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세다

by 신민화

‘딱 추석즈음 되면 바람이 시원해지잖아. 참 신기하제’



추석을 앞두고 엄마는 늘 저렇게 말씀하셨다. 실제로 추석 며칠 전이면 바람이 시원해졌다. 그건 우주의 섭리니까. 하지만 지구가 태양 주위를 1년 주기로 돌고 있다는 걸 배우긴 했어도 내 눈으로 본 적도 없고, 지구 공전 속도가 시속 약 107,208km 나 된다는데 그게 느껴지지도 않으니 여름이면 찜통이 되고 가을이면 시원해지는 이 계절의 변화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엄마 인생의 마지막 계절은 여름이었다.




매년 엄마와 벚꽃이 피면 공원에 가서 꽃구경을 했다. 이젠 명소가 된 공원에 발 디딜 틈 없는 인파 속에서 떠밀리듯이 걷다가 커피도 마시고 사진도 찍는 게 연례행사였다. 올해는 같이 벚꽃을 보지 못했다. 쇠약해진 엄마는 집에 누워계시다 가족들이 낮에 모두 각자 가야 하는 곳에 가있는 사이 겨우겨우 몸을 움직여 집 건너편 경찰서 주변의 벚꽃나무를 보고 오셨다고 했다. 올해 벚꽃구경을 거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봄이 가고 장마가 한 달은 지속될 거라더니 내리는 둥 마는 둥 하는 비가 그치자 무더위가 시작됐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면 엄마 옆에서 다음 날 아침까지 함께 있었다. 엄마는 선풍기 바람도 에어컨 바람도 싫어하셔서 엄마를 피해서 선풍기를 쐬는 일이 쉽지 않았다. 여름밤에는 샤워도 자주 했다.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머지않아 끝나리라는 걸 알았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보려고 해도 엄마는 올해를 넘기기 어렵겠다는 걸 알았다. 엄마와 손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싫어하셨겠지만 엄마 사진을 남겨두고 싶어서, 아픈 엄마도 지금의 엄마도 영원히 사랑하는 엄마니까 뭐든 엄마 흔적은 남겨두고 싶었다.




엄마의 마지막 계절에 나눴던 우리의 대화 속에서 지난 한평생 동안 살면서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보다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고맙다고, 네가 내 딸이어서, 엄마가 날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우리 다시 꼭 만나자고, 행복하게 살자고 말했다.




엄마가 떠나고 가을이 왔다. 몇 년 전, 설악산에 단풍구경을 가서 찍은 사진을 봤다. 엄마는 포동포동했고 예뻤다. 고운 단풍 배경으로 웃는 엄마 사진을 보면서 그때 설악산에 다녀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단풍나무를 처음 보는 소녀처럼 신기해하시며 연신 사진을 찍으셨다. 그 모습이 생각난다. 사는 게 바빠서 꽃이 예쁜 줄도 모르고 나뭇잎이 푸른 줄도 모르고 살았다시던 엄마와 꼭 가고 싶었던 여행이었다.




엄마 없이 처음 맞이하는 가을이다. 엄마 말처럼 추석이 되니 무덥기만 하던 바람이 머금고 있던 열기가 조금 꺾였다. 역시 신기하다. 엄마 말이 또 맞네.




여름옷은 이제 입기 그렇겠네.. 하려니까 바람이 갑자기 차가워진다. 가을 좋은데 벌써 초겨울느낌이라니. 엄마 없이 처음 맞이하는 겨울이네.




계절은 내 사랑하는 엄마가 이 세상에 있거나 말거나 참 잘도 오고 잘도 간다. 계절이 오고 가고 오고 가는 흐름에서 점점 거리를 두고 멀어지면서 상상해 보면 사람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시간은 그 거대한 흐름 위에서 아주 잠깐 동안이다. 아주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 계절의 오고 감 위에서 같이 잠깐 흐르다가 떠났을 텐데. 그 생각을 하면 위로가 된다. 내 시간도 잠깐일 테니.




이렇게 계절이 바뀌는 걸 세면서 살지 않았는데, 올해는 유독 계절을 센다. 엄마와 보내는 봄, 엄마와 보내는 여름, 엄마 없는 가을, 엄마 없는 겨울…. 앞으로의 계절을 어떻게 세어볼까.








표지사진

사진: UnsplashChris Law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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