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을 내리며

by 김수권

열흘 뒤에 열릴 연주회를 기다리며 이 글을 씁니다. 아직 온전하게 들어보지 못한 음악에 대한 글이기에 이 글은 '감상 후기'가 아니라 일종의 '소망기'라 해야겠습니다.


제가 기다리고 있는 연주회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대립과 조화 : 콘체르토'(2021. 1. 27, 19:30, @롯데콘서트홀)입니다. '콘체르토(concerto)'는 우리말로 '협주곡'을 의미하는 것으로 어떤 독주 악기와 관현악기(오케스트라)가 합주하면서도 독주 악기가 돋보이게 연주하는 음악을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서양 음악의 형식입니다만, 우리의 전통 악기로 이루어진 관현악단이 있어 국악에서도 협주곡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 연주회가 특별한 것은, 우리 전통 악기만으로 협주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악기(피아노, 첼로, 오르간)와 함께 어우러져 협연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구성은 당연히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전통적인 것이 아니기에 '현대 음악'의 범주에 속합니다.


저는 우리 전통 음악(국악)과 서양의 음악(클래식)을 모두 좋아하기 때문에 이 연주회 자체가 매우 반갑고 모든 곡을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특별히 설렘을 품고 기다리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II - '닻을 내리며'(작곡: 이영자, 협연: 피아니스트 임현정)입니다. 이 작품에 잔뜩 뒤설레어 상상력을 발휘해 소망기까지 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제가 임현정 피아니스트님의 열렬한 팬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주최 기관인 '국립극장'에서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련한 '관객아카데미 - 처음 만나는 콘체르토' 방송(유튜브)을 보다가 작곡가이신 이영자 선생님의 말씀에서 의미 있는 감상의 실마리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영자 선생님께서는 70대 중반에 작곡하신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제 나이가 많아졌으니까, 항해를 나갔다가 돌아오는 배가 닻을 내리듯이, 나도 내 인생의 황혼에서 닻을 내리자. 그래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어요."


이 말씀만 들었을 때는 작품의 의미가 '작곡가의 인생에 관한 개인적인 소회'이거나 또는 '황혼에 이른 개별적 인간이 갖는 심상'일 것 같은 생각을 하였지만, 곧이어 들려주신 '아버지의 소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영자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유학파 여성 작곡가'이신데 1958년에 프랑스로 유학을 하러 가실 때 아버지께서 딸을 먼 이국으로 보내시는 것을 걱정하시면서도 소원이 하나 있다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해가지고 와서 '목포의 눈물' 같은 음악을 써다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아버지의 이 소원에 대해 "아버지가 '목포의 눈물'을 너무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내가 그걸 마음에 담고... '목포의 눈물'이 우리들의 옛날 정서잖아요. 그 정서가 내 몸 안에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걸 뿜어내는 거예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작곡의 의도와 작품에 담긴 음악 정신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창 시절 들었던 아버지의 '목포의 눈물'과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나 아마도 자신의 나이가 그때 아버지의 나이보다 많아지고 나서 쓴 '닻을 내리며'는 작곡가의 내면에서는 영혼이 맞닿아 있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두 음악의 형식은 전혀 다르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한의 정서와 더불어 부모와 자식(또는 선대와 후대) 간의 끊을 수 없는 혈연 의식에 기반한 정서가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포의 눈물'은 일제강점기였던 1935년에 발표되어 큰 인기를 얻었던 유행가였습니다.


그러나 목포항은 군산항과 더불어 비옥한 호남 지방에서 생산된 쌀과 목화 등이 일본으로 보내졌던 수탈의 현장이었고, 일제에 의해 삶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이역만리 타향으로 뿔뿔이 흩어져 가족이 생이별하고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되기도 했던 '한민족 디아스포라(Diaspora)'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목포의 눈물'은 그 슬픔과 절망으로 얼룩진 한을 노래하면서도, 일제를 향한 원한과 저항 의식을 담기도 했습니다. 2절 가사의 첫 부분 '삼백연(三柏淵) 원안풍(願安風)은 노적봉 밑에'를 그대로 해석하면 '삼백연 연못에 평안을 기원하는 바람은 노적봉에 밑에' 정도로 풀이할 수 있는데, '삼백연(三柏淵)'이라는 연못도, '원안풍(願安風)'이라는 단어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가수 이난영 선생님께서 실제 이 부분을 부르실 때에는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라고 부르셨습니다.


