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이 쌓여가는 추억

by 보리아빠

물건을 쓰다 보면 상처도 나고 흠집도 생깁니다. 그리고 그 틈엔, 추억이 쌓이며 조금씩 낡아갑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추억을 담을 만한 공간이 부족해지면,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스티커 한 장의 무게를 더한 채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품에서 새로운 흔적을 덧바를 수도 있어요.


우리 가족은 좌식 생활에 익숙한 편입니다. 그래서 항상 세 식구가 밥을 먹을 땐 작은 상 두 개를 붙여 사용했었습니다. 딱히 불편하단 건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도 큰 상이 하나 있었으면 해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생각보다 눈에 들어오는 건 없더라고요.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중고 장터로 눈을 돌렸고, 적당한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하얀색 상판에 고정식 다리, 그리고 장방형으로 둥근 밥상이었습니다. 올려둔 사진을 꼼꼼히 확인한 다음 아내에게 보여줬더니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이미 접선을 시도한 사람이 있어서 좀 망설였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말을 붙여보았습니다.


"혹시 거래 안 됐으면 제가 살 수 있을까요?"


이 밥상은 저와 인연이 있었는지, 다행히 아직 판매되진 않았습니다. 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바로 방문하기로 약속하고,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판매자는 주소와 출입 요령을 자세히 알려주며, 따로 포장을 해 두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채팅으로 전해지는 이 말에 전 따뜻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 밥상에 담긴 행복했을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추억으로 포장되어 있을 거예요."


길 위에 내리는 눈을 보며, 잠깐 감상에 젖어봤습니다. 이 밥상엔 어떤 추억이 담겨 있을지, 그리고 앞으로 이 밥상을 어떤 추억으로 꾸며갈지 같은 것들을요. 판매자의 배려있는 말 한마디에 물건을 가지러 가는 동안도 즐거웠습니다. 짧은 시간만에 눈은 꽤 쌓였고, 문 앞에 둔 밥상을 금방 찾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또 한 번 작은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밖에 내놓은 물건이 혹시라도 젖거나 다칠까 봐 바닥에 두꺼운 종이를 받쳐 두었더라고요. 사소하지만 세심한 배려에 다시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얼마 전 대충 문 앞에 던져 놓은 물건을 가져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비교해 보니 판매자가 이 밥상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는 지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전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하고 물건을 차에 실은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출발할 때와 달리 눈은 꽤나 두터워져 있었습니다. 전 쌓여 있는 눈과 차에 실려 있는 밥상을 번갈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오늘 거래한 밥상은, 물건이 아닌 다른 사람의 추억일지도 모른다고요. 밥상을 옆구리에 끼고 걸어오면서, 앞으로 우리 세 식구가 이어나갈 이야기를 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와, 눈 맞은 밥상을 보리와 닦으며, 한 번 더 판매하신 분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당신의 추억, 이제 우리가 잇겠습니다.




보리야, 그래도 스티커는 좀...




다른 사람이 쓰던 물건엔

손때도 있고 흠집도 있지만

눈처럼 소복이 쌓인 추억도 있다.

이것이 오 느낀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