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에 대추 열렸네

by 신민화

몇 년 전에 엄마가 텃밭에 심으신 대추나무에 대추가 잔뜩 열렸다.

지난 4월 고춧대를 심고 끈으로 줄기를 묶는 법을 배우면서 엄마한테 텃밭에 있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물어봤었다.

엄마가 안 계시면 알아낼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였다.

난 그동안 감나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감나무였다.

대추나무를 심고 몇 년 동안 열매가 열리지 않아서 엄마는 나무를 없애버리려고 하셨다.

올해까지만 더 지켜보자는 마음으로 거름을 사서 잔뜩 뿌렸던 기억이 난다.

그 거름을 내가 주문해 드렸다.



텃밭에 심은 상추는 사 먹는 상추보다 야들야들하고 달달하고 맛있었다.

엄마는 내년엔 다른 거 많이 심지 말고 상추를 많이 심어서 먹자고 하셨다.

4월의 어느 날, 엄마는 내게 텃밭에 씨앗 심는 법, 고춧대 심는 법 등을 알려주시려고 힘든 몸을 일으키시고 계단을 내려오셨다.

엄마가 없는 날을 준비하셨다.

그러면서 내년 계획도 이야기하셨다.

내년엔 상추를 많이 심어 먹자고....

그날 내게 텃밭 일을 가르쳐 주시려고 밖에 나오셨던 게 엄마 인생 마지막 바깥나들이였다.

힘들게 힘들게 한걸음 한걸음 걸으시던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내년 이야기를 하면

우리의 내년에 대해 생각했다. 내년에도 함께 할 수 있을까.



엄마 돌아가시고 한동안 겨우 물만 주면서 그것도 돌본 거라고 쳐준다면

오이, 고추, 토마토, 방아, 잡초, 심지도 않았는데 민들레.. 등등으로 정글 비슷한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도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는데

몇 주 전, 주말 오후에 벌떡 일어나서

엄마처럼 긴팔 긴바지를 입고, 모자를 쓰고 봉지를 들고 호미, 가위를 챙기고 텃밭으로 나가서

엉망이 된 텃밭을 싹 밀어버렸다.

대추나무, 감나무, 복분자 덩굴만 남겨놓고 싹 다 밀어버렸다.

자꾸 벌레가 무는 지 붓는 느낌이 났는데

그게 방아잎 때문인 줄도 모르고

방아줄기 가시가 어찌나 따가운지 그거 피해서 뿌리까지 뽑는 것만 신경 쓰느라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러다 대추나무에 열린 사과같이 동그란 대추를 봤다.



'엄마!! 대추 열렸다!!!'

대추를 보자마자 그렇게 말이 튀어나왔다.

몇 년 동안 엄마가 기다렸던 대추 열매!

대추는 타원형 아닌가? 왜 저리 동그랗고 탱글탱글하고 예쁘지

저 대추를 본 엄마였다면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서 열매 맺혔다고 이쁘지 하면서 자랑하셨을 텐데

엄마 사진첩에 매일매일 익어가는 대추 사진이 가득했을 테지. 안 봐도 비디오다.

아직 안 익었는데 하나 따서 먹어봤는데 맛있었다.

'엄마, 대추 너무 맛있다'

그렇게 말이 튀어나왔다.

엄마랑 같이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내년엔 어떻게 키워볼까 하루 종일 이야기 나눴을 테지.



작년에 가지를 엄청나게 쳐냈는데

그런 일 없었던 것처럼 풍성하게 자라난 대추나무를 보면서

매일매일 그 자리에 있던 생명력이 느껴졌다.



텃밭 가꾸기는 엄마의 즐거움이었다.

꽃보다는 유실수를 좋아하셔서 레몬, 블루베리, 복분자, 감, 금귤, 한라봉, 고추, 가지, 호박, 토마토, 파프리카, 상추, 깻잎, 방아, 부추, 파, 수박, 딸기 등을 심으셨다.

열매가 맺히면 손자한테 보여주고 같이 물 주면서 텃밭 가꾸는 일이 엄마의 행복이었다.

딸기를 심어놨는데 새가 와서 먹고 간 적도 있고,

길고양이가 와서 먹고 간 적도 있었다.

그러면 약이 오른다고 몇 날 며칠을 이야기하곤 하셨다.



밥상에 오르던 텃밭에서 딴 상추가 어찌나 달달하고 맛이 있던지

밥 먹으면서 줄곧 상추 칭찬을 했더니

엄마는 그 뒤로 상추 씨앗을 종류별로 구할 수 있는 건 다 구해다 심으셨다.

덕분에 종류별로 다양한 상추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이웃이랑도 나눠먹었다.



집에 들어오기 전 텃밭 쪽으로 가면 밀짚모자를 쓴 엄마가 쪼그리고 앉아서 뭔가를 하고 계시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잊지 못할 기억, 행복한 기억.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따다 씻어서 내 입에 쏙 넣어주시던 따뜻한 손길도 여전히 느껴진다.



엄마가 대추를 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엄마가 보고 계셨을까.

내가 대추를 따서 엄마한테 보여주는 모습을.



예전엔 관심도 없던 텃밭일을 엄마가 아프시고부터는 물 주기부터 시작해서

얼마 전 텃밭을 몽땅 밀어버리고 나서 파를 심는 것으로 소소하게 시작했다.

나도 뭔가를 수확하는 재미가 좋겠다 싶었다.



대추는 아직 덜 익었다.

주렁주렁 열린 대추를 보면 엄마가 좋아했을 얼굴도 같이 보인다.

그럼 나도 엄마처럼 웃어진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