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고 잘하던 그것이 수면 아래 침잠해 있다 의식 안으로 떠올랐다
드디어 브런치 작가로서 글을 쓰게 되었다
삼십 대 시절 십 년 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기도 제목을 적어 서로 중보기도 해주자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작가로서 활동하고 싶다고 적었었다 당시 물리치료사였던 나의 십 년 뒤 소망이라기에는 뜬금없어 보였는지 지체 중 몇은 의아해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고 간간이 ‘나는 작가가 되고 싶어’라는 말을 되뇌었지만 한 동안 잊힌 기억이 되었다 그러던 중 내 힘으로 해보겠다던 브런치 작가 지원은 두 번 불합격 통지를 받았고, 우연히 네이버 블로그를 통한 포스팅 글에서 브런치 작가 지원 방법에 대한 구체적 실례를 보며 포맷을 따라 금요일에 적어 지원했는데, 주말을 지나 월요일에 합격 이메일을 받았다 지원할 때 전혀 불안하지 않고 마음이 알 수 없는 평안으로 채워지더니 최대 일주일이 걸린다는 안내글에도 빠른 시일 내 합격 메일을 받을 수 있을 거란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어 드! 디! 어! 글을 적을 기회를 갖게 되었다
어찌 보면 지금으로서는 브런치 내 글들은 여행 기록을 담을 예정이지만, 글의 근간은 ‘기억‘이 될 듯싶습니다
브런치 작가 합격도 다시 시작한 여행도 모두 잊혔던 기억이 내 의식 속 저변에 깔렸다가 누군가가 비커에 담긴 침전물을 막대기로 휘저어 위로 떠올리듯 수면 위로 올라와 내 의식 속에서 ‘아!‘라는 탄식으로 이어졌다
나는 잊은 듯해도 그분은 기억하신다니 정말 그런가 보다
이제는 20대 때부터 이번에는 어디에 있냐는 말을 들을 만큼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내가 십여 년 정도 여행을 쉬다 다시 시작한 이야기로부터 글을 써내려 간다
나는 삼십 대와 사십 대를 녹여낸 사역을 마무리 지은 뒤 주어진 일상을 살기 위해 잠시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동안 물리치료사로서 오스테오패시라는 학문까지 더한 수기치료 등을 배우며 공부를 가르쳐 주시던 스승으로부터 뭔가 시작하면 끝을 보라는 조언을 들으며 자꾸 여행이나 유학 등으로 중간에 그만두지 말라는 언지를 들었다 당시에는 내 삶을 옥죄는 것만 같아 그 충고가 듣기 불편했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을 먼저 걸어본 선배이자 배우고 싶던 치료를 더 알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기에 떠나기보다 머무는 선택을 했다
그렇게 15년이 흐른 뒤 나는 내 일상이 허락될 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혼자 여행을 간 뒤 그동안의 세월을 정리한 뒤 소소한 하루하루를 보낼 참이었다
나는 그렇게 병원 퇴사 전, 코로나 19 이후 서서히 여행자를 받기 위해 여러 혜택을 제공하는 북마리아나제도와 관련한 정보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떠나려던 나는 아직 가기에는 위험하다는 남편의 말과 시부모님의 우려로 인해 떠날 수 없었다 이미 이벤트 기간은 끝났고, 이렇게 여행의 위험성만을 감안하다 보면 평생 한 번도 못 갈 것 같아 짐을 쌌다
혼자 떠나려다 태어나서 돌잔치를 못해준 아들 (야곱, 제이콥)이 마음에 걸려
“야곱아~ 내가 혼자 여행 가려고 했는데, 돌잔치 못해준 대신 이번에 같이 가면 어떨까?”라고 물어보았다 그러면서 걸어 다니는 여정이라 좀 걸을 거라 힘들 수 있다는 말을 더했다
평소에도 걷는 것과 육체적 힘듦을 극히 싫어하던 아들은 “힘들 거면 안 갈래”라고 했다
