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할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

자유는 곧 책임, 선택은 곧 무게

by 템즈강변의 태양


창업을 하고 나서,

맨 손으로 흙을 파고 땅을 다지다 보니,

사람을 보는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학력, 이력, 말솜씨,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일을 대하는 태도.

문제가 꼬였을 때의 반응.

감정이 흔들릴 때의 리듬.




그게 다였다.

그게 전부였다.





회사에 있을 땐,

조직이 정한 구조 안에서

누가 팀장이든, 누가 협력사든,

주어진 관계 안에서 버티는 게 일이었다.


상대가 일을 미뤄도,

피드백을 안 줘도,

회의에서 공만 가져가도,

속으로만 분노하고 다시 메우는 게 일이었다.



그땐 몰랐다.

‘관계’는 고정된 게 아니라는 걸.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창업 이후, 나는 다르게 선택할 수 있었다.



일을 하다 보면,

상대의 결이 내 일에 스며든다.



조율이 아니라, 묻어남이다.


그 결이 맞지 않으면

일의 결과도, 마음도, 흐트러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과는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다시 일하지 않게 되었고,

어떤 사람과는 결과가 조금 부족해도

계속 함께하게 되었다.



그 기준은 단 하나였다.

일하는 태도가, 내 리듬과 맞는가.



이제는

‘일을 잘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일을 함께 견뎌낼 수 있는가’를 먼저 본다.





일을 잘해도 감정으로 반응하거나,

자기 책임을 외주처럼 미루는 사람과는

길게 갈 수 없다.


누구보다 빠르게 일을 처리하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연락을 끊는 사람.

자기 타이밍엔 적극적이지만,

상대의 일정엔 무심한 사람.

그들과는 두세 번 정도의 시도면 끝이었다.



반대로,

속도가 조금 느려도

일의 배경을 이해하려는 사람.

함께 리듬을 맞추려는 사람.

감정을 배제하고, 구조를 보려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함께 일한다는 건,

결국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가까웠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드물었다.

좋은 사람이 좋은 파트너는 아니지만,

좋은 파트너는 대부분 좋은 사람이었다.




선택이라는 건 결국,

어떤 사람과 하루를 견디느냐의 연속이다.


그 하루를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결국 나를 함께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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