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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애미 Jul 04. 2024

긴장을 늦추지 마세요, 엄마! (#3)

끝났구나 싶으면 또 다른 사건, 됐나 싶으면 다른 숙제를 몰아주는 아들

아들의 학교에서 유치원 1년 초등학교 5년 동안 학교에서 집에서 외우고 또 외웠던 Kelso's Choice라는 것이 있다.

중학교 올라와서는 굳이 선택을 고민하기 전에 말이 먼저 행동이 먼저 나오는 지라, 배우고 외우고 또 외우던 Kelso's Choice는 이미 저 멀리 가버린 지금, 스쿨버스를 탈 때마다 항상 외우게 했던 그 내용이 이렇게 무색해졌지만 너의 머리와 가슴 저 깊은 곳에는 남아있겠지...


6년 동안 OO가 버스를 타면 예외 없이 암기를 시켰다.  

'OO야 Kelso's Choice Number 1은? '

'Stop Talking! ( 주고받던 이야기를 멈추고 )  '

'Number 2? '

'Ignoring! ' (거슬리는 언어나 행동을 무시하고 )

'Number 3? '

'Telling Teacher! ' (그래도 안되면 선생님께 요청함)

그래 오늘도 잘 지내고!

아이들 간에 문제가 나기 시작할 때 더 큰 트러블을 피하기 위한 행동양식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여기서 덧붙인 항목 중의 한 가지가 ' No Physical action ' (손쓰기금지)..


그렇게 6년을 갈고닦은 수양(?) 과정을 온전히 뒤로하고 8년 만에 날린 주먹이 지난번 미팅의 시작이었고 , 이유 불문하고 먼저 사과한 덕분인지 상대부모와도 오히려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고 (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아이들이 친해지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 다시 나의 일상은 평화로운 , 평화롭고 싶은 시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도 단 1주일....


OO의 담임과 헤드(학년주임)는 그 일을 계기로 아이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주저함 없이 솔직히 대화하는 자세를 칭찬하고 싶다고까지 평화롭게 마무리되어 기쁘게 한 주일을 지낼 수 있었다.

한 주가 지나고 월요일에 OO가 학교에서 오더니 , ' 엄마, 나 수학시간에 출석체크를 하는데 수학선생님이 suspension(정학)이라고 표시되어 있다고 물어봐서 들은 건 없다고 했어. 내가 헤드한테 메일 보냈어 '


이건 또 무슨 일!

아닌데 , 분명 미팅할 때도 더 이상의 진행은 없어도 될 것 같다고 했는데? 일방적인 잘못이 아님을 인정한다 했는데? OO를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는데?

OO에게는 ' 응, 아니야 뭔가 착오가 있었나 보다. '라고 고상하게까지 대답했지만 나의 머릿속은 또다시 질풍노도의 아이 몯지않은 파도와 같은 생각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열고, 선생님들의 주소를 하나하나 입력해 가면서 이메일을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첫 문장은 시작도 못하고 '이 선생님들 앞에서만 친절하고 뒤에서 나 친 거야? ' 혼자 중얼거리기를 한 시간 정도...

갑자기 OO에게 짜증을 내며 ' 너는 어떻게 정기적으로 숙제를 던지냐? '라고 던져버렸다. 못나게도...

정직하게 잘 처리해서 고맙다고 토닥일 때는 언제고 질풍노도의 사춘기아들과 갱년기의 어미사이에 이 순간 적절한 단어는 나오지 않았고 ' 내가 보냈다고!  엄마나 Calm down 하라고! 나도 속상하다고! '

' 도대체 몇 년을 돌다리 건너듯 건너야 하니?! 왜 항상 미안하단 말을 시켜! '라고 더 이상 찌를 수 없는 단어로 자정을 넘기고 나서야 나는 다시 이메일을 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나의 고상한 척 , 쿨한 척, 대범한 척 써 내려가는 이메일은 ' 오늘 OO가 와서 suspension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던데 혹시 내가 더 알아야 하는 상황이 있을까? '라고 '더 알아야 하는 상황'을 알려주십사 마무리하였고, 선생님의 답은 너무도 명료하였다.

'아니, 교장선생님과의 대화를 위하여 오전 한 시간을 비워놓은 것이었고 절대 그 단어를 사용한 일은 없으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라고...

이렇게 간단한 이메일을 받고자 나는 또 그 몇 시간을 참지 못하고 아이와 송곳 같은 대화로 너덜너덜 해졌던 것이었던가...


아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침대로 가면서 ' 귀 줘... ' 라며 어미를 용서하는 제스처를 주었고

변덕스럽던 어미는 다시 한번 ' 미안해.. 엄마가 과하게 화내서.. '라고 소심하게 사과를 하였다.


매일매일 얘기하던

OO야 사랑해!

OO야 오늘도 고상하고 당당하고 담담하고 유머러스하게 잘 지내!

라는 우리의 메시지는 이 아이에게 주는 메시지임과 동시에 어쩌면 내가 마음속으로 새기고 새겨야 할 내용이 아니었을까?


어떤 숙제를 네가 던져도 어미는 ' 고상하고 당당하고 담담하고 유머러스하게 대처해 '라고...

어쩌면 Kelso's Choice는 저 아이들을 이끌기 위해 어른인 우리가 먼저 깊이깊이 새겨야 할 항목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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