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말이 너무 쉽게 쓰였다는 걸

관계는 같이 웃을 때보다, 혼자 버틸 때 드러났다

by 템즈강변의 태양


직장인이었을 땐,

비슷한 연차, 연봉, 고민을 가진 동료들과

상사를 욕하고, 제도를 탓하며

서로 안도감을 나누곤 했다.




그런데 내가 창업을 하자,

많은 게 달라졌다.

관계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친구’라 불렀던 사람들 중엔

그저 용도에 따라

나를 만났던 사람들도 있었다는 걸.

그저 그 공감 안에서만

존재했던 관계였을 뿐이라는 걸.


드러내 주었다.





직장인 시절 주말엔

핫플, 핫쇼핑, 핫전시를 같이 다니며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것처럼

함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창업을 하고 나니,

핫 정보도, 멋진 옷도, 구두도, 점점 없어졌다.

그 시간을 만들 수 없었다.


일터 공간에 있다가

티셔츠에 운동화 차림, 화장기 없는 얼굴로

약속 장소에 한참이나 늦게 도착했다.



그들은 “요즘 어때?”라 물었고

나는 근황을 간단하게 말하곤 했다.


이젠 공감대가 달라졌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단어 하나, 쉼표 하나에

내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걸

그들도 느꼈을 것이다.





내 고통에 위로를 건네는 그들의 말들엔

묘한 우월감이 섞여 있었다.



그걸 확실히 알게 된 건,

내가 성취를 이야기했을 때였다.



“그때 준비한다던 건 어떻게 됐어?”


“응, 지난달에 계약했어.”




순간,

화면 속 얼굴들이 정지된 듯,

모두의 표정이 멈췄다.


그 표정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누군가 화제를 바꿨다.

다른 이야기로 지나갔다.



그건 분명,

그녀들이 듣고 싶어 한 대답이 아니었다는 걸,

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나도 표정이 멈췄다.





예상하지 못한 찰나엔 판단력이 흐려진다.

그래서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이

눈빛이건, 숨소리건, 표정이건, 말투건,

드러나게 된다.



그녀들 세 명이 똑같이 당황하며 멈춘 표정은

그들의 평소 생각을 알려 준 것이다.





또 다른 이와의 대화도 그랬다.


“어… 그럼 이제 좀 괜찮아진 거야?”


순간 굳은 표정을 보이다가

뜸을 들이며 말을 이었다.


“그거 어떻게 한 건지 궁금하네.

나중에 필요하면 물어볼게.”





알게 되었다.


내가 고통스러울 땐 위로하고,

나아지면 어딘가 불편해했던 사람들.


친구라는 이름 안에

자기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한 기준점이 있었다는 걸.

그 기준이 달라졌을 땐

관계는 필요를 채우기 위한 접점으로 변해간다는 걸.





친구라는 단어는

각자의 마음속에서 다르게 존재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함께 놀 사람을,

누군가는 함께 욕할 사람을,

누군가는 정보나 연결을 줄 사람을,

누군가는 위로의 대상으로 자신을 위안할 사람을.


나는 그 모든 정의에서 멀어졌다.




창업 이후, 나는 험블 해져야 했다.

세상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고,

그 마음을 얻기 위해 나는 더 잘해야 했고,

계속해서 잘해야 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험담에 웃으며 맞장구치지 않게 되었다.

그건 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었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의 중심을 흐트러뜨리는 일이었다.


나는 이제

내가 가진 에너지를 더 지켜야 할 곳에 쓰고 싶었다.




누군가 내 앞에서 누군가를 험담하려 할 때,

나는 듣지 않았고 그 대화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멋진 옷과 가방을 들고 핫플에 브런치를 하자고 할 때,

나는 화장 없는 얼굴과 티셔츠 차림으로 가거나

어떤 날은 그냥 가지 않았다.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고,

관계는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게 괜찮았다.


멀어짐이 나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더 명확해졌다.


친구란

같은 속도로 걷는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속도에 불편해하지 않고

서로의 성장을 지켜봐 줄 수 있는 사람.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감정 배출구도,

불안 완충제도,

정보 제공자도 아니다.



그들이 나를 필요로만 만나려 한다면,

그들도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창업 이후

내 삶을 살아내려는 치열한 시간 속에서,

그런 필요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 겉치장에 움직이지 않고,

소비성 관계에 끌리지 않는다.


나의 모든 관심사는

'어제의 나 보다 나은 오늘을 살아가는 일'에 있다.


모든 것은 선택이다.


나를 지치게 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관계는

놓아야 한다.





몇몇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친구들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이제야 진짜가 남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서로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관계만이 남는다.


그리고 나는,

그 관계들을 더 깊이 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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