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3. 05 ~ 2026. 03. 12
이번 편은 일주일 간의 국내여행이야기다
지역은 산업도시이자 약간의 여행지를 가진 울산이다
은사님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가장 먼저 취업한 곳이 울산이었다
당초 살던 지역에서 벗어날 마음은 추호도 없던 나는 대학 시절 은사님의 부르심으로 인해 울산을 갔다
가느다란 눈에 이름도 강하셨던 은사님은 개척 정신이 강하셨고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일을 이루는 분이셨다 그런 분이 학과장이란 이름을 탐내던 다른 교수에 의해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이후 몸 담게 된 학교가 울산에 위치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수라는 직함까지 얻게 된 은사님은 물질적으로 집안이 어려운 학생을 보시면 측은지심이 발동하셨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고 1학년 2학기에는 용돈에나 보태라며 과 조교를 맡겨주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잖아 교수님은 짐을 싸야 한다며 교수 방을 정리하셨고 마지막 송별회 자리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의 적수였던 교수 밑에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말과 함께
콜링
그런 내게 미안함이 있던 교수님은 졸업 무렵, 연락을 하셨다
직장을 구해줄 테니 울산으로 오라는 말씀이셨다 이미 직장에도 말을 끝내 놓은 상태셨다 커다란 짐 가방 하나에 짐을 싼 뒤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곳에서 언양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그곳에서 교수님과 조우했다
그렇게 시작한 직장 생활은 재밌었지만, 녹록지는 않았다
근 육 개월 가량의 울산 생활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교수님께서 세워두신 조교와 교수의 계획은 뒤로한 채
울산여행
여행을 울산으로 가게 된 이유를 찾으라면 여기서부터 일 듯싶었다
늘 가슴 한 켠을 콕콕 찌르는 듯 날카로운 바늘이 된 경험이다 그냥 졸업하고 지역에 머물며 일을 했다면 몇 년이고 했을 지 모른다 괜한 도전은 실패한 뒤 고향을 다시 찾은 내게 그것 밖에 안 되냐는 말을 듣게 했다 삶을 살아오며 그다지 실패란 걸 몰랐던 나는 그 말이 참으로 쓰디 썼다
당시만 해도 졸업하고 들어간 직장에서의 일 년 근무는 그 사람에 대한 성실성을 보는 테스트 보드였다 나는 그걸 통과하지 못했고, 이후로도 매번 들어가는 직장마다 일 년 이상을 채우기 힘들었다 내 기준은 어쩌면 첫 직장에 대한 실패감을 채우는 정도로 일 년 정도 다니며 그것을 직장생활을 성공이라 부르며 자위했나 보다
그렇지만 그 아련하고 쓰라리고 아프고 즐거웠던 시간 안으로 무릎과 발목에 힘을 주고 애써 걸어 들어가리라 결정하고 발을 디딘 것이 이번 울산여행이었다 이제는 치유의 시간이 내게 허락된 듯싶다 이후로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가슴 한 편에 박힌 가시만큼은 뺄 수 있을 것 같다
* 은사님의 우려와 달리 학과장이 되신 교수님은 적어도 학점을 공정하게 주셨고, 다른 학생과 별반 차이 없이 저를 대해주셨어요. 다만 당시 그러한 학과 상황을 보며 학교에 대한 마음이 떠난 저는 점차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갔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