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니 Dec 04. 2019

‘어려울 때 친구’ 말고, 기쁠 때 친구

수영 배우러 갔다가 알게 된 것들_11

수영장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샤워실에서 만난 무례한 사람을 같이 험담하고 싶고, 수영 동작이 잘 안 될 때 하소연하고 싶다. 무엇보다, 오래 애먹었던 동작이 잘 되는 날 마주보며 웃고 싶다.

수영장 친구가 한 명도 없는 나는 수영이 잘 될 때 남편에게 얘기한다. 내가 한껏 들떠서 얘기하면 남편은 더없이 차분하게 답한다. “잘했네.”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남편은 수영에 전혀 관심이 없다. 내 기분을 맞춰주려 애쓰지만 수영의 기쁨을 온전히 나누는 덴 한계가 있다.

내가 꿈꾸는 수영장 친구는 이렇다. 수영 영법과 선생님 화법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선생님이 나 접영할 때 방아깨비 같대” 한 마디에 깔깔 웃을 수 있는 친구. 늘 고민이었던 동작을 잘 할 수 있게 됐을 때 정확하게 칭찬해주는 친구.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니지만 초보에겐 길고 긴 연습 대장정 끝에야 얻을 수 있는 결실이란 걸 알기에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친구. 이런 친구가 있다면 수영이 더 즐거울 것 같다.




하지만 함께 기뻐하기, 란 참 어렵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요즘이다. 최근 내게 있었던 기쁜 일은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이다. 한 번 거절당했던 터라 더 기뻤고, 글을 올린 지 이틀 만에 글이 다음과 브런치 홈에 걸려 조회수가 3만을 넘어선 것도 신기했다. 새벽에 일어나 틈틈이 글을 써온 걸 아는 남편은 나만큼 들떠서 축하해줬다. 내가 글쓰기를 오래 미뤄왔다는 걸 아는 친구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줬다. 이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신기해했던 시간이 브런치 작가가 됐을 때만큼이나 좋았다.


어둡고 춥던 내 마음 속 글쓰기 방에
브런치가 딸깍 전등을 켜주었다면,
이들은 훈훈한 온기를 불어넣어주었다.



더 많은 친구들에게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더는 알릴 사람이 없었다. 내가 글을 쓰고 싶어했다는 것도 모르는 친구들에게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이 있는데, 내가 거기 작가가 됐고, 글이 브런치 홈에 걸렸으며, 그래서 무척 기쁘다”는 걸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관심도 없는데 붙잡고 얘기하는 게 아닐까 꺼려졌고, 뜬금없이 내 자랑을 하는 것 같아 망설여졌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마음이 좀 허전했다. 그동안 친구들한테 너무 연락을 안 했나, 나이 들면 다 그런건가. 나의 게으름과 나이가 차례로 용의선상에 올랐다. 그러다 ‘잘 모르니까’를  답으로 골랐다. 나는 글쓰기와 수영을 좋아하지만 내 친구들은 둘 다 별로 관심이 없다. 학교 다닐 때처럼 늘 붙어다녔다면 시시콜콜 모든 걸 얘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젠 일상과 생각을 공유하는 게 힘들어졌으니 함께 기뻐할 일도 줄어드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친한 친구여도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같이 기뻐하는 건 쉽지 않다, 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나처럼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브런치 작가를 원하는 친구가 있었다면 당장 연락할 수 있었을까. 난 이번에도 망설였을 것 같다. 잘 알아도, 아니 잘 알아서 기뻐하지 못하는 일이 어쩌면 더 많으니까.


나는 운 좋게도 계획과 동시에 첫째 아이가 생겼다.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로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한 친구가 말했다. “야~ 너 사람 불안하게 왜 그래.” 처음엔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 친구도 몇 개월 전부터 임신을 준비했지만 생각만큼 빨리 생기지 않아 고민이라는 걸 듣고서야 그 말을 이해했다. 나와 절친한 사이니까 거리낌없이 속내를 말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 말 후 진심을 담아 축하해줬다. 하지만 그 후론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거나 그럴지도 모를 친구들에겐 내 좋은 일을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졌다. 오래 기다렸던 둘째가 생겼을 때, 처음으로 얘기한 친구는 둘째 계획이 전혀 없는 친구였다.


사실 말만 안 했을뿐 내 마음도 ‘불안하다’고 말한 친구와 똑같다. 둘째 아이가 계획대로 생기지 않았을 때 주변에서 둘째 임신 소식이 들리면 축하하는 마음보다 부러운 마음, 시기하는 마음부터 들곤했다. 내가 바라던 일이 아닌데 그럴 때도 있다. 타인의 좋은 일을 전해 듣곤 평온했던 내 일상이 한없이 남루해 보이는 날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일에 함께 기뻐하기, 란 참 어렵다. 잘 모르는 분야라서, 잘 알지만 부러워서, 괜히 내가 초라해지는 것 같아서. 온 마음으로 기뻐할 수 없는 이유들이 자꾸 가로막는다.





어렵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싶진 않다. 내 마음 속 크고 작은 방들에 딸깍 전등이 켜졌을 때 그곳에 온기가 함께하길 바란다. 눈부시게 환하지만 냉기만 가득한 방, 좋은 일이 생겨도 함께 기뻐할 사람이 없다면 금세 서글퍼질테니까.

그 시작은 우선 나부터 잘 기뻐하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친구들 마음 속 불 켜진 방부터 찾아봐야겠다. 늘 반복하는 안부인사 “별 일 없어?” 대신 “요즘 뭐 좋은 일은 없어?”라고 묻는 것부터. 그리고 내가 잘 모르는 것이든, 나를 초라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든 마음을 다 해 기뻐하기.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우정에 관한 불변의 진리로 굳어져있다. 하지만 나는 작은 일에도 잘 기뻐하는 친구가 되고 싶다.


Photo by Sam Manns on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