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춘향은 여전히 리즈시절을 즐기고 있습니다
거지꼴로 낙향한 이몽룡을 보고 성춘향은 참담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기왕 신분 상승을 할 거면 지방직 사또보단 중앙 정부 관리가 더 좋을 것 같다고 항상 생각했었거든요. 실망한 춘향의 눈빛은 암행어사의 분노에 불을 질렀고, 변 사또는 당연퇴직 처리가 되었습니다. 볼기가 찢어지도록 곤장을 처맞고 나서요.
어쨌든 성춘향은 이제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루었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을 거예요. 예쁜 아이도 낳고, 철마다 좋은 곳에 소풍도 다니면서요. 정년 보장되는 고위 공무원 집안의 안주인이 되었으니 사는 동안 걱정 같은 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여기 또 다른 춘향은,
죽어도 알아주는 이 없이 불행합니다.
박색터 설화(또는 남원 추녀 설화)에 나오는 춘향의 운명은 참 박복합니다. 박색으로 태어난 것도 억울할 텐데, 이름까지 빼앗기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박색터 설화를 소개한 공간이 있긴 하지만,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박색터 춘향은 죽어서도 성불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박색터 춘향은 지금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을 달리해 보면, 박색터 춘향은 이름을 빼앗긴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죽은 뒤, 성춘향의 얼굴을 선물 받아 미인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으니까요. 천하박색에서 천하일색으로, 이만하면 박복했던 삶에 충분히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은 거두고, 당신의 이야기를 기억해 두려 합니다. 앞으로 오래도록,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를 바랍니다. 이제 설화 속의 도망간 이도령은 잊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중앙 부처 공무원인 새로운 이도령과 함께요.
시선을 바꿔서 바라보면,
누구도 실패한 인생은 없다는 것.
이것이 오늘 느낀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