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에도 없는 쉼표

막힌 속을 뻥 뚫어주는 경쾌한 소리

by 보리아빠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수많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번호표의 주인을 찾는 ‘띵동’ 하는 기계음, 활자를 뱉어내며 ‘위이이잉’ 돌아가는 프린터 소리, 그리고 직원들이 ‘타닥타닥’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도요.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리를 내며 하루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매일 겪는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이었지만, 그날따라 정신없이 귓전을 때리는 소리에 묘하게 속이 답답해졌습니다.


“푸에취!“


그때 어디선가 재채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요즘이라면 흔히 들을 수 있는, 그저 재채기일 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나쁜 세균을 몰아내는 데 한 번으론 부족했던 걸까요? 첫 번째 재채기를 마중물 삼아 굴비 엮듯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재채기 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습니다. 점점 존재감을 또렷하게 드러내면서요.


”후이츄! 푸헬챠! 쿠쿠쳐!“


문득 피어오른 호기심에 잠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습니다. 이쯤 되니 소리의 주인은 과연 누구였는지 궁금해졌거든요.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니 저 멀리 끝자리에 앉아 있던 직원 S가 눈에 들어왔어요. 전 한눈에 그녀가 재채기의 주인공인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찡그리며 다섯 번째 재채기를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푸라파치야!“


절정으로 다다른 재채기 소리를 듣고, 여기저기서 웃음이 봄꽃처럼 피었습니다. 세계 어느 어족의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함을 모두가 느꼈던 거겠지요. 그러고는 하나둘씩 S의 재채기 소리에 대해 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당사자에겐 일상적인 일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신명 나고 시원하게 세균을 쫓아내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전 잠시 쉴까 하는 마음에 S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습니다.


주무관님,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재채기용 음원을 대체 몇 개나 가지고 계신 거예요? “


뜬금없는 말에 S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그저 나오는 대로 지를 뿐인데 그게 이렇게 웃음을 줄 줄은 몰랐다며 멋쩍어하더라고요. 전 그분께 나중에 음원 나오면 꼭 들어 보겠다며 실없는 농담을 건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고는 모니터에 다시 시선을 보내고 일을 시작하려는데, 아까와는 조금 다른 기분이 들었습니다.


왜 그런지 잠시 생각해 봤는데, 곧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속을 조였던 원인 모를 답답함이 사라졌던 거예요. 매일 컴퓨터만 쳐다보며 말없이 하루를 보내는 게 일상이었는데, S가 무심코 뿜어낸 존재감이 제게 크게 작용했나 봅니다. 쉼표처럼, 그녀의 재채기 소리는 벌게진 눈과 저린 손목에 찍혔고, 덕분에 몸과 마음에도 쉼을 불러왔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에겐 어땠을까 싶어 고개를 다시 들었습니다. S에게 따뜻한 물을 건네는 팀장님이, 티슈를 챙겨주는 옆자리 동료가 보였습니다. 그 옆에는 인턴 직원이 커피를 마시러 가고 있었고요. 부서장님까지 나와 다른 사람들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독특한 소리가, 모두에게 쉼표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곧 휴식 시간은 끝났지만, 여운은 한동안 남았습니다.


매일 똑같은 소리로 하루를 채우다 보면, 이렇듯 작은 파장에도 흐름이 바뀌곤 합니다. S의 기묘한 재채기는 모두를 지치게 했던 지루한 소리를 끊어주었지요. 물론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그 희생에 고마움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전 S에게 메신저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감기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요.


반복적인 하루에 익숙해졌어도, 때로는 예고 없이 몸과 마음이 답답해지는 일이 있습니다. 그럴 때 작고 사소한, 평소라면 그냥 듣고 지나칠 소리에도 관심을 조금 더 가져봐야겠습니다. 어쩌면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던 특별한 소리가, 쉼표가 되어 다가올지 모르니까요. "푸헤취야!!!" 하는 잊지 못할 소리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