'삼백 년 원한'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원한을 의미하고, '노적봉'은 왜란 당시 이순신 통제사 영감께서 왜군을 속여 물리친 전설이 깃든 곳으로 당시의 사람들은 일제 침략의 원한과 항거의 의지를 이 노래에 담았으며, 일제의 검열을 피하고자 아무 의미 없이 비슷하게 들리는 위장 가사를 만들어 놓고 실제로는 원래 부르고 싶었던 대로 불렀던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목포의 눈물'을 '항일음악'이라 분류하지 않고 여전히 '대중가요'에 속하는 것이지만, 독립운동에 직접 나서지 못한 일반인조차도 일제의 눈과 귀를 속이면서 압제와 수탈의 한을 달래며 저항 의지를 품었던 노래라 할 수 있고, 그렇게 대중의 삶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이영자 선생님께서는 불과 다섯 살이었지만, 열 다섯 살까지 일제강점기를, 이십 대 초반에는 한국전쟁을 부모님 세대와 함께 그대로 겪어야 했던 삶을 사셨기에 아마도 그 정서적 공감은 거의 일치하여 지금의 세대와 사뭇 다르지 않으셨을까 생각합니다. 당시와 달리 산업화와 고도 경제 성장의 시대를 거친 세대는 갈수록 세대 간의 정서적 차이가 벌어져 공감보다는 갈등이 많아지고 관계도 소원해지는 세태가 심화하고 있지만, 선생님께서는 아버지가 부르셨던 그 노래의 정서가 자신의 몸 안에 그대로 있고, 그걸 여전히 뿜어내고 있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예술 작품에는 예술가의 개인적 경험이나 처했던 환경, 내면의 의식 등이 반영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작품이든 '개인적(개별적)인 것', '지역적인 것' 등을 포함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이 어떤 '민족성', '보편성'을 가질 때 비로소 더욱더 훌륭한 작품, 위대한 작품이 되는 것이고, 저는 '닻을 내리며'에도 그러한 민족성과 보편성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닻을 내리며'는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위로하고 축복하는 개인적인 음악인 동시에, 사연은 달라도 누구나 갖고 있는 부모님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이 담긴 음악이며,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셨던 것과 같이 자신 또한 후손과 세상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음을, 마치 '아버지, 어머니, 저 이렇게 열심히 살았습니다'라고 고하며 헌정하는 음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울러 아버지가 즐겨 부르시던 '목포의 눈물'은 모진 세월 속에서 한이 쌓이고 쌓여 응축되는 노래였다면, '닻을 내리며'는 그 응축된 한을 다스리며 발산하는(뿜어내는) 음악이 아닐까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응축된 한의 발산에는 우리 부모님 세대가 그러하셨듯이 후손들을 향한 무한한 사랑과 응원의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을까도 생각합니다.


저는 작곡가 이영자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아버지의 '목포의 눈물' 이야기와 함께 이번에 연주될 '닻을 내리며'라는 작품 제목이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과거의 목포가 '이별'을 상징하는 항구 도시였다면, 닻을 내리는 것은 이제 마침내 고단한 항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귀향'의 기쁨과 위안을 얻는 것이고, 또한 그렇게 시대와 사람들의 아픔이 점차 치유되기를 소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라는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이 음악이 오늘날 부모님 세대와 공감하지 못한 채 갈등과 반목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도 부모님 세대가 겪으셨을 불행과 역경을 조금은 생각해보면서 너그러운 이해와 용서의 마음을 갖게 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설령 저의 상상과 달리 이 작품에 그러한 모든 것이 담겨 있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음악의 진정한 힘은 그것을 듣는 '나 자신'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연주회에서 '닻을 내리며'가 울려 퍼질 순간이 너무나 기다려집니다.



<목포의 눈물> (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 이난영 노래)


沙工(사공)의 뱃노래 감을거리며

三鶴島(삼학도) 파도 깁히 숨어드는데

埠頭(부두)의 새악씨 아롱저진 옷자락

離別(이별)의 눈물이냐 木浦(목포)의 서름


三柏淵(삼백연) 願安風(원안풍)은 露積峰(노적봉) 밋헤

任(임) 자최 宛然(완연)하다 애닯흔 情調(정조)

儒達山(유달산) 바람도 榮山江(영산강)을 안으니

任(임)그려 우는 마음 木浦(목포)의 노래


깁흔 밤 쪼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짓타 녯 傷處(상처)가 새로워진다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港口(항구)에 맷는 節介(절개) 木浦(목포)의 사랑


* 가사 출처 : 박찬호 지음, 안동림 옮김, <한국가요사1>, 미지북스(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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