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고 가야겠다

by 신민화

그 순간을 맞이했을 때, 나는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하겠구나… 했던 장면이 있다.



꽃 화분, 과실수 화분으로 가득한 베란다 정원을 향해 문지방에 걸터앉아 턱을 괴고 소녀처럼 앉아계시던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엄마를 생각하면 이 장면을 죽을 때까지 떠올리겠구나.



“먹고사는 게 너무 바빠서 살면서 꽃을 봐도 예쁜 줄도 모르고, 나무를 봐도 푸릇푸릇하다는 생각 한 번을 못하고 살았는데, 요즘 꽃이 예쁘네. 내가 이제 좀 살만 한가보다.”



우리의 첫 ‘우리 집’에서였다. 갚아야 할 대출금이 남아있지만 진짜 우리 집에서 엄마는 베란다에 예쁜 꽃 화분을 들이기 시작하셨다. 엄마 취향은 유실수여서 블루베리, 한라봉, 금귤, 레몬나무를 들이셨고 나중에는 먹고 남은 아보카도 씨앗도 심으셨다.



매일 햇살이 포근하게 들어오던 베란다 정원에 서서 꽃 화분에 물을 주고 청소를 하고 나서 베란다를 바라보면서 한참을 앉아서 바라보시던 엄마의 모습은 보고 있으면 이런 행복이 내게도 오는구나 싶었다. 엄마가 오래오래 예쁜 꽃화분을 키우며 사실 수 있길, 그 모습을 오래오래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순간은 앞으로 사는 날동안 내 눈물버튼이 되겠구나 직감했던 순간이 있다.



엄마는 음식을 전혀 드시지 못하게 되고 나서는 ‘나는 자연인이다’만 보셨다. 몇 년 동안 본방, 재방, 삼방까지 챙겨보시던 트로트 음악 방송은 이제 보기 싫어졌다시며 누군가가 맛있게 음식을 해서 먹는 게 대리만족이 되는데 '나는 자연인이다'는 자연 속에서 키운 신선하고 소박한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것부터가 힐링이 된다고 하셨다.



요즘 내가 본방, 재방, 삼방 시청하듯이 되돌아가는 순간은 바로 그날들이다. 엄마랑 앉아서 엄마 다리를 주무르면서 같이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던 날. 출연자가 만드는 음식을 보면서 맛있겠다고 같이 이야기한 날. 우리가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이야기 한 날. 엄마가 떠나기 전에 정리할 일들의 목록. 엄마가 떠나고 나서 울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라고 하면 엄마 없이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사냐고 울었던 밤. 엄마가 두 손으로 내 양볼을 쓰다듬으시며 웃으시던 순간. 엄마가 곁에 계시던 날들.



엄마가 곁에 계시지만 고통의 나날들. 엄마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 떠나는 사람은 떠날 준비를 하고 남을 사람을 남을 준비를 하는 나날들.



가장 최근의 엄마는 아팠지만 과거로 과거로 돌아갈수록 엄마는 젊어지고 건강해지고 표정이 밝아지고 생활력이 강해진다. 그런 그리운 순간들을 계속 떠올려야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것처럼 계속 계속 과거 속 어느 순간으로 가서 머문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당장이라도 집에 가면 엄마가 계실 것 같고, 전화를 하면 엄마가 받을 것 같다. 아직은 그렇다.



엄마는 지금 뭐 하고 계실까. 엄마한테 나 지켜봐 달라고 했었다. 엄마가 나 지켜준다고 했다. 우리 엄마 지금 나 보면 무슨 생각하실까. 지금 내가 지내고 있는 모습 보시면 분명 마음 아파하실 거다. 엄마가 누워계시던 침대에 누워 엄마 생각하는 나를 보면 엄마는 그러지 말라고 하실 거다. 웃으라고 하실게 분명하다. 내가 울면 따라 울던 우리 엄마니까. 내가 웃으면 마음 놓으실 거다.



후회로 남은 일들이 많아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은 기억 속에서 남아있어서, 그건 전부 과거라서, 내 삶을 살려고 내 몸의 방향을 앞으로 돌리는 건 그 모든 걸 뒤에다 남겨두고 가는 것 같았다.



내게 주어진 오늘을 충분히 살지 못하고, 제대로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고 겨우겨우 하루를 넘기는 나날이 쌓이면서 문득 엄마가 지금 이런 나를 보면 어떤 마음이실까… 생각해 봤다.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남아서 세상을 살아가는 내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면 난 그들이 어떻게 살길 바랄까.



나날이 슬픔을 쌓으며 나처럼 사는 건 결코 바라지 않을 거다. 네가 날 사랑하는 거 잘 아니까 이제 넌 네 인생 살라고 할 거다. 그리고 엄마도 그러실 거야….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뒤에 남겨두지 말고 데려가야겠다. 평생 잊을 수 없을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데리고 가야겠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다가오는 가을에 단풍을 보는 순간에도 내 마음은 엄마와 함께 할 테니까. 맛있는 걸 먹을 때 엄마와 아빠와 동생을 떠올릴 테니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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