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초월한 '환희'의 보편성

by 김수권

"최소한 검열이 음악은 관여하지 못하리"

베토벤은 그의 노트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시대에도 예술에 대한 검열은 당연히 있었을 것이나, 악보 위에 음표로 표현된 것은 그것이 곡의 제목이나 노랫말로 표현되지 않는 이상, 또는 공공연하게 표출되는 작곡가의 언행과 연결되지 않는 이상, 그 자체로는 정치적, 사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고 확정할 수도 없는 것이니 검열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베토벤은 예술가가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하거나 엮이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취하는 조치, 예를 들면 곡의 제목이나 노랫말을 자신의 본래 의도대로 표명하지 못하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적당한 수준으로 변경하는 것에도 수치심 같은 것을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예술가가 외부의 평가와 압력이 두려워서 자신의 본래 의도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은 억압된 자기 검열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이것은 예술의 본질, 예술가의 생명을 짓밟는 것이고, 근현대의 자유 관념에 따르자면 예술적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것인데, 베토벤은 이러한 자기 검열에 저항했던 것이 아니라, "최소한 검열이 음악은 관여하지 못할 것"이라며 간단히 무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베토벤은 마치 '검열을 하려고 하는 저들따위가 뭘 알겠어?'와 같은 느낌으로 간단히 회피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선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령 <환희의 송가> 역시 본래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가 쓴 제목은 <자유에 붙임>이었으나 검열 때문에 '자유'를 '환희'로 바꾸었다고 알려졌는데, 이것을 다시 '자유'로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실제로 베토벤이 실러가 이러한 '자기 검열'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환희'를 그대로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그러한 내막을 전혀 몰랐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를 떠나서 실러이든 베토벤이든 이렇게 검열을 회피했던 선택은 매우 영리한 것이었고, 그것은 비굴한 선택이었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작품 수준을 매우 드높이는 방향이었다고 생각한다.


<환희의 송가>만 하더라도 만약 실러나 베토벤이 '자유'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면, 비록 작품이 검열 속에서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시대적 한계 속에 갇히는 결과, 다시 말해 당시의 '자유'는 고작 '시민적 자유', '부르주아지의 자유'를 의미할 뿐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를 '환희'로 표현했기 때문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이 부여된 결과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비겁하게 회피했다고 하기보다는, 당시의 검열 기준으로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려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자유' 관념을 포함하는 '인권'이라는 말을 쓰면서, 마치 이것이 프랑스혁명 때부터 지금과 동일한 인식 수준으로 사용하고 인정되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실제로는 사람들에게 전혀 그렇게 인식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권리'라는 것을 '인권의 보편성'이라고 하는데, 인권의 보편성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겨우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불과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특정 사건으로 말하자면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UDHR)'이 채택된 때의 일이었다.


과거의 인권 의식이 지금과 사뭇 달랐다는 것, 심지어 인권의 보편성에 관한 인식이 아직도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례는 많다. 예를 들어 유대인을 학살하는데 관여했던 나치 독일군 장교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 1906-1962)'에 대한 재판을 예루살렘에서 직접 참관하고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역설했던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 Arendt, 1906-1975)를 다룬 영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2012)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아주 짧은 장면이 있다.


한나 아렌트가 대학의 강단에서 유대인 학살 문제를 강의하며 계속 '인간'이라는 표현을 쓰자 한 학생이 "학살 당한 것은 유대인인데 왜 자꾸 인간이라고 말씀하시나요?"라고 질문하는 장면이다. 이에 한나 아렌트는 그 학생에게 "유대인도 인간이니까요!"라고 소리친다. 당시까지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지식인조차 인권이라는 것이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누려야 하는 '보편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 특정 민족이나 인종에 대해 발생한 학살, 억압, 차별적 사건은 특정 민족이나 인종에 대해서 발생한 그 지역의 문제인 것이지 이를 '인류의 보편적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영화 <한나 아렌트> 속의 이 장면은 1940년대 후반의 일이었는데, '보편적 인권'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얼마나 짧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영화 <그린북>(Green Book, 2018)을 보아도 알 수 있다. 1960년대 '자유의 나라'라고 하는 미국에서조차 흑인들은 관습화 되고 제도화 된 극심한 차별을 일상적으로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에도 여전히 'Me too'나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벌어진다. 이렇게 본다면, 인권이 보편적인 것이라는 인식은 아직도 인류의 인식 속에 명확하고도 충분하게, 실질적으로 자리잡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여하간 그래서 '자유'가 아닌 '환희'라는 말을 선택한 것은 오히려 (실러나 베토벤이 정확하게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당시의 '검열' 따위는 물론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유'라는 인권 관념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많은 제약과 한계에 직면하지만 '환희'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유'라는 인권 관념이 직면하는 제약과 한계는 간단하지 않다. 가령 '이민자나 난민의 자유'를 놓고 거리에서는 합법적인 시민권을 갖고 있는 자유로운 시민 간, 또는 민족이나 종교적, 지역적 이해관계에 따라 찬반 대립으로 분열하고 각종 폭력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에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환희에 이르자는 것은 '자유'의 제약과 한계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갖고 있으면서, 마치 '지도 이념'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고, 우리가 사는 시대는 물론 다가올 시대에도 깊은 설득력을 갖고 있다.


아직 인류는 '인권의 보편성'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채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지만, 베토벤의 바람과 같이 끊임없이 환희의 세계로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수가 없다. 그 환희의 기쁨이 허황된 것이라면 사람들은 더이상 베토벤의 음악을 듣지 않을 것이나, 인류는 아직도 그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으며 희망을 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는 인류가 환희의 순간에 도달할 때까지 영속하다가, 마침내 도달한 그 환희의 순간에 비로소 가장 크게 울려퍼질 음악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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