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하고 열린 좁은 시야

by 보리아빠

좁은 시야에 갇혀 그 너머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습니다. 일부분만 보고 사람을 판단했고, 어설픈 경험을 대단한 진리로 생각했었어요. 특히나 매체에서만 볼 수 있는 유명인들은 전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연예인' 중, 제 시야를 넓혀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1세대 개그맨으로, 평생 웃기는 사람으로 살아왔던 전유성 님. 잠시 스쳤던 그분과의 인연 덕분에, 누군가를 대할 때 조금은 그 내면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2002년 8월, 입대를 앞두고 아르바이트라도 하려고 정보지를 뒤적였습니다. 작은 글자로 사람을 모으는 구인 광고 속, 생소한 상호가 눈에 띄었습니다. 유명한 와인의 이름을 딴, 그곳에 흥미가 생겨 가게에 전화했어요. 면접을 봤고, 곧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11시부터 23시까지 하루 열두 시간, 업무는 간단했습니다. 가게 청소도 하고 손님맞이도 하고요. 술집에서 잠시 일할 때 꽤 험한 경험을 했다 보니, 이 정도면 어렵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차분한 가게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유명한 소설가인 사장님은 주로 바깥에서 보내셨고, 낮 시간엔 찻집으로 운영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그렇지만 밤이 되면 가게 온도가 달라졌습니다. 와인을 곁들인 저녁 식사로 영업 노선이 바뀌었거든요. 그렇다고 사람이 많이 찾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고, 삼청동 분위기기도 지금과 달랐으니까요. 거의 단골 장사였고, 그중엔 티브이에서나 보던 유명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전유성 님도 그중 하나였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가게로 '놀러' 왔습니다.


평소 방송에서 봤던 그분은 제게 그다지 호감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아는 것도 많고, 잡학 다식한 것도 좋지만 자의식 과잉으로 보였거든요. 본인이 얼마나 잘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을 우습게 알며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듯한 태도도 그저 그랬고요. 그래서 전 딱히 그분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른 손님들과 조금씩 안면이 생기며 가게에 적응하게 되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분은 자주 가게로 왔습니다. 그리고, 올 때마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을 관객으로 마술쇼를 했어요. 다들 재미있어했지만, 전 그때 까지도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일하는 중이기도 했고, 여전히 전유성 님은 호감형이 아니었거든요. 물론 곁눈질로 봤던 그분의 마술은 신기하긴 했습니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것 같았고, 약간은 사람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분의 말 한마디에 시야가 한순간에 트여 버렸습니다.


유달리 손님이 적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전유성 님은 그날도 오셔서 여느 때처럼 마술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몇 명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역시나 재미있어했습니다. 저도 그날은 조금 여유가 있었지만, 아르바이트생 위치를 자각하며 손님이 빠진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작은 무대를 마무리한 전유성 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못 봤어? 그럼 한 번 더 보여줄게."


대답할 새도 없이, 전유성 님은 도구를 다시 펼쳐 마술을 시작했습니다. 보는 사람이라곤 저와 옆 테이블의 손님 두 사람뿐이었어요. 아까와는 전혀 다른 서사로 같은 마술을 보여주는 그분을 보고, 인간 전유성에 관해 약간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직접 마주해야만 알 수 있는 진짜 모습을 보았습니다.


심드렁하고 무심하게 툭툭 날리는 말투엔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남을 업신여기는 것처럼 보였던 태도에도, 절대 넘지 않는 선이 있었고요. 브라운관 속에서나 밖에서나 한결같은 그 태도가, 이상하게 싫지 않았습니다. 물론 듣기에 따라 비호감일 수도 있었겠지만, 직접 들어보니 그렇게 거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은 한참 동안을 실없는 농담까지 하며 재미난 쇼를 보여주었습니다.


두 번의 마술 공연 후, 전 와인을 한 잔 드렸습니다. 마침 그날은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날이라, 가게 손님들께 한 잔씩 와인을 드리며 인사하라는 특명이 있었거든요. 전유성 님도 제 이야기를 듣고는 특유의 개그가 담긴 덕담을 해 주셨습니다.


"재미있게 잘 다녀와요."


30개월을 사회와 격리된다는 생각에 침울한 마음이었는데, '재미있게'라니요!! 그 말에 웃음이 터졌고, 진심으로 전유성 님의 팬이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 훈련소에서 이따금씩 그분의 마술쇼를 생각하며, 실없이 내던지던 농담을 생각하며 진짜로 '재미있게' 군 생활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대할 때 선입견을 제쳐두고 되도록 속을 먼저 알아보는 시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제 마음속 1호 개그맨인 그분이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하늘에서도 그분의 개그가 먹혔는지, 최근 강수량이 적어진 느낌도 듭니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전유성 님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여전히 남아 있는 심드렁한 진심을 떠올려 봅니다. 가볍게 툭 날리는 한마디 말에 담긴 따뜻함을요. 일부만 보고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날려준, 무심한 가르침을요.


한 길 복잡한 사람 속은

들어가 보지 않으면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지금까지 마음에 새겨진 진리입니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전유성 님이 작고하신 날인, 2025년 09월 25일 초안을 잡았던 글입니다. 그렇지만 유명인의 사망이란 이슈를 등에 업고 싶지 않았기에, 한참을 묵혀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유성 선생님. 오래전 일이라 당신은 기억 못 하시겠지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곳에서도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