나는 “그래도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지만, 아들은 그럼에도 가기 싫다길래 그냥 혼자 다녀와야겠다 싶던 차에 옆에 있던 딸 (그레이스)이 “엄마, 그럼 내가 갈래!”라고 말했다
의외의 상황이었지만, 이내 아들에게 그레이스와 함께 다녀와도 되겠는지 물었다 야곱이는 괜찮다고 했지만, 야곱군의 돌잔치를 이제라도 여행 선물로 해주고 싶은 마음에 온라인 투어 (현) (주)여기어때투어)에서 숙소와 비행 편을 예약해 주는 자유여행 패키지를 이 인으로 예약한 뒤 그레이스와의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네이버 포털에서 여행과 관련한 정보들을 서칭하며 장기 여행이 진짜 여행이란 글을 보며 기간은 장기여행에 해당하는 7일로 잡았다
이때만 해도 오랜만의 여행이라 20대 때 여행 기억은 거의 떠오르지 않았고, 코로나로 인해 3년 정도 여행업계 자체가 다시 여행을 추진해 감에 있어 감을 잃은 상태였다
그나마 얼마 전 코로나가 풀리며 바로 움직인 블로거들 덕분에 여행정보를 일부 참고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정보량은 적으나 최신성을 갖춘 정보를 토대로 여행 일정을 대충 머릿속에 미리 그려본 뒤 제주공항에서 김포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아직 리무진 서비스는 개시 전이라 공항철도를 이용해 인천 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인천 공항 안은 텅텅 비었다는 말이 적절할 만큼 소수의 사람들만이 있었고 덕분에 거칠 것 없이 캐리어를 끌며 제주항공 카운터로 향했다 제주공항 발권 카운터에서는 한창 입국신고서를 쓰는 중이었는데, 나 역시 원활한 입국을 위해 신고서를 손에 들었다
집어든 종이 안을 채우려 보니 가장 윗부분에 ‘CNMI’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잘못 종이를 집은 건가?‘라는 생각이 스쳤고 다른 폼이 있는지 서류 비치대를 살펴보았지만, 오직 그것 하나였다
의아한 마음으로 안내 직원에게 “CNMI가 뭐예요?”라고 물었더니 직원은 마치 ‘이 사람 뭐야?‘라는 마음이 담긴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북마리아나제도예요!”라고 알려줬다
그제야 “아~~ 북마리아나제도라면 사이판이랑 주변 섬들인데? “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듯 다시 시작한 첫 여행은 철저한 준비보다 주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내 쪼대로 뜻을 정해 출발하는 데 좀 더 의의를 두었다
경영학과 공부와 관련한 경력을 쌓고 업무현장을 경험해 본다는 취지로 13일간의 일용 생산직을 하며 번 재정으로 떠난 사이판인지라 넉넉잖은 여행경비를 충당한다고 집에 있던 먹거리들을 캐리어에 담았다
그중에는 사발면도 있었는데, 사이판 현지 입국심사대를 통과할 때 짐을 살펴보던 직원의 눈이 잠시 사발면에 고정되더니 곧 웃으며 그냥 가라고 했다 직원이 어찌 사발면을 그리 유심히 보았는가 싶어 나중에 알아보니 돼지고기가 든 사발면류는 사이판 안으로 들고 갈 수 없었던 거다
마음씨 넉넉한 직원 덕분에 사발면은 여행 중 요긴한 한 끼 식사가 돼 주었다
단 한 번일 거라던 여행은 의외로 여행 자체를 즐기는 그레이스와 제이콥 (나중에 합류할)의 성향 덕분에 현재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이다 또한, 20대의 여행 근력은 다시금 붙어 여행을 즐기는 여행자의 위치로 나를 다시 올려놓았다
* 그간 촬영했던 사진들은 보관할 수 없어 현재 가지고 있는 원본이 없는 상태라 운영 중인 블로그 내 사진을 활용해 글을 작성할 예정이며, 여행 일정에 따라 몇 회에 걸친 연재로 나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