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기에, 나는 나로 완성하고 있다
"다시 돌아갈까."
이 말을 떠올리며 잠들었던
수많은 밤이 있었다.
그 말이 떠오른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정기적으로 통장에 꽂히는 ‘월급’이 그리웠다.
통장의 숫자는 나날이 줄어들었고,
고정비는 한결같이 나를 압박했다.
버티는 데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했고,
새로운 기획은커녕,
생존을 위한 계산으로 하루가 흘러갔다.
한때는 ‘월급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라 믿었다.
그 믿음 하나로 퇴사했고, 창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창업 2년 차,
나는 다시 그 월급을 갈구했다.
다른 하나는,
함께 논의할 ‘사람’이 그리웠다.
의견을 나누고,
방향을 조율하고,
같이 뛰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창업가는 모든 결정을 해야 한다.
상사도 없고, 결정을 받아야 할 보고도 없다.
조언은 받을 수 있지만,
결정은 결국 내가 해야 한다.
혼잣말이 늘어갔다.
“이게 맞을까?”
"다른 생각이 있다면?"
고립감은 생각보다 깊었고,
그 외로움은 생각보다 컸다.
다시 회사의 직원으로 돌아가는 걸
진지하게 고민했다.
창업가로 살았던 시간들을 내려놓고,
안정적인 구조 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그때, 나는 몇 번의 면접을 봤다.
그리고 그 면접 순간들을 통해, 선명하게 깨달았다.
회사는,
내가 다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조직 안에 다시 맞춰질 수 없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수없이 ‘과거의 나’를 죽이며,
새로운 나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그건 적응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바뀐 것이다.
창업가는 바퀴를 스스로 굴리는 사람이다.
구성원은 굴러가는 바퀴에 올라타는 사람이다.
나는 이미, 흐름에 따라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흐름을 만드는 쪽에 가까워져 있었다.
외로움에 대한 답도 비슷했다.
생각해 보면,
직장에 있을 때도
여러 상황을 깊이 있게 타진하며
의견을 주고받는 논의는 많지 않았다.
결정은 위에서 떨어졌고,
동료나 상사와의 대화라는 것은
보고와 확인의 형태였다.
같은 공간에 사람들이 있었고,
각자 자신이 맡은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일 뿐,
그게 곧 '같이 일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결국,
이 사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의미 있는 논의를 하며 방향을 만들어갈 ‘누군가’는
나의 상상 속 바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되돌아가고 싶던 밤들,
그 밤들은 무언가가 그리웠던 게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나'를 잃었던 것이었다.
깨달았다.
내가 지켜야 했던 ‘나 자신’은,
과거 내가 아니라,
수없이 무너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지금의 나라는 걸.
창업가는 혼자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혼자는,
외롭다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그걸 감당해 왔던 어떤 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밤새 고민했던 방향 속에서
하나로 내렸던 결정들,
수백 가지 시나리오를 돌리며
혼잣말로 기록을 남겼던 회의들,
견딜 수 없는 순간을 다독였던
수많은 산책들.
그 모든 걸 통과해 왔다.
결국,
이 길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것.
돌아가도 더 이상
그 안에 맞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아니라,
‘다시 돌아갈 수 없다.’로 다잡게 되었다.
수없이 무너졌지만,
무너지는 나를 없애며
다시 일어섰던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나였다.
결국,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믿는
내가 필요했던 것이다.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가야 할 사람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