데를 알아봐 두었다. 엄마는 집에 계시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집에서 모시면서 편하게 쉬게 해드리고 싶다.
1월부터 항암을 중단했으니 엄마가 지금까지 곁에 계신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일 마치고 나서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난 후에는 엄마 옆에만 있다.
엄마 옆에 붙어서 엄마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등이 아프다고 하면 등을 쓰다듬어 드리고 자세를 바꿔드리고 씻겨드리고 이불을 덮어드리고 물을 마시게 해 드리고 소변을 보시게 해 드리고 속옷을 갈아입혀 드리고 이부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해 드린다.
아이를 그렇게 키웠다. 엄마가 마치 내 딸처럼 느껴진다.
2002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요즘 많이 난다. 외할머니가 지금 엄마를 보면 얼마나 마음 아프실까. 우리 엄마는 4남 1녀 늦둥이 막내인데 강원도에서 부산으로 시집와서 평생 고생하면서 사는 엄마를 늘 애달파하셨다고 했다. 엄마 시집갈 때도 며느리 눈치 보느라 혼수 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시며 마음 아파하셨다고 했다. 그런 늦둥이 막내딸이 지금 뼈만 남아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외할머니의 마음은 또 얼마나 찢어지실까.
어린 아기를 키울 때와 똑같네...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우셨겠네.
진 자리 마른자리 갈아주시고 손 발이 다 닳도록 소창 기저귀 빨아서 말리고 밥 해먹이고 아프면 옆에 붙어서 나을 때까지 돌봐주셨겠네.
엄마도 외할머니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한 딸이라는 생각이 드니 엄마를 마치 내 딸처럼 돌보게 되었다. 앉아 있는 모습도 애달프고 푹 잠들지 못하는 모습도 안타깝고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편안히 쉬었으면.
엄마를 부르면 늘 엄마가 대답을 했다.
엄마 밥 줘
엄마 돈 줘
엄마 옷 사줘
엄마 나 뭐 해줘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니 주로 뭘 달라는 내용이 많았구나. 엄마는 늘 뭔가를 해주는 사람이었네. 아낌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엄마가 내 앞에서 울 땐 뭔가를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하셨기 때문에 엄마가 뭔가를 해주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부르면 늘 대답할 수 있는 곳에 계셨구나.
엄마가 아프고 나서부터는
엄마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곤 했다.
엄마가 세상에 없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엄마와의 이별이 현실이 될까 봐 이내 생각을 거두었다.
엄마는 살아있는데 죽은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요즘 엄마를 보면
정말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느껴진다.
엄마를 불러도 엄마가 대답할 수 없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세상이 내 현실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너무 소중하다.
앙상해졌어도 초롱초롱한 눈빛이 예쁜 엄마
엄마 오늘 밀면 먹고 싶으니까 너 밀면 시켜서 내 앞에서 좀 먹어보라는 엄마
딸 곤히 잠든 거 우기 싫어서 허리가 아프면서도 자세 바꿔달라고 말도 안 하고 꾹 참는 엄마
당신은 겨우겨우 벽을 짚고 서있을 수 있던 때에도 딸 감기 들었다고 배도라지차를 끓여내시던 엄마
엄마 없어도 슬퍼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라고 말하는 엄마
그런 엄마가 곁에 계신다.
엄마를 부르면 엄마가 대답을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