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 to 어남선생님
퇴근하고 집에 가면 엄마가 부엌에서 부산하게 움직이시며 저녁밥을 준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점심 즈음이면 늘 통화하면서 오늘 하루는 어때, 오늘은 뭐 먹었어, 기분은 어때, 운동은 했어 , 오늘 저녁엔 뭐 먹을까 등등을 이야기하던 통화녹음이 2674개가 있다. 문득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땐 늘 엄마와 통화하던 시간에 그 통화녹음 중 아무거나 하나씩 재생해서 듣는다. 전화를 받자마자 깔깔대며 웃던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때 그날처럼 웃을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주말에 음식을 만든다. 언제나 내가 먹고 싶다고 말만 하면 뚝딱뚝딱 만들어주시던 엄마의 사랑이 그리워서 음식을 만든다. 엄마 생각을 하면서. 딸이 먹고 싶다고 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시던 엄마의 마음을 상상하면서 음식을 만든다.
엄마는 뭘 보지도 않고 참 쉽게 쉽게 만드시던데 나는 공부를 한다. 전날 레시피를 찾아서 재료를 알아보고 시험공부하듯이 외워도 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해본 다음에 실제로 요리를 한다. 요리를 할 때도 레시피를 한 단계 한 단계 보면서 신중하게 조심스럽게 진행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참 편한 세상이라 인터넷 검색창에 음식 이름만 검색해도 레시피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온다.
요즘 내 요리 선생님은 ‘어남선생’ 류수영 선생님이시다. 예전에 엄마가 류수영이 일미무침을 참 쉽게 만들더라며 해 보라시길래 따라 해본 적이 있었다. 어남선생님 레시피의 특징은 나 같은 요리라고는 해본 적도 하고 싶은 적도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거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게끔 간단하면서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요리책을 출판하셨는데 책이 나오자마자 사서 주말마다 하나씩 따라서 만들어보고 있다.
가장 최근에 만든 음식은 차돌된장찌개였다. 어남선생님 책에 있는 레시피인데 역시나 ‘이거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도록 쉽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도전해 봤다. 책에 나온 사진을 보면 재료도 얼마 되지 않는데 왜 항상 싱크대는 쓰레기와 자투리 야채와 그릇으로 엉망진창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어남선생님 레시피가 나에게 용기를 주는 이유는 필요한 양념을 한데 넣고 적절한 방법대로 끓이거나 볶거나 하다가 추가로 재료를 넣고 조금만 더 조리하면 끝이라는 간단한 과정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마지막 과정으로 보글보글 끓이면서 맛을 봤는데 와… 이걸 내가 만들었다고? 된장찌개가 이렇게 쉬운데 이렇게 맛있다고? 기쁘고 신기했다. 그날 저녁 갓 지은 밥과 함께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 나도 이제 된장찌개를 끓여!!! 보고 있지? 나 잘 먹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한테 내 된장찌개 맛을 보여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그럼 엄마가 앞으로 된장찌개는 다 나한테 끓이라고 시키셨을 텐데.
그래도 엄마는 재료 손질은 미리 엄마가 다 해놓고는 '이제 끓이기만 하면 돼..!' 하셨을 것 같다.
<표지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