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춥게 느껴졌던 겨울이 지나고 공기 켜켜이 봄기운이 느껴진다. 목련나무 가지 끝에 겨울눈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보니 봄의 시작을 알리는 목련꽃을 시작으로 봄이 차츰 다가오고 있다.
계절은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다가오지만,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은 결코 그렇지 않다. 손가락이라도 하나 움직이고 걸레질이라도 행주질이라도 한번 더하고 이리저리 정리를 해야 그제야 새로운 계절을 집안에 들일 수 있다.
지난해 봄 4년간의 제주생활을 마치고 서울의 살던 동네로 돌아왔다. 오랜 기간 전세를 줬던 집에 들어가기 전에 타이트한 예산에 맞춰서 필요한 부분만 고치는 부분 인테리어를 진행했다. 고동색 나무를 흰색 시트지로 가지고, 주방도 모두 흰색으로 바꿨다. 그 외에 화장실에 세면대와 샤위기만 바꾸고, 바닥은 바꾸지 않고 도배만 했다. 물론 약간의 칠은 직접 페인트를 사서 셀프로 진행했는데, 다년간의 이사와 셀프 집수리 경험을 통해 획득하게 된 기술이다.
그런 과정에서 쓰던 가구는 그대로 재사용하고, 새로 가구를 들이지 않았다. 전보다 커진 집으로 인해 집안 곳곳은 텅텅 비어있었다. 텅 비어있어도 미니멀리즘보다 휑함에 가까웠지만, 괜히 마음에 드지도 않는 가구나 물건을 섣불리 들이기보다는 시간을 들여서 차분히 바꿔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최근에 집안 인테리어에는 나름대로 큰 변화가 있었다. 공터 같았던 거실에는 아이보리색의 대형 카펫을 사서 깔았더니, 흉 지고 상처 난 마루가 커버되는 장점과 아이들이 편히 앉아서 뜨개질도 하고 티브이를 보며 운동도 하는 역할까지 해주고 있다. 카펫에 누워서 쉬는 가족들은 "이렇게 뽀송뽀송한 매트는 몇 년 만이네!" 하면서 새로 온 카펫을 열렬히 환호해주고 있다.
또 하나의 변화는 귀여운 스탠드를 들인 것이다. 아이보리색의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연상케 하는 조명은 거실등을 모두 꺼도 은은하게 자기 자리를 밝혀주고 있어, 텅 비었던 집안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물론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 입장에서 새로 물건을 들인 것만은 아니다. 들인 만큼 나가는 물건도 있는 법. 우선 철 지난 아이들의 전집을 당근과, 네이버 중고나라를 통해 처분했다. 두 질의 전집에 불과하지만 권수로는 120권에 달하니 꽉 채워져 있어 소화불량에 걸릴 것 같았던 책꽂이가 말끔한 판매대로 변했다. 자잘한 단행본은 알라딘 중고서점을 통해서 내 책판매하기로 보내니 약간의 용돈 벌이도 가능하다.
수백까지의 잡동사니, 메모지, 편지지, 포스트잇, 작은 피겨로 가득하던 열한 살 둘째의 책상 위도 오랜만에 정리했다. 물건을 모두 아래로 꺼내서 아름다운 가게 기부할 물건은 따로 모아두고, 다시 쓸 물건들은 따로 모아서 책꽂이 아래칸에 보관해 두기로 했다.
마지막으로는 사춘기 딸의 드레스룸을 정리했다. 입다 그대로 넣어둔 옷과 대충 갖다 놓은 옷더미를 다 꺼내서 두께와 색깔에 맞게 차곡차고 쌓아두니 한눈에 봐도 깔끔한 옷장내부가 되었다.
사실 물건을 처분하는 데는 구매자와의 대화와 약속을 정하는 등의 수고로움이 있지만, 집안 물건 등을 정리하고 가지런히 놓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실행하겠다는 결심하기까지가 제일 힘들다.
눈에 보이기에는 자연에서 보이는 계절의 변화도 그냥 자연스레 다가오는 것 같지만, 실상은 추운 겨울을 버티고 따뜻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 새로운 가지를 만들고 잎사귀를 생산해내고 있을 테지만 우리의 눈에만 보이지 않는 것뿐이다.
집안에 계절을 들이기 위해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고, 쓰는 물건들은 쓰임이 편하도록 가지런히 구분해서 놓고, 집안의 분위기를 바꿔주는 소품 몇 가지로 집안에도 봄을 들일 수 있다. 그 과정에 필요한 것은 결심과 실행했을 때 흘릴 작은 땀방울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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