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부딪치고 깨지며 알았다
창업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순간,
모든 게 새로워야 할 것 같았지만.
정작 가장 먼저 마주한 건
'내가 얼마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지'라는
현실이었다.
창업을 한다는 건,
이제는 실수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었다.
실수조차도 ‘실전’이라는 의미였다.
그 실수가
누군가의 신뢰를 잃게 하거나,
다시는 연락 오지 않게 만들거나,
아예 사업의 흐름을 끊어버릴 수 있었다.
이름 석 자 걸고
현장에서 마주치는 매 순간은
되돌릴 수 없는 정면 승부였다.
공장에 처음 연락을 했을 때,
나는 자신이 있었다.
제품도 직접 기획했고,
브랜드도 스스로 만들었고,
디자인도 직접 손봤다.
여러 기업에서 마케팅을 해온 경력도 있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내가 이걸 모르겠어?”
스스로 생각했다.
나는 이제 ‘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전화를 건 첫마디부터
무언가 어긋났다.
통화를 시작하자마자
나는 금세 알아차렸다.
질문이 어설펐고,
용어도 맞지 않았고,
대화의 리듬이 끊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는 모든 걸 이미 알고 있다는
숨을 삼키게 만드는 공기가 있었다.
질문은 부정확했고,
단어는 맞지 않았고,
상대는 내가 제대로 이야기할 때까지
대응하지 않았다.
그제야 알아차렸다.
나는 지금,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이미 정리가 된 조직 내 흐름 속에서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기획된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는 데
익숙했을 뿐이었다.
조직에선
내 말에 반응하는 동료의 눈빛,
회의 중에 흐르는 분위기,
상사가 건네는 짧은 피드백.
그런 모든 ‘공기’가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려줬다.
그 작은 사인을 통해
내 행동을 조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도 나에게 그런 신호를 주지 않았다.
내가 어떤 실수를 하고 있는지,
지금 어떤 말이 부족한 건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물어볼 곳도 없었다.
검색해도 안 나왔다.
내 상황은 어디에도 없었고,
내가 어디쯤 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상대의 말에서
나는 내가 어색했음을 알았고
그 말을 품은 태도에서
이 세계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느꼈다.
여러 차례 대화를 다시,
다시,
다시,
이어나가려 했다.
침묵 후에 그분들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처음 하시는 것 같은데 도와드릴게요.
제가 하나하나 알려드릴 테니 잘 따라오세요.”
공장과 협력사 분들은
나 같은 창업가를 얼마나 많이 상대해 봤을까.
내가 초짜라는 걸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그들에게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그들은 나 같은 사람을 수없이 만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이 사람, 정말 할 사람인가?'
'어느 정도까지 책임질 마음이 있는가?'
그 세계에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공기 같은 생리가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해야,
그들도 무언가를 내어주는 구조.
그 세계에서
나는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다.
"난 할 수 있다" 보다 먼저 가져야 할 자세는
"난 깨질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쌓아갈 것이다"라는
마음가짐이었다.
실수하고,
알아차리고,
다시 시도하고,
감사하고,
배우고,
조금씩 정리해 갔다.
창업은 연습이 아니었다.
어떤 말을 쓰면 오해가 생기는지,
어떤 태도가 신뢰를 쌓게 하는지,
어떤 타이밍은 기회를 흘려보내는지를
몸으로 겪으며 배웠다.
그런 모든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결국 내 방식으로 쌓여갔다.
누구도 나에게 정답을 주지 않았지만,
어디서 실수했는지 알려주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 조용한 시험 속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배워갔다.
실수는 여전히 반복됐고, 그 실수는 쌓였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내 결을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다.
그 실수들이
내가 나로서 일하는 방식을 만들고 있다.
그 실수들이 결국, 나의 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